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범석 석사과정
(국사학과)
2013년 현재 한국에서는 곳곳에서 불안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고 있다. 멘탈붕괴, 약칭 멘붕은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는 바람에 이따금 멘붕이라고 표현하는 상태가 과연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멘붕의 시대’에 치러진 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여야 모두 저마다 무상복지로 대표되는 보편복지를 앞세웠다. 실현 가능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유권자 전반에 존재하고 있던 복지정책에 대한 열망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기에 나타났던 상황이다.

이런 최근 현상들에 대응하는 것이 ‘힐링’의 유행이다. 본래 게임에서나 자주 쓰이던 말인 힐링이 이제 공중파 방송프로그램의 제목에도 들어가고, 상품광고에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공교롭게도 이런 힐링의 유행과 맞물려 「힐링이 필요해」라는 노래가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다시 불려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의문은 노래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제목을 평서형에서 의문형으로 바꾸면서 시작된다. “힐링이 필요해?” 쿨하게 아니라고 대답하기 어려운 이 질문에 불편한 시선을 담아본다. “어떤 힐링이 필요해?”

멘탈붕괴의 일상화, 보편복지 논의의 활성화는 불안을 경감할 지속적 안전망이 없는 시대의 산물이다. 그런데 지금 유행하는 힐링은 소비자의 감성을 공략하는 생산자의 입장에서 전유되고 있다. 힐링은 웰빙의 뒤를 이어 마케팅의 필수요소로 자리를 잡았고, 삶의 고통을 치유한다는 명목으로 일시적인 소비를 촉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힐링은 불안의 시대를 치유하는 지속적 안전망이기는커녕, 오히려 사람들을 더욱 소비에 긴박(緊迫) 하기 위해 위장된 일시적 안전망에 가깝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체제를 유지, 확대하기 위한 전략으로서의 힐링, 과연 이런 힐링이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정 얼마나 필요할까?

물적 대가를 전제하지 않고 관계가 지속되는 환경에서 힐링이 지속적 안전망이 될 수 있다. 그런 환경을 만드는 존재는 고전적인 해답, 사람의 공동체일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접촉하며 힐링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확실한 울타리인 기층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진다는 말은 해가 갈수록 눈앞 가까이 다가오고 있고, 지역사회는 개발을 둘러싼 이권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으며, 학생사회는 학생회로 대표되던 기존 대표체의 존립을 놓고 근본적 의문에 부딪히고 있다. 최근 주목받는 ‘무연사회’에 관련한 논의 또한 기층 공동체의 붕괴가 가져올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로 보인다.

시대의 불안을 치유하자는 기치를 걸고 많은 상품과 정책이 나와도 멘탈붕괴와 보편복지를 외치는 목소리는 줄지 않고 있다. 상품과 정책은 애초에 사람의 삶을 전반적으로 의지할 대상이 되기 어려우며, 불안을 견뎌내게 하는 지속적 안전망으로 기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불안을 치유하는 지속적 안전망은 붕괴된 기층 공동체를 재건하거나 새로운 형태의 기층 공동체를 창출함으로써 확보될 것이다. 바로 지금 여기, 가까운 사람들을 되돌아보며 새로운 힐링을 찾아보자. 멀리서 온 백마 탄 초인은 아니라도, 불안에 공감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함께 걸어갈 작은 영웅은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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