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년 동안 많은 인권단체들은 인권 후퇴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 및 혐오를 막기 위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해 왔다. 차별금지법은 그동안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청소년, HIV/AIDS 감염인, 비정규직, 비혼모 등 사회적 소수자가 겪을 수밖에 없었던 차별과 폭력을 멈추게 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적 인권법이다. 근거 없는 편견으로 인한 명시적인 차별을 금지하자는 것이 법의 취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 정부는 소수자의 인권 신장에 미온적으로 대응해 왔다. 선진국의 문턱에 올랐다지만, 여전히 인권 감수성에서는 사회·경제적 발전이나 기대 수준에 걸맞지 않는 행보를 보여 온 것이 사실이다. 이를테면 2010년 법무부는 1년여에 걸쳐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특별분과위원회를 구성·운영까지 했지만 이후 별다른 움직임을 취하지 않았다. 지난 18대 국회에서는 시민단체가 주도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이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폐기되었다. 오히려 정부가 권력을 이용해 차별을 방관하거나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마저 있었다.

정부가 인권 보호에 미온적인 사이 포괄적 차별 금지법에 대한 국내외적 요구는 높아져만 가고 있다. 2011년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와 아동권리위원회는 각각 최종견해를 발표해 한국정부가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한 시급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지난해 8월에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도 한국정부의 신속한 행동을 촉구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적극적인 정치적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현재 19대 국회에서도 김재연 의원, 김한길 의원, 최원식 의원이 각각 차별금지법을 이미 발의한 상태다. 대부분의 인권선진국들이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채택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실효성 있는 법적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 역할을 못한다고 비판받던 국가인권위원회조차 올해 1월 차기정부에서 추진해야 할 주요 12대 인권과제 중 차별금지법 제정을 포함시켜 인수위원회에 제시한 바 있다.

지난달 25일 ‘국민행복’을 위한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다. 진정 국민행복을 가능케 하고 싶다면 이제는 헌법의 평등 이념을 실질적으로 실현할 때이다. ‘사회경제적 부담에 대한 우려’와 ‘사회적 합의의 부재’를 핑계 삼아 차별금지법 제정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은 그만둬야 한다. 책임과 역할을 방기한다면 결코 ‘희망의 새 시대’의 문턱에조차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강진제
미학과·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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