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은 스위스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1857~1913)의 사후 100주년을 맞는 해다. 소쉬르는 당대 주류언어학을 비판하며 언어학의 연구대상을 근본적으로 재설정했다. 특히 그의 언어학에서 인식론적 전환은 세계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뒤바꾼 구조주의 사상으로 발전했다. 『대학신문』은 이번 기획을 통해 소쉬르의 사상을 재조명하고 현재 그에 대해 진행되고 있는 연구를 탐구한다. 더불어 그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제공하는 메시지를 들어본다.

언어학을 독립 학문 반열에 올리다

“(언어학이란) 모든 언어에서 영원하고 보편적으로 작용하는 힘을 찾아보며, 역사의 모든 독특한 현상을 포괄할 수 있는 일반법칙을 추출해 내는 것이다” (『일반언어학 강의』)

소쉬르는 당대 언어학계의 주류이던 ‘비교언어학’을 비판하며 언어의 일반적인 특성을 연구대상으로 삼고자 했다. 그가 살던 19세기 말은 같은 계통의 두가지 이상 언어를 비교해 그 어원을 추적하는 ‘비교언어학’이 절정을 이루던 시대였다. 그 역시 비교언어학에 정통했으며 그의 몇 안 되는 저술 가운데 하나인 『인도유럽어 원시 모음 체계에 관한 논고』(1878)는 후대 인도유럽어족 연구에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소쉬르는 언어활동의 보편적 문제를 다루기 위해선 개별 언어 간의 비교 또는 역사적 변화 과정을 탐구하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언어학인가

소쉬르는 언어학의 연구대상을 기존과 전적으로 다르게 인식했기 때문이다. 소쉬르에게 언어는 다른 학문의 연구대상과 다르게 이미 존재하고 있는 대상이 아니며 관점에 의해서 창조되는 실체라고 생각했다. 비교언어학은 일차적으로 개별 언어에 대한 데이터를 연구대상으로 설정하고 이것을 귀납적으로 분석한다. 소쉬르에 따르면 이는 허상을 탐구하는 일이 된다. 따라서 소쉬르는 “언어학은 자명한 공리(公理)를 연구대상으로 설정한 후 그로부터 연역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소쉬르는 이런 공리의 성격을 갖춘 언어학의 연구대상을 ‘랑그(langue)’로 가정했다. ‘랑그’는 사회적 규범이 내재된 ‘언어체계’이자 ‘구조’로 정의된다. 이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개별적이며 구체적인 발화를 ‘파롤(parole)’이라 하며 이는 랑그라는 구조 속에서 의미를 갖게 된다. 예를 들어 ‘한국어’, ‘영어’와 같은 사회적 규범이 존재해야 개별적인 파롤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소쉬르는 언어의 본질을 랑그로 보고 이를 언어학의 공리로 가정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파롤은 언어구조인 랑그 속에서 ‘분절된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영어라는 랑그에 속한 사람은 ‘sea’와 ‘ocean’을 구분해서 쓴다. 그런데 한국어라는 랑그에 속한 사람은 ‘작은 바다’와 ‘큰 바다’ 구분하지 않고 ‘바다’만 사용한다. ‘한국어’는 ‘바다’까지만 의미를 분절하지만 ‘영어’라는 랑그에서는 ‘sea’와 ‘ocean’까지 의미를 분절하는 것이다. 랑그 속에서 말의 의미가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학의 연구대상을 랑그로 가정하고 그것이 의미를 분절하는 과정을 구조적으로 분석을 함으로써 언어학의 연역적 방법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소쉬르는 연역적 방법이 성립되기 위해 시간을 배제한 ‘공시태(synchronie)’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그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파롤의 변화가 언어의 미묘한 변화를 야기해 랑그가 변하게 하는 것으로 파악했으며 이를 랑그의 구조적 분석에 방해가 되는 요소로 생각했다. 이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시간을 축으로 언어가 변화하는 양상을 ‘통시태(diachronie)’라고 정의했으며 비교언어학이 그 예가 된다. 이중 소쉬르는 공시태를 언어학의 연구대상으로 정의한 것이다.

