‘유전체(genome) 연구’, 생명의 설계도를 그리다
‘유전체(genome) 연구’, 생명의 설계도를 그리다
  • 정승호 기자
  • 승인 2013.03.10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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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나의 학문을 말하다 ① 서정선 교수(의학과)

서울대에서는 2008년부터 창의적이고 활발한 연구 활동을 통해 탁월한 연구실적을 낸 교수에게 ‘학술연구상’을 수여하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에서는 2012년 학술연구상을 수상한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학술적 성취와 함께 서울대 학술의 미래를 살펴보고자 한다.

연재 순서
① 서정선 교수(의학과)
② 최만수 교수(기계항공공학부)
③ 최병조 교수(법학전문대학원)


기계가 고장나면 어떻게 고치는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선 설계도부터 찾을 것이다. 설계도를 통해 기계의 구조를 파악한 후에야 고장을 일으킨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몸이 ‘고장’났을 때는 어떤 ‘설계도’를 찾아야 할까? 서정선 교수(의학과)는 “유전자 지도 분석을 통해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맞춤의학’ 처방을 할 수 있다”고 답한다. ‘유전체(genome)’ 연구와 이를 응용한 ‘맞춤의학’ 연구의 성과를 인정받아 2012학년도 서울대 학술연구상을 수상한 서 교수를 『대학신문』에서 만나봤다.
 

사진: 기자
삽화: 강동석 기자 tbag@snu.kr


인체의 설계도를 찾기 위한 여정(旅程)

서 교수는 국내에서 생명체의 유전자와 염색체를 비롯한 총체적인 유전 정보 집합체인 유전체 연구의 선구자로 꼽힌다. 원래 그는 기초의학의 한 분야인 ‘분자생물학’으로 학자 생활을 시작했지만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자 하는 의지로 2000년부터 유전체 연구에 뛰어들었다. 서 교수는 “이전에 연구하던 분자생물학이 ‘가설 중심’ 과학이라면 유전체 연구는 ‘데이터 중심’ 과학”이라며 “개인의 창조적인 생각뿐 아니라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기술도 중요하다”고 두 연구의 차이를 말했다.

그는 유전체 연구를 시작한 후 곧 주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서 교수의 연구진이 고노 도모히로 교수(일본 도쿄대 농학과) 연구진과 함께 정자 없이 난자만을 이용해 ‘아빠 없는 쥐’를 탄생시킨 것이다. 2004년 해당 논문은 유력 과학지 「네이처」에 게재됐으며 세계 최초 포유류 단성생식(單性生殖)에 성공했음을 인정받았다. 이에 따라 그의 연구진의 유전자 분석 기술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음이 증명됐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서 교수는 자신의 연구 범위를 인간의 신체까지 확장시켰다. ‘게놈 프로젝트’로 명명되는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밝히기 위한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이후 인간의 총체적인 유전 정보를 해독해 유전자의 배열을 분석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2009년 한국인 남성 유전자지도 분석에 대한 논문이 「네이처」에 게재됨으로써 그 결실을 맺었다. 「네이처」는 서 교수의 연구를 근거로 한국인으로 대표되는 ‘북방계 아시아인’을 ‘백인’, ‘흑인’, ‘남방계 아시아인’과 함께 세계 4대 인종으로 분류했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한국인의 유전자 지도가 세계 4대 인종중 하나인 북방계 아시아인의 표준이 됐다”며 그 의의를 밝혔다. 백인이나 흑인과 구별되는 북방계 아시아인의 유전자 특성을 밝혀 인종별로 상이한 유전자 지도를 그리는 데 기여한 것이다.

질병의 근원을 타격하는 표적치료

현재 그는 개인의 유전자 지도 분석뿐 아니라 이를 이용한 ‘맞춤의학’에도 꾸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는 한 사람의 유전자 중 특정한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 요인에 기초해 치료하는 것을 말한다. 서 교수는 “그간의 질병 치료 기술이 어두운 곳에서 손전등을 들고 인간 세포를 부분적으로 탐사하는 것이었다면 맞춤의학은 네이팜탄으로 세포 전체를 한꺼번에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게다가 그는 “개인의 유전 정보를 활용하는 의학은 단순히 이미 발생한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앞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질병을 예방하고 노화를 방지하는 데 활용할 수도 있다”며 앞으로의 전망도 덧붙였다.

실제 서 교수는 2011년 폐암의 새로운 ‘원인 유전자’를 밝혀냄으로서 맞춤의학의 실용화에 한걸음 더 다가갔다. 그가 발견한 유전자는 전체 폐암 중 2%에 해당하는 원인 유전자로 세계적으로 한해 약 4만명이 폐암으로 숨지는 것을 고려할 때, 약 800명의 질환을 치료하는 데 이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록 해당 폐암에 대한 원인이 밝혀졌을 뿐 아직 치료법이 개발된 것은 아니지만 서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를 통해 앞으로 현재 폐암 치료 기법을 넘어서 원인 유전자에 초점을 맞춘 ‘표적치료’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삽화: 강동석 기자 tbag@snu.kr


유전체 연구에 남아있는 숙제

지금까지 부단히 뛰어난 성과를 이룩한 서 교수지만 그에게도 해결해야 할 문제는 남아있다. 유전체 연구는 유전 정보에 대한 방대한 실험 데이터의 축적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연구다. 수많은 실험을 시행하고 대용량의 자료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서 교수는 “원활한 연구 진행을 위해 보다 많은 연구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와 함께 “실험을 실질적으로 수행하고 실험 결과를 분석하는 데 필요한 숙련된 인력이 많이 부족하다”며 “때문에 한 분야에 대한 대체 인력이 없고 실험 결과에 대한 반복적인 재확인이 어려운 면이 있다”는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향후 서 교수는 “유전자 지도 연구를 통해 과거 북방계 아시아인의 이주 경로를 추적하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다. 현재 북방계 아시아인으로 분류되는 인종은 중앙아시아, 동아시아, 남북아메리카 대륙 및 북극 지방에까지 널리 분포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세계 각 지역 북방계 아시아인들의 유전적인 공통점과 차이점을 통해 유전자의 변이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며 “그 변이 과정을 파악하면 이들이 어떻게 분화됐고 왜 각기 다른 곳으로 이주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유전체 연구가 맞춤의학의 형태로 인류의 보다 나은 미래를 보장할 뿐 아니라 그동안 알지 못했던 인류의 과거까지도 밝히는 데 이용될 전망이다.
작년 9월 우리나라의 암 환자 수가 13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들 중 대다수는 자신의 병에 대해 확실한 치료법은커녕 명쾌한 원인조차 알 수 없는 처지에 있다. 맹인과 다름없는 상황에 처한 환자들에게 유전자 지도 분석을 통한 ‘맞춤의학’은 한 줄기 빛이 될 것이다. 서 교수의 유전체 연구가 인류의 진정한 무병장수(無病長壽)를 이룩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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