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희 시간강사
(서어서문학과)
학생 여러분, 새 생활이 시작되는 3월에 이렇게 지면으로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얼마 전 흥미로운 뉴스를 봤는데, 깊은 생각거리들을 던져주는 내용이라 이곳에 소개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뉴스의 내용은 스페인에서 열쇠업자 조합이 강제퇴거 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이들 대신 주택의 문을 열도록 요청받은 소방관들 역시 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는 것이었어요. ‘강제퇴거’란 어떤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집세를 내지 않거나 집을 담보로 잡고 얻은 빚을 갚지 못하는 등 계약사항을 위반할 때, 집주인이나 금융기관이 관련법에 의거해 거주자를 쫓아내는 절차죠. 스페인은 지금 심각한 경제난에 처해 있고, 실업과 파산 등에 쫓기다 결국 강제퇴거 대상이 된, 문자 그대로 길거리로 내몰린 이들이 작년에만 700가구였다고 해요. 하루 두 건 꼴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결국 자살을 택한 이들에 대한 뉴스도 있었고요.

수많은 열쇠업자와 소방관 개개인들은 어떻게 뜻을 모아 저런 선언을 할 수 있었을까요? 정부의 의도를 거스르는 결정이 그들에게 불이익을 가져오지는 않을까요? 특히 소방관은 공무원인데, 정부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게 가능할까요? 아니 그 전에 저들은 왜 저런 결심을 했을까요? 답을 얻으려고 스페인 신문을 찾아봤어요.

출발은, 산 페르민 소몰이 축제로 유명한 도시 팜플로나의 15개 열쇠 관련 사업체(주로 작은 가게들인)로 조직된 조합의 입장 표명이었어요. 스페인의 강제 퇴거 절차에는 공식적으로 열쇠업자가 포함돼요. 퇴거 후에 자물쇠를 바꿔 달아야 하고, 거주자가 안에서 버티면 억지로 열어야 하니까요. 정부가 의뢰하는 일이기 때문에 보수가 비싼데다, 최근 몇 년간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에 팜플로나의 경우 전체 작업의 10%가 강제퇴거에 해당했다고 해요. 그래서 이를 거부하는 일은 수입의 10% 정도를 포기한다는 뜻이지요. 작년 12월에 이들의 선언이 있은 후, 곧 전국 각지의 300여 개 회사와 2천여 명의 열쇠기술자들이 가입한 ‘보안 열쇠업 연합’이 뜻을 같이했어요. 이곳의 대변인은 “전문가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우리에겐 양심이 있습니다. 그 양심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우리는 이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말했어요. 한 인간이 최소한의 적절성을 갖춘 주거환경을 갖는 것이 다른 인간 혹은 금융주체의 사유재산권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이지요.

이후 올해 2월, 스페인 북부지방의 도시 아 코루냐의 소방관들이 열쇠업자들을 대신해서 강제퇴거에 참여하라는 경찰의 연락을 받았어요. 일단 출동을 했고, 현장에서 80대 할머니가 대상이라는 점 등 세부사항을 파악한 뒤 이들은 ‘이것은 긴급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결정을 내렸어요. 그렇게 정의된 법적 권리가 있기 때문에 그 권리를 사용한 것인데, 다행히 시장을 위시해 시의 공무원들은 이를 인정하고 있지만, 여전히 불복종죄로 벌금을 물 가능성은 남아있다고 해요. 어쨌거나 곧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등 전국 주요 도시들의 소방관들이 찬성의 목소리를 냈어요. 마드리드 내 한 구역의 구역장이자 공무원노조 대변인인 한 소방관은 말했어요. “나는 15년째 인명을 구조해 왔습니다. 지금 와서 사람들의 삶을 파괴할 수는 없어요.”

정부에서 하라는 일이니 그냥 하면 가장 간단할 텐데, 왜 개인적인 손해를 감수하고 법을 어길 가능성을 무릅쓸까요? 양심은 저들에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열쇠업자 조합, 공무원 노조는 왜 존재할까요? 어쨌든 확실한 사실 하나는, 저 열쇠수리공들과 소방관들은 무슨 이유로든 사람에게서 먹고 씻고 잠잘 장소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고, 그 판단을 외면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행동했다는 점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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