전통과의 단절

이로부터 소쉬르는 랑그가 자의적 기호체계임을 이끌어 냈다. 그는 기호를 의미 전달의 단위라고 정의한 뒤 문자·음성과 같이 지각 가능한 부분을 ‘기표(記標)’, 내재된 의미를 ‘기의(記意)’로 구분했다. 그런데 소쉬르가 제시한 기호개념은 전통적인 서유럽의 기호개념과 큰 차이를 보인다. 서유럽의 기호는 사물·낱말·관념 3가지로 구성된다. 하지만 소쉬르는 기호의 일부인 언어가 랑그에서 분절돼 의미가 결정되기 때문에 언어가 필연적으로 결합해야 하는 사물이란 없다고 봤다. 이를 ‘기호의 자의성’이라 했으며 전통적 서유럽의 기호에서 사물이 빠진 것이 소쉬르의 기호라고 할 수 있다. 또 기표와 기의 역시 서로 자의적 관계를 맺는 것으로 해석했다. 문자나 의미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언어가 성립할 수 없다. 따라서 기표와 기의의 결합에 있어 어떤 우선권이나 필연적인 선행관계는 있을 수 없고 자의적 원칙만이 있을 수 있다.

랑그의 자의성을 통해 소쉬르는 서유럽의 전통 언어관인 ‘사전목록식 정의’를 비판한다. 사전목록식 정의는 사물과 이름이 일대일 대응관계로 존재한다고 보는 언어관이다. 대상이 먼저 주어지고 언어라는 이름이 붙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예를 들었던 ‘바다’와 ‘sea’는 의미가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에 완벽히 일대일로 대응될 수 없다. 따라서 각각의 랑그인 ‘한국어’와 ‘영어’로부터 분절하는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언어가 결합해야 할 대상이 미리 정해지지 않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사전목록식 정의는 성립할 수 없다.

이처럼 소쉬르는 랑그를 연구대상으로 정의하는 언어학을 ‘일반언어학’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의 사후 제자들이 일반언어학 이론을 정리한 『일반언어학 강의』(『강의』)를 통해 소쉬르의 사상이 후대에 전해지게 됐다. 일반언어학은 랑그를 언어학의 유일한 과학적 탐구영역으로 설정함으로써 사회학, 생리학, 심리학 등의 학문으로부터 랑그의 자율성을 확보를 했다. 따라서 언어학이 독립 학문의 위상을 차지하게 했다. 무엇보다 일반언어학은 전통 서유럽의 기호학관, 언어관을 전복시킴으로써 이후 언어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


혁명으로 발전한 소쉬르의 사유

소쉬르의 언어학에 대한 인식론적 전환은 세계에 대해 기존과 전혀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구조주의’로 발전했다. 소쉬르는 구조적 관점에서 개별 언어가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독립적이며 구체적인 대상의 본질을 추구하는 기존 경험주의나 실증주의의 태도를 거부하며 관계의 망 속에서 분절된 대상의 의미를 찾는 구조주의로 발전하게 됐다. 이는 전통적인 사고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사상이다.

소쉬르의 사유가 처음부터 파급력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우선 그의 사후 당시 언어학자들은 소쉬르의 이론을 즉각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워했다. 김현권 교수(한국방송통신대 불문과)에 따르면 “일반언어학의 추상적이고 형식적 특성 때문에 당대의 학계에서 즉각 제대로 이해되지 못했다”고 했다. 여기에 『강의』가 소쉬르의 사상을 잘 반영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심도 한몫 했다. 소쉬르의 제자인 언어학자 앙투안 메이예(A. Meillet)마저도 “소쉬르 선생이 살아있다면 이런 식으로 출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또다른 이유로 김 교수는 “1차 세계대전 후유증 때문에 유럽 전반적으로 학문 연구가 안정되지 못했다”며 “소쉬르에 대한 연구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인식론적 혁명으로

