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희 취재부장
뒤늦게 본 영화 ‘레미제라블’의 마지막 장면은 울림이 상당했다. 모든 주인공들이 깃발을 들고 바리케이트 위에서 부른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은 영화관 밖에서도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민중들은 맨주먹으로 그토록 거대해 보였던 왕정복고기의 앙시앙 레짐에 대항했다. 영화의 결말은 비록 혁명 실패였지만 관객들이 그 속에서 희망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역사가 민중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레미제라블’에서 대선을 상기했지만 내 기억은 2011년 여름을 향했다. 하루 아침에 통과된 법인화법에 반대해 학생들이 본부를 점거한 그날의 기억이다. 본부점거가 있었기 때문일까. 학생들에게 법인화는 단순히 대학의 정체성이 전환된 사건이 아니었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 아니다’를 각인시킨, 그리고 학생사회가 학교를 변화시킬 수 없음을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학생총회를 성사시키고 본부를 점거하고 몸소 항의했지만 결국 달라지는 건 없었고 누군가 그다지도 염려했던 법인 원년도 그렇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 지나가버렸다. 학생사회에 퍼진 지금의 무기력과 회의주의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서울대 학생사회는 지난 4개월 간 대표 공백 현상을 마주해야 했다. 지난 총학 선거는 투표 마감일을 며칠 앞두고도 투표율 앞자리가 2를 벗어나지 못하더니 결국 사상 최초로 연장투표 없이 무산되는 새 역사를 기록했다. 무산은 총학 선거에만 해당되지 않았다. 사회대, 인문대 그리고 농생대까지. 단과대 선거도 줄줄이 무산이라는 쓴맛을 봐야했다.

이런 상황에 한줄기 희망을 던져보자면 ‘레미제라블’의 울림을 기억해보자는 말이면 충분할 것 같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오늘날을 형성한 수많은 대중운동, 학생운동들도 끝없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서울대 안에서의 실패는 단지 2011년 본부점거 뿐만이 아니었다. 2000년대 초반 학생들은 본부를 점거한 뒤 ‘등록금 인상분을 되돌려 달라’고 외쳤지만 총장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등록금 인상분 반환은 불가능하다’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실패로 여겨졌던 그날의 노력들은 미지의 성공을 향한 발걸음이었다. 인상분 반환을 요청하던 때와 비교해 지금은 등록금심의위원회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되려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2011년 본부점거는 실패했지만 그날의 문제제기가 없었다면 본부와 학생간의 대화협의체가 열리고 평의원회의 학생 참관이 가능했을지도 미지수다. 자잘한 파도 하나하나는 그때 당시엔 별다른 움직임을 만들지 않는 것 같아도 조금만 거리를 두고 조망해보면 한 방향으로 흐르는 거대한 물결의 일부인 것이다.

지금 다시 우리는 본부점거를 떠올리자. 이 말을 지금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본부 직원들을 밀쳐내고 본부를 점거하자는 말로 오해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비록 법인 원년 뒤로 흘러가버린 하나의 잔물결에 불과한 본부점거일지라도 결국 학생사회의 큰 흐름에서 학생사회의 방향을 1° 틀게 한 변곡점이었음은 틀림없다. 본부점거는 “학생은 단지 교육의 소비자가 아니다”라는 외침의 연장이었고 학생들도 충분히 주도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오늘부터 닷새동안 교수협의회 회장을 선출하는 투표가 진행된다. 특기할 점은 이번 투표가 직선제로 시행된다는 점이다. 직선제 변화의 배경에는 법인화 전환 이후 교수들이 느꼈던 어떤 위기의식이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교수협은 직선제로의 변화가 법인화 이후 본부의 의사소통 구조에 잔물결이라도 일으킬 것이란 기대를 걸고 있다. 작은 잔물결을 일으켜보려는 이런 교수사회와는 다르게 학생사회는 여전히 조용하다. 침체된 학생사회를 위한 그 여름의 변곡점이 필요할 때다. 그리고 우리 앞에 당장의 기회를 찾아보자면 총학 재선거가 놓여있다. 그 변곡점을 삼을 만한 기회, 총학 선거 성사면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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