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동아리 소개제에서 있었던 일이다. 행사가 시작되던 3월 13일 아침에는 밴드 연주 때문에 사무실에 앉아 있기가 상당히 불편했다. 소리가 괴로움을 느낄 정도로 크지는 않았고, 그래서 ‘곧 끝나려니’ 하고 참고 지내려 했다. 그렇지만 점심시간이 다가오도록 연주가 이어졌을 뿐 아니라, ‘내 방에서 이렇게 들리면 연주하는 곳에서 가까운 데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괴로울까’ 하는 생각도 떠올랐다. 그래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갔더니, 동아리 소개제가 열리는 행정관 뒤편이었다. 학생회관 쪽에다 야외 음향시설을 갖 놓고 학생들이 연주에 열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농담을 할 계제가 아니어서 그저 연주하는 학생들을 붙잡고 인문대 교수라고 신분을 밝히며 소리가 너무 크니까 자제해달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행사를 주관하는 동아리 연합회 관계자를 비롯해 몇몇 학생들이 다가와 내게 설명해줬다. 동아리 소개제가 학교 당국에서 허가한 행사이며, 밴드 연주는 행사를 알리는 데 필요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또 그것이 오랜 관행이라는 것이다.

나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행정관 뒤편에서 밴드를 연주하면 도서관이나 강의실, 또는 연구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리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은 여러 사람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동아리를 알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들에게는 당국에서 인정하는 권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도 권리가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때 도서관이나 강의실, 또는 연구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방해를 받지 않고 학업이나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따라서 권리에 관해 말하자면, 상이한 권리가 충돌하는 상황을 생각할 수 있다. 필자는 행사 관계자들에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해 그들의 권리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행사를 진행할 수는 없는지 생각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권리를 행사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다면 그것은 권리를 넘어 권력이 된다고. 게다가 피해자가 항의하는데도 권리 행사를 계속한다면, 그것은 권력을 넘어 폭력이 된다고 말이다.

이런 논리가 언제, 어디서나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동아리 소개제를 비롯해 학생들이 행사에 음향시설을 동원한 것은 80년대에 시작된 일인 것 같다. 그 암담한 시절에는 그런 방식으로라도 자신들의 존재와 견해를 밝히는 것이 권리를 주장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 부당한 권력에 맞서 소중한 권리를 쟁취하려는 노력이었다. 그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많은 권리를 누리며 살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권리와 함께 따라온 그 시절의 관행 가운데서 버려야 할 것은 없는지 살펴볼 필요도 있다.

 

배영수 인문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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