그러다 1930년대 들어서 언어학계의 ‘프라그학파(prague school)’라는 집단에 의해 그의 사상이 다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로만 야콥슨(R. Jakobson)과 니콜라이 트루베츠코이(N. Trubetskoi)로 대표되는 이들은 소쉬르의 일반언어학을 계승하며 구조언어학의 일종인 ‘음운론’으로 발전시켰다. 음운론은 언어의 소리 구조를 연구하는 언어학의 한 분야다. 음운론 언어학자들은 랑그와 파롤의 개념을 도입해 언어구조에서 말소리가 어떻게 변별적 의미를 갖는지 탐구했다. 그런데 야콥슨의 제자이자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 Levi-Strauss)가 음운론을 수용하면서 본격적으로 구조주의의 역사는 시작됐다.

1950년대 레비스트로스는 야콥슨의 음운론을 인류학에 적용시킴으로써 ‘구조인류학’을 정립했다. 음운론이 랑그에서 각 소리의 변별적 의미를 탐구하듯 인류학도 사회·문화적 체계에서 개별 인간의 행동 양식을 구조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레비스트로스 이전 인류학은 경험주의적 관점을 바탕으로 인간사회의 구조를 관찰 가능하다고 이해했으며 사회 표면에 위치한 대상의 관찰을 통해 사회 구조와 기능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개별 현상으로부터의 귀납적 추론이다. 하지만 경험주의를 배격하는 구조주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 구조는 관찰할 수 없으며 의식할 수 없는 대상이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내재된 사회 구조를 상정하고 그것으로부터 논리적 질서를 찾는 연역적 방법을 추구했다. 언어학에서 비롯된 구조적 사유가 인류학에도 적용된 것이다.

이후 구조주의는 자크 라캉(J. Lacan), 미쉘 푸코(M. Foucault) 등의 학자들에 의해 더욱 심화됐다. 이들은 합리적 개별 주체의 합리적 이성이 아니라 주체에게 내재된 구조인 무의식으로부터 개별 주체가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하는지 분석하기에 이르렀다. 서양 철학의 기본 연구대상이던 합리적 이성을 부정하고 그것을 구조로 대체한 것이다. 나아가 문학비평, 사회학, 미학 등 인문·사회과학 전반을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시도가 행해졌다. 그리고 구조주의자들은 그들의 사상적 기원을 소쉬르에게서 찾았다. 단적으로 레비스트로스가 1961년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 취임 연설에서 “페르디낭 드 소쉬르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말에서 그 점을 알 수 있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프랑수아 도스는 이를 두고 “언어학에서 출발한 구조주의가 20세기 중반 모든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말 그대로 혁명을 일으켰다”고 평가했다.

구조주의가 남긴 것

하지만 구조주의는 80년대를 기점으로 급격히 쇠퇴했다. 구조주의의 대표주자라 불리던 라캉, 푸코, 롤랑 바르트(R. Barthes), 루이 알튀세(L. Althusser)가 이 시기에 동시에 비극적으로 사라졌던 이유도 있다. 하지만 구조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 자신이 독단적 ‘이성’을 끌어내리고 그것을 ‘구조’로 대체했지만 아이러니하게 다시 구조를 독단적으로 내세웠다는 것이다. 모든 현상에서 개별 주체가 미치는 영향을 배제하고 오로지 구조라는 관점에서만 설명하는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소쉬르로부터 시작된 구조주의는 이 세계를 독립된 실체들의 집합이 아닌 상대적 체계들의 계열관계로 보는 인식론적 관점의 전환을 제공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때문에 ‘구조주의가 가져온 인식론의 혁명’을 ‘지동설이 가져온 과학혁명’에 비유하는 학자도 있다. 더불어 구조주의는 인간주체의 독립성과 자율성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조건 속에서의 인간의 의미를 생각하게 했다.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지성의 빛

