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영 교수
(건설환경공학부)
우리가 놀던 자리를 깨끗하게 치우고 가는 것은 상식이자 의무이다. 그렇지 않으면 남에게 불편을 주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그것을 배려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지성인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건물을 지으면 물 관리의 측면에서 남에게 피해를 준다. 가령, 건물이 들어서기 전의 초지에서는 10의 비가 오면 3의 양만 하류로 흘러가고 나머지 7은 땅속에 들어간다. 여기에 건물을 지으면 7의 양이 하류로 흘러가고 나머지 3은 땅속에 들어간다. 하류로 가는 빗물의 양은 이전보다 130% 이상 증가한다. 기후변화 때문에 증가하는 양인 20~50% 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큰 수치이다. 또한 땅속으로 들어가는 빗물의 양이 줄어들면 지하수위가 낮아져서 하천에 공급되는 물이 줄어든다. 건물은 기후변화보다 더 큰 영향을 주는 물 문제의 주범인 셈이다. 관악캠퍼스를 보자.

40여 년 전 서울대가 관악에 자리한 이후 사라진 초지의 면적은 건물 219개동에서 27만 m2, 도로와 주차장에서 약 50만 m2나 된다. 이는 캠퍼스 전체 면적의 37%이다. 그 결과 여름에는 도림천의 범람으로 인명과 재산을 위협하고, 봄에는 물이 말라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생물은 살 수 없게 되었다. 도림천 유역의 주민들은 어렸을 때 도림천에서 물고기 잡고 멱 감던 추억을 그리워한다. 캠퍼스 개발 전과 후의 물 상태를 똑같이 만드는 것은 자신이 놀던 자리를 놀기 이전의 상태로 만들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말자는 논리와 같다.

우리 선조들은 건물의 사회적 책임을 인정하고 빗물관리를 해왔다. 예를 들면 경복궁 안의 연못인 경회루지와 향원지는 하류의 홍수방지, 지하침투 외에도 소방용수 및 비상용수 확보, 생물다양성 유지, 그리고 정서함양 등의 부가적인 역할을 한다. 그 외에 커다란 절이나 대가집의 정원에 만든 연못은 개발에 따른 하류사람과 자연과 후손에 대한 도덕적 의무로서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이러한 교훈은 글자 하나에 모두 담겨져 있다. 즉 마을(洞)을 만들 때 개발 전후의 물(水)상태를 똑같이 (同) 만들라는 의미이다.

공과대학의 일부 건물에서는 이러한 물 순환 왜곡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몇 가지 노력을 시작했다. 39동에는 250톤의 빗물저장조를 만들어 건물이 들어선 후 추가로 내려가는 빗물의 양을 줄여준다. 덤으로 매년 3000톤 가량의 수돗물을 절약하고, 비상용수로도 사용한다.

35동에는 여러 종류의 빗물시설이 있다. 지붕면적의 절반인 840 m2에 옥상녹화를 하여 지붕에 떨어진 빗물이 천천히 내려가게 해서 홍수량을 줄인다. 옥상정원에서의 아름다운 조망과 텃밭에서 나오는 채소는 덤이다. 건물의 홈통에는 여러 개의 아름다운 빗물저금통을 만들어 빗물을 모아 조경용수로 사용한다. 건물과 나무의 주변에는 작은 침투시설을 조성하여 흘려보내는 빗물의 양을 줄이는 대신 뿌리에 물을 공급해준다. 빗물웅덩이와 실개천은 새나 곤충에게 서식처를 제공하고 학생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된다. 이 시설물들은 규모가 작아서 비용과 시간은 적게 들지만, 이것들이 많이 모이면 냇물이 모여 큰 강을 이루는 것과 같이 엄청난 효과를 가져 온다.

관악캠퍼스에는 한 두 개의 커다란 시설보다는 여러 개의 작은 시설들을 많이 설치하는 분산형의 빗물관리가 바람직하다. 학교당국은 분산형의 빗물관리시설을 설치하도록 유도하고 다양한 모범사례를 보급하여야 한다. 각 건물의 구성원이 책임과 명예를 걸고 기능과 미를 겸비한 빗물관리시설을 만드는 선의의 경쟁을 기대한다.

‘겨레와 인류를 위하여’라는 서울대학교의 거룩한 구호는 이웃 도림천 주민의 행복을 위하는 실천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서울대의 모든 구성원이 책임을 느끼고 하류의 홍수와 가뭄에 대한 피해를 줄이도록 노력하는 “모두가 행복한 물 관리”를 위한 선조들의 교훈에 따라 솔선수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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