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대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종료를 4일 앞둔 지난달 21일, 1천88만건의 대통령기록물이 대통령기록관으로 모두 이관됐다. 이명박 정부가 남긴 대통령기록물 총량은 참여정부보다 늘었음에도 중요도가 높은 비밀기록·지정기록의 수는 감소해 기록물 폐기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은 대통령기록물의 관리 체계와 대통령기록물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알아본다. 또 대통령기록물 관리의 모범사례로 뽑히는 미국을 비롯한 해외 각국과 우리나라 대통령기록물 관리 실태를 비교해봤다.


대통령기록물이란=대통령기록물은 △대통령 △대통령의 보좌‧자문‧경호기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등 대통령의 직무 수행과 관련된 기관이 생산‧접수해 보유하고 있는 기록물과 물품을 총칭한다. 대통령기록물이 가지는 의미는 일반적인 공공기록물에 비해 특수하다. 매년 반복해서 생산되는 일반 공공기록물과 달리 대통령기록물은 재임기간에만 생산되므로 해당 시기 정부의 특징을 명확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요 기록물은 차기 정부가 국정을 운영하는 데 참고할 지침서의 역할을 해 그 중요성 역시 일반기록물보다 월등히 높다.

기존에 대통령기록물은 공공기록물 관리법에 의해 별도로 규정돼 있기는 했지만 일반 공공기록물 이상으로 중요하게 다뤄지지는 않았다. 이로 인해 역대 정권의 대통령들은 임기가 끝나면 기록물을 폐기하거나 사저로 가져가 대통령기록물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 실제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기록물에서는 IMF 구제금융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없을 뿐더러 재임 시절 통치사료비서관을 두고 대통령의 언행을 기록하도록 한 전두환 대통령의 기록물에서조차 삼청교육대, 학원정화, 언론 통폐합 등과 관련된 기록은 전혀 찾을 수 없다. 그나마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기록물이 20만8천여건으로 가장 많고 다른 대통령들은 7천~4만3천여건의 기록만을 남겼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기록물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한 참여정부는 2007년 4월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825만건, 이명박 전 대통령은 1천 88만건의 대통령기록물을 남겼다.

대통령기록물은 임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된다. 기록물은 보안의 경중에 따라 일반기록, 비밀기록, 지정기록의 세가지로 나뉜다. 일반기록은 국민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기록물이며 비밀기록의 경우 대통령‧국무위원 등 일부 인가권자로 열람 가능 범위가 제한돼있다. 지정기록의 경우에는 기록물을 작성한 대통령 본인 이외에는 조회할 수 없도록 봉인해 10년에서 최대 30년까지 공개할 수 없다. 지정기록을 공개하기 위해서는 법원의 영장발부나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지정기록물에 대한 보안을 철저히 함으로써 대통령이 정쟁에 휘말리거나 후임정권에 악용되는 경우를 막아 걱정 없이 모든 기록물을 남길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삽화: 선우훈 기자 mrdrug@snu.kr

◇대통령기록물 관련 논란=이러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기록물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을 둘러싼 논란은 2008년 말 쌀 직불금 문제로 처음 불거졌다. 쌀 직불금 부당수령과 관련한 논란이 일자 노 전 대통령은 지정기록물이었던 쌀 직불금 수령자 명단의 지정을 해제하고 스스로 그 내용을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국회는 노 전 대통령의 발표와는 상관없이 재적 의원 3분의 2의 동의를 통해 지정기록물을 해제해 조사를 진행했다. 국민의 알 권리 보장과 국정운영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지정기록물을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과 지정기록물 공개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고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입장이 대립한 것이다. 결국 관련법 도입 1년만에 국회에 의해 지정기록물이 해제됨으로써 민감한 내용에 대한 보호장치를 마련하고자 한 지정기록물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졌다.

지정기록물을 둘러싼 논란은 대선을 앞둔 지난해 11월에도 벌어졌다.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더 이상 주장하지 않겠다고 한 발언을 기록물에서 확인했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역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본 적이 있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지정기록물로 분류돼있는 상황에서 이를 열람한 경우 실정법 위반이 되기 때문이다.

해당 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확대되자 한국기록학회를 비롯한 학계는 성명을 내고 “대통령기록물을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라”며 “기록이 정쟁의 도구가 되면 대통령 퇴임 후 정치적 압박에 휘둘릴 뿐이라는 왜곡된 인식을 낳고, 기록을 남기지 않는 현상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기록물 폐기 논란이 일었다. 지난 2월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된 기록물 중 지정기록물이 24만건, 비밀기록물 0건으로 대폭 감소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가 34만건의 지정기록물, 9,700여개의 비밀기록을 남긴 것에 대조되는 수치이다.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은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전체 기록물은 늘어나고 지정기록 건수는 줄어든 상황에서 비밀기록을 지정기록으로 넘기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가 기록물을 폐기했다는 것 밖에 가능성이 없다”고 기록물 폐기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참여연대도 “기록물을 폐기했다면 적법한 절차를 통해 폐기했는지 밝히라”며 “이명박 정부의 해명대로 비밀기록을 지정기록으로 지정했다면 차기정부조차도 기록을 보지 못하게 막은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할 것”이라고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가 기록물을 폐기했든 안했든 문제가 발생하는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야기한 데는 대통령기록물에 대한 정치인의 인식 부족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처럼 중요한 역사적 자료로 남기고자 지정기록물을 설정했지만 일부 정치인들이 단순한 눈앞의 이익을 위해 정쟁의 대상으로 지정기록물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대통령기록물에 대한 관리상의 허점이 있다는 비판도 이어진다. 대부분의 대통령 기록물 이관절차가 임기 말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임기 초 행적 중 일부를 삭제할 가능성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또한 구두보고는 그 내용이 중요함에도 기록물로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러한 관리상의 부실 등에 대한 구체적 관리방안이 수립되지 못해 정확한 지침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해외의 대통령 기록물 관리 실태=해외 각 국은 오래 전부터 국가수반기록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관련 기록물을 보관하고 있다. 특히 정치‧외교문서와 공무원 인사 등 공개될 경우 문제가 우려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지정기록물에 대해서는 철저한 보호조치를 취함으로써 해당 기록물이 악용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했다.

지정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은 한국과 미국, 유럽이 모두 유사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다만 기간에 있어 나라별로 약간의 차이를 두고 있다. 유럽은 20년에서 최대 60년을 봉인기간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조속한 정보공개가 요구되는 미국도 접근제한기록제도를 운영해 12년간 접근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적어도 차기정권이 종료된 후에야 지정기록물을 열람할 수 있게 함으로써 기록물이 차기정권에 의해 오‧남용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의회 역시 대통령지정기록물의 역할을 충분히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관련법 시행 1년만에 국회가 대통령지정기록물의 봉인을 해제한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 의회의 경우 1978년 접근제한기록제도가 도입된 이후 단 한 차례의 지정기록 해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통령기록관장 임명도 미국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우리나라는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기록관장 임명에 대한 특별한 규정이 없다. 이로 인해 지난 2010년에는 이 전 대통령이 청와대 행정관 출신 인사를 대통령기록관장으로 임명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대통령기록물의 기록‧관리를 측근에게 맡긴 것은 기록물의 위‧변조, 폐기 등을 용이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대통령기록관장 임명을 국가기록청장과 전임대통령과의 협의를 통해 진행하도록 설정했다. 또 최종적으로 의회의 동의를 구해 대통령기록물이 철저히 관리되도록 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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