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나의 학문을 말하다 ② 최만수 교수(기계항공공학부)

‘레고’로 대표되는 조립식 블록완구는 전세계적으로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들의 사랑을 받는 장난감이다. 블록완구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특별한 기능이 있는 작은 블록들을 조립해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블록 놀이를 ‘나노 입자 연구’에 대입해 본다면 어떨까. 최만수 교수(기계항공공학부)는 ‘나노 입자’를 조립해 ‘나노 빌딩’을 만드는 조립 공정을 개발했고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12 서울대 학술연구상을 수상했다.

사진: 전수만 기자 nacer8912@snu.kr

삽화: 최지수 기자 orgol222@snu.kr

‘나노 빌딩 대량 생산’의 초석을 놓다

1980년대부터 나노 기술(nano technology, 10^(-9)m 수준의 미시 입자를 다루는 기술)은 거시세계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한 기존 과학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을 신생 기술로 과학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이후 십여년 전까지는 나노 기술 연구는 나노 입자를 만드는 데 집중됐다가 나노 입자를 만드는 연구가 성과를 내게 되자 만들어진 나노 입자를 조립하는 쪽으로 연구 방향이 전환됐다.

나노 입자와 같이 미시적인 입자를 다루는 것은 거시적 입자를 다루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최 교수는 “중점적으로 작용하는 힘의 종류에서 차이가 있다”며 “큰 물체는 관성이 크지만 나노 입자는 질량이 작아 관성이 클 수 없다”고 그 차이점을 설명했다. 이어 최 교수는 나노 입자를 다루기 위해 “조립 공정에 정전기적 힘을 사용한다”고 밝혔다. 나노 입자를 다루는 데 정전기적 힘을 사용하는 것은 보편적인 방식이다. 이러한 보편적 방식과 시행착오의 만남에서 새로운 기술에 대한 아이디어가 탄생했다.

최 교수는 양극으로 대전된 나노 입자와 가스 이온를 함께 뿌려 감광막의 틈새를 채우는 실험을 진행했다. 뿌려진 이온과 입자가 함께 감광막의 틈새를 채울 것이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비교적 가벼운 가스 이온이 먼저 감광막에 붙어 나노 입자들을 밀어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그는 가스 이온이 붙은 감광막을 이용해 나노 입자를 원하는 곳으로 모으는 창의적인 방식을 떠올리게 됐다.

출처: 「과학동아」 2012년 4월호

가스 이온을 특정 패턴으로 그린 후 그 위에 대전된 나노 입자를 뿌리면 나노 입자와 가스 이온 사이의 정전기적 힘에 의해 특정 부분으로 모이게 된다. 이 방식을 최 교수는 ‘이온으로 만든 볼록렌즈’에 비유했다. 빛이 볼록렌즈를 통과한 후 한 점으로 모이는 것처럼 나노 입자도 가스 이온이 형성한 전기장을 거쳐 한 점으로 모이기 때문이다. 그는 계속해서 나노 입자를 뿌려주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입자가 쌓여 구조물이 되는 것을 건축물에 비유해 ‘나노 빌딩’이라 칭했다. 뿐만 아니라 가스 이온을 뿌리는 패턴을 바꾸면 다양한 패턴의 나노 빌딩을 만들 수 있어 IAAL(Ion Assisted Aerosol Lithography, 3차원 병렬식 조립 공정)이 탄생하게 됐다.

나노 조립의 새 지평을 열다

최 교수는 IAAL을 개발하며 나노 기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 이전까지 나노 입자 조립 공정은 ‘2차원 병렬식’ 혹은 ‘3차원 직렬식’에 머물러 있었기에 그의 연구의 성과가 갖는 의미는 더 크다. 2차원 조립의 경우 문자 그대로 평면상에서 조립하기 때문에 입체 구조를 만들 수 없다. 그리고 직렬식의 경우 소자 하나하나 조립해야 하기 때문에 생산 단가가 비싸고 느리며 공장화할 수 없어 실용적이지 않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최 교수가 개발한 IAAL은 입체 구조를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병렬식이기에 실용적이다. 진공에서 진행해야 하는 다른 공정들과는 달리 진공 상태가 아닌 대기압 상에서도 공정이 진행된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최 교수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직 더 발전시켜야 할 부분이 많다”고 말하며 그 중에서도 △공정 면적을 넓히는 것 △시간 단축 △구조물 강화를 개선해야 할 요소로 꼽았다. 공정 면적을 넓히는 것은 이 기술이 대량 생산에 이용될 때 꼭 필요한 요소다. 현재 조립 공정이 가능한 크기는 5cm×5cm 정도이다. 이 크기는 나노 입자를 다루는 공정임을 고려할 때 작지 않은 크기지만 최 교수는 “더 많은 소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정 면적을 더 크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더불어 짧은 시간에 더 많은 빌딩을 생산하기 위해 나노 빌딩이 완성되는 시간을 줄이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이 최 교수의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구조물 강화의 경우 공정을 통해 만든 소자가 외부의 힘을 받을 때를 대비해 필요한 과정이다. 현재 공정을 통해 만들어진 빌딩 나노 입자가 ‘쌓여’ 만들어졌기에 외부에서 힘을 받으면 다시 흩어진다. 공정을 통해 만든 소자가 태양전지와 같이 한 곳에 설치돼 놓여있는 경우에는 구조물을 강화할 필요성이 없다. 하지만 가스 센서처럼 나노 소자가 기체에 의해 움직이고 힘을 받는 경우 구조물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출처: 「과학동아」 2012년 4월호

조립 공정, 에너지 시스템 연구에 응용하다

최 교수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3차원 병렬식’ 공정을 발전시키는 연구와 공정을 이용해 태양전지에 이용할 소자를 만드는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태양전지에 접목시킨 연구는 최 교수가 단장으로 있는 ‘멀티스케일에너지시스템연구단’의 중요한 연구 과제이기도 하다. ‘멀티스케일에너지시스템연구단’은 고효율·저가 신재생에너지 원천기술을 확보해 에너지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2011년 출범했다. 이 연구단은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어 나노·마이크로·매크로를 통합하는 ‘멀티스케일 3차원 아키텍처링(architecturing)’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신재생 에너지 시스템 내에서 벌어지는 근원적인 광에너지와 분자에너지의 전달 및 변환 과정은 나노 및 마이크로 수준에 걸쳐있고 에너지 시스템 자체는 매크로 수준이다. 때문에 연구단은 나노·마이크로·매크로를 통합하는 ‘멀티스케일 아키텍쳐링’을 통해서 새롭게 구현되는 초물성을 실제 에너지 소자에 적용하여 효율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연구단은 △멀티스케일 아키텍처링 기술 △광에너지 융합시스템 기술 △분자에너지 융합시스템 기술 △지능형 에너지 소재 기술이라는 네개의 과제를 두고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 연구는 대한민국 에너지 문제에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신재생 에너지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낮은 효율과 환경적 조건 문제로 현재까지는 화석 연료와 경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 교수를 비롯한 국내 연구진의 효율 극대화 연구가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 희망의 ‘빛’을 비춰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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