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사회와 마찬가지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부단한 사회 변화의 과정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가진 어휘가 끊임없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기존의 어느 한 낱말이 다른 새로운 뜻을 파생시켰거나 이전에는 없었던 어휘가 새로 나타났을 때 이를 ‘신조어’라고 부른다. 특히 최근에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보급으로 신조어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과거 언론과 학계 등 여론 주도층에서 만들어내던 신조어를 요즘에는 일반 대중들이 생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조어 사용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최근 국립국어원은 일간지와 인터넷 매체 등에서 사용된 신조어를 정리해 ‘2012년 신어 기초 자료’ 보고서를 펴냈다. 이 중에는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시대를 가리키는 ‘삼포시대(三抛時代)’나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될 만큼 비싼 책가방을 가리키는 ‘등골백팩’과 같은 신조어들이 소개되어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아무 말 없이 도망가는 경우를 가리키기 위해 ‘알바추노’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단다. 이외에도 기발한 조어법으로 각박한 현실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해내어 웃음을 자아내는 신조어들이 눈에 띈다.

그런데 이러한 신조어들에서는 ‘멘붕’을 일으키는 현실을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안간힘’이 느껴진다. 여기에는 스스로를 희화화함으로써 고단한 현실을 견뎌보려는 대중들의 무의식이 반영된 듯하다. 그런 점에서 이런 현상을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웃프다’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웃프다’는 ‘웃기다’와 ‘슬프다’의 합성어로, 당장은 피식 웃게 되지만 속사정을 생각하면 슬퍼지는 상황을 일컫는다. 가령 ‘성형국(성형을 많이 하는 나라)’으로 일컬어지는 한국 사회에서 “예쁜 게 죄라면 나는 평생 죄 짓고 살 일 없어”라고 하는 여성의 자기비하 발언이나 온 국민이 태풍 ‘볼라벤’의 진로에 촉각을 곤두세울 때 “태풍은 좋겠다, 진로도 있고”라고 하는 고등학생의 푸념은 ‘웃프다’는 공감을 얻는다.

삽화: 최지수 기자 orgol222@snu.kr

이처럼 현실을 ‘웃프게’ 바라보는 태도는 피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나름의 대응방식일 수 있다. 작년에 유행했던 ‘힐링’ 코드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식으로 현실 문제들을 회피하면서 자기 위안만을 추구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반면 ‘웃프다’는 현실의 씁쓸한 문제들을 직시하고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약자에 대한 공감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보여준다. 자기 자신을 희화화하는 ‘희생’을 감수함으로써 우회적으로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표출하는 한편, 나아가 다른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기서의 ‘슬픔’은 자기 내면의 슬픔에 갇혀 당면한 현실을 외면하는 무기력하고 자폐적인 ‘우울’과 대비된다.

지금 대중들은 무엇을 해도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비관적인 현실 속에서 섣불리 절망하지 않기 위해 현실을 ‘웃프게’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현실을 ‘웃프게’ 보는 시선 자체는 ‘슬픈’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리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웃어야 한다. ‘웃음’은 소통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타자와의 소통을 가능케 함으로써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미약한 희망이나마 발견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웃픈’ 것들은 프로포폴을 투약하는 것보다는 희망적이지 않은가.

안지영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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