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어머. 어떡해. 다 타버렸네. 이 집 장사 엄청 잘 됐었는데…” 오랜만에 인사동에 들러 점심 식사를 하려했다는 한 시민은 숯더미만 남은 화재현장 앞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난달 17일(일) 인사동3길 피맛골 먹자골목에서 발생한 화재는 1시간 30분 동안 건물 8개와 19개 점포를 전소시켰다. 건물들 지붕까지 통째로 내려앉아 사건 발생 전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감돌았다. 바닥에 뒹구는 앙상한 철근들과 벽에 남은 그을음이 당시 긴박한 상황을 예상하게 했다. 어느 방화범이 놓은 불 때문에 상인들의 터전도, 서민들 추억의 공간도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사진: 전수만 기자 nacer8912@snu.kr

이번 화재 발생 지역은 서울시 도시환경정비사업에 따라 전면 철거되는 형식으로 재개발될 예정이었다. 대학생 시절부터 피맛골 먹자골목을 드나들었다는 김수일씨(61)는 “예전에도 크고 작은 화재가 있었고 재개발을 통해 골목을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 나왔었다”고 전했다. 이 거리는 지은 지 30년이 넘는 낡은 건물들과 한옥을 개조한 목조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불길이 빨리 번지게 된 원인이 됐다. 또한 승용차 한대도 지나가기 비좁은 골목 때문에 소방차가 진입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비슷한 조건의 인근 지역엔 이미 옛거리를 허물고 르메이에르 종로타워와 같은 고층 빌딩들이 들어섰다. 노후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재개발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사동에 재개발 바람이 불었을 때 이에 반대하는 상인들도 있었다. 수익성만을 중요시한 개발은 피맛골의 역사성과 서민적인 정취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한 것이다. 재개발 반대 여론에 맞닥뜨린 서울시는 인사동 골목길의 전통적인 의미를 살리기 위한 ‘소단위 맞춤형’ 재개발 방식을 채택하겠다는 계획을 작년에 발표했다. 그러나 개발 대상을 선정하는 기준이 모호했으며 이마저도 상인들이나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기보다는 서울시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게다가 이번 화재 피해 지역을 포함한 피맛골의 상당 구역은 이 ‘소단위 맞춤형’ 개발 대상에서마저 제외돼 전면 철거될 운명에 처해 있었다.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인사동의 오래된 골목들에 담겨 있던 문화와 역사는 하나 둘씩 사라졌을 것이다.

피맛골 먹자골목은 회사원들이나 노인들이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하거나 빈대떡 하나를 시켜두고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던 장소였다. 그러나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빠른 시일에 수습하여 손님 여러분을 맞이하겠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만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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