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한 명의 소쉬르가 있을 뿐이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잘 알고 있는, 또는 어느 정도 잘 모르는 소쉬르”

오늘날 소쉬르는 일반언어학과 구조주의의 아버지로 기억된다. 그의 사상을 정리한 『강의』가 언어학 고유의 연구대상을 확립한 일반언어학에 초점을 맞췄으며 그 영향으로 20세기 중반 구조주의 사상이 정립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학문을 정리한 글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따라서 『강의』에 국한된 소쉬르가 아닌 ‘또 다른 소쉬르’를 찾기 위한 여정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이를 위해 ‘소쉬르학자’들은 기존 알려지지 않던 소쉬르가 직접 작성한 기록물을 발굴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소쉬르학’은 소쉬르 그 자체를 연구대상으로 삼는 학문으로 소쉬르가 남긴 기록물, 그의 일대기 등을 연구한다. 이들은 소쉬르가 남긴 노트, 자필원고, 편지 등을 종합해 소쉬르가 남긴 다른 이야기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이 발굴한 자필원고 덕분에 소쉬르가 ‘아나그램(anagram)’ 연구에 몰두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소쉬르는 고대 라틴어 시에서 시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미지가 구체화되는 규칙체계를 발견했는데 이를 아나그램이라 했다. 예를 들어 한 라틴어 시구 ‘Taurasia Cisauna Samnio cepit’ 중에서 임의로 몇 글자를 조합하면 ‘Scipio’라는 이름이 발견되는데 정작 시인은 이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언어기호의 식별이 랑그라는 사회적 규범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에 의해서도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일반언어학 이론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다른 기록물을 통해 소쉬르가 독일 민족 전설에 관해 연구했던 사실도 밝혀졌다. 이탈리아 기호학자들이 주축으로 이 사실을 밝혀냈으며 소쉬르는 니벨룽겐의 전설과 부르고뉴 왕국의 역사적 사실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고 추측했다. 그에 따르면 니벨룽겐의 전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지명은 부르고뉴의 역사를 토대로 형성된 기호의 일종으로 파악했다. 소쉬르의 기호체계로서의 연구대상이 언어에 한정되지 않았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소쉬르의 아나그램 연구와 독일 전설 연구에 대한 발굴로 인해 ‘소쉬르가 4명이 됐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기존 ‘『강의』의 소쉬르’와 ‘비교언어학자 소쉬르’를 포함하는 말이다. 그만큼 ‘4명의 소쉬르’는 서로 다른 면모를 보이지만 모두 ‘진짜 소쉬르’로부터 나온 존재다. 소쉬르학자들은 지속적인 기록물 연구를 통해 ‘소쉬르들’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들의 연결고리가 소쉬르의 사상의 범위를 더 넓힐 수 있을지 기대된다.

삽화: 선우훈 기자 mrdrug@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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