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Re: Quest - 1970년대 이후의 일본 현대 미술

미술관 MoA에 빨간 풍선이 떴다. 빨간 바탕 위에 경쾌하게 박힌 수십 개의 흰색 점을 응시하다 보면 마치 풍선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든다. 미술관 MoA에서 다음달 14일까지 열리는 ‘Re: Quest-1970년대 이후의 일본 현대미술’에는 이렇게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한 작품들이 가득하다. ‘Re: Quest’, 즉 ‘다시 탐구하다’라는 제목이 뜻하듯 이번 전시를 통해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일본의 현대미술의 흐름을 되짚어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일본 현대미술의 특징적인 경향을 주제별로 6개 섹션으로 나눠 총 112점이 소개된다.

첫번째 섹션인 ‘울트라 사고’에는 상식의 틀을 초월하려 시도한 일련의 작품이 모여 있다. 예를 들어 오자와 츠요시의 ‘나수비 화랑’(사진①)은 전시공간에 대한 발상을 전환시키는 작품이다. 일본 사람들은 70년대 무렵까지 현관에 우유상자를 두고 우유를 매일 배달받았다. 오자와는 이 흔한 우유상자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이동식 갤러리’로 탈바꿈시켰다. 작가는 비싼 갤러리 임대료 때문에 신진 작가들이 작품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일본 예술계의 시스템을 비판하고자 했다. ‘나수비 화랑’이라는 작품 제목도 일본 긴자 거리의 유명한 갤러리 ‘나비수 화랑’을 패러디한 것이다. 오자와는 우유를 상자 안에 배달하듯이, 젊은 작가들이 이동식 화랑 안에 작품을 넣어 긴자 거리에 전시하도록 했다. 이렇게 시작한 ‘나수비 프로젝트’는 전 세계로 확대돼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림 ①


다섯번째 섹션 ‘미술의 언어로 말하기’로 이동하면 팝아트로 대표되는 대중적, 일상적인 소재를 활용한 작품들이 보인다. 90년대 일본에서는 소비사회의 아이콘이나 대중 매체 속 캐릭터를 활용해 사회에 비판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작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야나기 유키노리의 ‘만세:코너’(사진②)는 TV 애니메이션 캐릭터 ‘울트라맨’을 소재로 한다. 이 작품은 멀리서 보면 일장기의 형상이지만 자세히 보면 붉은 원 안에 만세를 부르는 ‘울트라맨’들이 빽빽이 서있다. 그런데 실제 울트라맨들은 원의 4분의 1만큼만 배치되어 있고, 원의 나머지를 이루는 것은 양쪽 거울을 통해 반사된 이미지다. 작가는 거울에 복제된 이미지를 통해 무비판적으로 남들을 따라 국가에 복종하는 세태를 비판하려 했다. 한편 울트라맨이 취하고 있는 ‘만세’ 자세는 일본인들이 천왕 즉위식 때 ‘만세’를 세번 외치며 환호했던 것에서 착안한 것이다. 또한 만세 자세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연합군이 일본군 자살 특공대를 ‘banzai(만세)’라고 부른 것과도 관련이 있다. 즉 울트라맨은 국가에 충성한다는 믿음 아래 동원돼 죽어갔던 사람들을 상징한다. 이렇게 작가는 일본 어린이들에게 가장 친숙한 대상을 끌고 와 일본의 맹목적인 군국주의를 꼬집고자 했다.

그림 ②

이번 전시에는 귀여우면서도 심술궂은 표정을 한 캐릭터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도 출품돼 생소한 작가의 작품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일러스트까지 다양하게 다룬다. 기획을 맡은 도쿄국립근대미술관 마츠모토 토루는 “한 시대에 공존한 여러 국가의 작품을 모은 전시는 많았지만, 일본이라는 한 공간의 미술 변천사를 다루는 전시는 매우 이례적”라며 전시의 의미를 밝혔다.

포근해지는 날씨에 마음도 가벼워지는 새 학기,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현대미술 작품을 ‘탐구’하러 떠나는 것은 어떨까. 일본 현대미술사의 흐름을 따라 전시장을 거닐다 보면 당신의 뇌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줄 기발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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