소쉬르가 죽은 지 정확히 한 세기가 지났다. 김성도 교수(고려대 언어학과)는 자신의 논문을 통해 “이미 언어학에서 구조언어학은 물론 촘스키의 생성문법이론도 구식으로 밀려나고 있다”며 “현재는 언어학의 탈중심적인 위기 시대다”라고 전했다. 게다가 구조주의는 주류에서 밀려난 지 오래다. 오늘날에 소쉬르의 사상을 재조명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소쉬르의 현대적 읽기

하지만 소쉬르의 사상은 다양한 분야에서 다시 읽히고 있다. 현 시점에서 소쉬르의 사상이 재해석될 수 있는 것은 그의 사상이 일종의 ‘성경’과 같은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김성도 교수는 “소쉬르의 사상은 일반적인 성격이 강하며 원론적인 방향을 제시할 뿐이기 때문에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강하다”며 “일종의 이론에 대한 이론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때문에 소쉬르의 사상으로부터 새로운 관점이 지속적으로 창출되고 있다.

일례로 오늘날 주목받는 ‘인지언어학’에서도 소쉬르의 이론과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인지과학의 발달로 등장한 인지언어학은 인지능력 즉, 인간이 대상을 이해하는 능력과 언어의 관계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최근 사회적 집단의식으로 형성되는 언어체계를 통해 인지능력이 구현되는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는 소쉬르의 ‘사회적 규범인 랑그를 통해 구체적 발화 파롤이 구현 된다’는 생각이 ‘사회적 집단의식인 랑그를 통해 인지능력이 발현한다’는 생각으로 확장된 것이다. 더불어 자의적 기호인 언어의 의미를 인간이 파악하는 과정에 인지능력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이는 소쉬르의 이론을 인지언어학적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시도다.

뿐만 아니라 최근 ‘사회언어학’에 소쉬르 이론의 개념을 적용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사회언어학은 보편적 언어능력을 탐구하는 촘스키의 생성문법이론에 대항하기 위해 등장한 언어학 분야로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언어의 다양한 변이를 연구대상으로 삼는다. 그런데 사회 속에서 언어의 다양한 변이는 소쉬르의 파롤과 같은 개념이다. 게다가 언어의 변이가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발생한다는 것은 사회·문화적 맥락을 랑그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회언어학의 기원을 소쉬르의 이론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에 김현권 교수는 “사회언어학의 관심 연구 대상인 언어 간 접촉, 언어 차용, 문화적 근거로서의 언어 등을 소쉬르의 관점에서 조명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고 밝혔다.

살아있는 지성

지난 2007년에 고려대에서 열린 소쉬르 탄생 15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는 언어학 외의 분야에서 소쉬르의 사상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재확인됐다. 소쉬르의 기호학적 관점에서 사진, 광고, 뮤직비디오, 게임콘텐츠를 분석하기 위한 시도가 행해졌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오는 7월에 열릴 제19차 세계언어학자대회를 통해 언어학계에서 현재 소쉬르의 어떤 면이 부각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을 듯하다. 세계언어학자대회는 최고 권위의 언어학 학술행사로서 이번 행사는 소쉬르의 사후 100주년을 기념해 그가 생전에 재직했던 스위스 제네바대학에서 개최된다. 특히 이번 행사 첫번째 세션에서 미국의 언어학자 뉴메이어(Newmeyer)는 ‘소쉬르와 그의 유산’이라는 대주제로 현대 언어학과 소쉬르의 접점을 집중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김성도 교수는 “이번 행사에서 소쉬르의 사상에 대한 다양한 현대적 해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소쉬르의 사상은 그 학문사적 업적 외에도 자기반성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소쉬르는 스스로의 학문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끊임없이 회의했다. 김현권 교수는 “소쉬르는 당대 주류인 비교언어학의 최고 권위자였음에도 비교언어학에 어떤 결점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고려했다”고 전했다. 소쉬르는 이런 회의감으로부터 자신의 학문이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이런 자기반성을 바탕으로 소쉬르는 기존 사고의 틀을 깨고 혁신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가 죽고 한 세기가 지났지만 그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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