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초월한 벤야민의 지혜
시간을 초월한 벤야민의 지혜
  • 정승호 기자
  • 승인 2013.03.17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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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행사] 2013 벤야민 커넥션

지난 9일(토)~10일 서울시립 정독도서관에서 도서출판 「길」 주최로 독일의 문예비평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을 재조명한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틀에 걸쳐 열린 이번 행사는 「2013 벤야민 커넥션 쓰여지지 않은 것을 읽다: 발터 벤야민의 현재성」이라는 주제로 개최됐다. 벤야민은 형이상학과 유대신학을 역사적 유물론과 결합시킨 독특한 사상가로서 문학이론, 철학, 미학, 인류학 등 다방면의 학문에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국내에서도 그의 사상에 대한 연구가 여러 학문 분야에서 이뤄졌으며 이번 행사에 4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릴 정도로 벤야민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사진: 김은정 기자 jung92814@snu.kr


‘벤야민 커넥션’이란 제목답게 이번 학술대회는 벤야민의 사상이 현대의 여러 요소들과 연결되는 부분, 즉 ‘현재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첫째날에는 △기억 △이미지 △인간, 둘째날 △번역 △정치 △정의에 관한 주제로 문학, 철학, 예술학 등 여러 전공 분야 연구자들의 발표가 진행됐다. 또 각 일정의 마지막에는 독일의 다비드 비텐베르크 감독이 제작한 영화 「발터 벤야민을 추억하며: 우정의 이야기들」이 상영됐다. 주최 측은 “형식주의적인 학술대회는 지양하고자 했다”며 독창적인 구성을 시도하고자 했음을 밝혔다.

10개의 발표 주제 중에서도 벤야민의 사상이 현대에 어떤 관점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 탐구한 발제들이 눈길을 끌었다. 임석원 교수(이화여대 독어독문학과)는 벤야민의 ‘비판적 휴머니즘’의 현대적 의미에 대해 발표했다. 벤야민은 ‘고전적 휴머니즘’의 인간중심적 성격을 비판하고 ‘인간이 아닌 대상’도 포용하는 ‘비판적 휴머니즘’을 제시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비관을 동시에 품은 과학기술 시대가 도래하던 때 벤야민은 ‘인간의 범위’에 대해 깊이 고찰했던 것이다. 그 결과 벤야민은 인간의 협소한 범위를 확장시켜 인간과 자연, 인간과 기계를 한데 묶어 이들 간의 ‘공진화(共進化)’를 추구했다. ‘공진화’란 각 주체들 사이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적 변화를 말한다. 임 교수는 이와 관련해 “인간 복제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현대과학 속에서 벤야민의 사상은 인간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지 고민하게 만든다”며 그 의의를 전했다.

이어진 발제에서 강수미 교수(동덕여대 회화과)는 벤야민의 ‘역사철학적 예술이론’을 현대미술과 접목시키는 시도를 보였다. 벤야민은 예술작품이 각 시대에 속한 경향들을 다면적이고 종합적으로 표현한다는 관점에서 ‘역사철학적 예술이론’을 주창했다. 강 교수는 “한 시대의 종합적 표현물은 과거를 넘어 현재에도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며 “20세기를 넘어 21세기 현재까지도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동시대성(contemporariness)’을 내포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대미술은 역사적으로 전승된 설명이 아닌 새로운 ‘이미지 공간’을 구성하는 자유로운 창작행위로 인식된다. 강 교수는 “벤야민의 사상에는 정답을 설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를 내도록 자극하는 매커니즘이 있다”고 했다. 이 관점에서 보면 현대미술 역시 고정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계속해서 재생산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사진: 김은정 기자 jung92814@snu.kr


다음날 이어진 발제에서는 김홍중 교수(사회학과)가 ‘파상력(波像力)’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현대 자본주의 시대의 성격을 논했다. 벤야민의 에세이 『파괴적 성격』에서 유래한 ‘파상력’은 ‘이미지(像)를 부수는(破) 힘(力)’이라는 뜻이다. 『파괴적 성격』에 등장하는 ‘파괴자’는 기존 체계와 가치를 와해시킴으로써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데 이를 ‘파상력’이라 정의했다. 그는 “근대적 삶을 지배하는 자본주의는 파상력을 내포한다”며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들면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한다”고 했다. 따라서 현대인은 파상력에 의해 해체된 전통과의 단절, 즉 ‘체험의 빈곤’을 경험하게 되지만 오히려 이를 통해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아인슈타인과 같은 현대적 천재들은 ‘체험의 빈곤’을 통해 역설적으로 새로운 창조 행위를 할 수 있었다고 이해된다. 더 나아가 김 교수는 “파상력은 현대를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주요 개념”이라며 그 뜻을 밝혔다.

발제 후 상영된 영화 「발터 벤야민을 추억하며: 우정의 이야기들」은 특별한 등장인물과 줄거리 없이 벤야민과 관련된 풍경과 벤야민의 지인 사진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관련된 이야기를 간략하게 들려준다. 직접 행사에 참여한 비텐베르크 감독은 “이 영화는 기억의 작업”이라며 “그저 이야기를 펼칠 뿐”이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최성만 교수(이화여대 독어독문학과)는 개회사에서 “벤야민 사상에 자극을 받아 인문학·사회과학·예술학 분야의 연구가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학술대회를 주관했던 도서출판 「길」의 이승우 실장은 “기존 학술대회가 관계 인사들만 접근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극복하고 싶었다”며 이번 행사의 기획의도를 밝혔다. 특히 이번 행사에 많은 대중들이 참여한 것을 두고 이 실장은 “출판사, 저자, 독자가 연결되는 ‘삼각고리’를 통해 더욱 활발한 행사가 됐다”며 “추후에도 일반 대중들이 접근하기 쉬운 학술대회를 기획하겠다”는 앞으로의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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