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장 미셀 바스키아전」

우리는 ‘낙서’하면 장난삼아 글이나 그림을 아무렇게나 끄적거리는 것을 떠올린다. 이런 낙서를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가 있다. 바로 ‘검은 피카소’라 불리며 낙서화(graffiti)를 현대 미술의 한 장르로 끌어올린 장 미셸 바스키아다. 국제갤러리에서는 올해 첫 전시로 바스키아의 개인전을 이달 31일(일)까지 선보인다.

바스키아의 삶은 영화로 제작될 정도로 드라마틱했고, 그는 8년이라는 짧은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품을 남겼다. 바스키아는 1960년 뉴욕에서 아이티 출신의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여러 학교를 전전하며 아버지와 대립하던 바스키아는 결국 자퇴를 선택했고 우편엽서와 셔츠에 그림을 그려 얻은 수입으로 숙소도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해나갔다. 그러다가 맨해튼 시내에 스프레이로 한 낙서가 기존의 그래피티와 달리 시적인 문구, 사회적인 메시지와 강렬한 회화 스타일을 갖췄다는 점이 평론계에 인정받으며 유명세를 타게 된다. 80년대 중반까지 작가로서도 성공가도를 달리며 앨범 제작, 영화 출연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던 바스키아는 1988년 스물일곱의 나이에 마약 중독으로 세상을 떠난다. 이러한 극적인 삶의 궤적은 그의 작품 속에 여러 상징으로 녹아있다.
 

사진 제공: 국제갤러리

1981년에 제작된 「무제(Untitled)」(그림 ➀)에는 어린아이가 그린 듯한 자동차와 비행기, 망치, 반복되는 알파벳 A가 등장한다. 여기서 붉은색 십자가가 그려진 구급차는 그가 7세에 겪었던 교통사고로 인한 충격을 암시한다. 당시 바스키아는 비장을 들어낼 정도로 큰 수술을 받았는데, ‘AAAA’라는 반복적인 알파벳은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를 표현한 것이다. 또한 ‘AAAA’를 흑인 야구선수 ‘행크 아론’의 이니셜에서 따왔다고 보기도 한다. 행크 아론은 베이비루스 이후 가장 뛰어난 ‘홈런왕’으로 평가받는데, 공을 힘 있게 친다고 하여 ‘Hammering hank’라 불렸다. 이런 점에서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망치(hammer)에서 행크 아론의 별명을 떠올릴 수 있다. 이외에도 바스키아는 흑인 출신의 유명한 스포츠 스타의 별명이나 대진표, 재즈 뮤지션의 노래 제목 등 이들을 상징하는 아이콘을 작품 속에 등장시킴으로써 당시 미국 사회에 만연했던 인종차별에 저항하고자 했다.

바스키아는 80년대 중반에 이르러 유색인종으로는 미국에서 거의 최초로 인정받은 예술가가 된다. 이 시기 바스키아는 다양한 크기와 재질의 캔버스에 물감을 들이붓는 등 실험적인 기법들을 시도한다. 특히 바스키아는 당시 활발히 활동했던 신표현주의 작가들의 화풍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이는 그가 ‘검은 피카소’라는 별명을 얻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가령 작품 「REOK」를 살펴보면 물감을 겹겹이 발라 두꺼운 질감을 표현했는데, 이는 피카소가 후기 작품의 물감을 짓이겨 바르는 기법에서 따온 것이다.

한창 명성을 떨치던 중기의 작품이 화사한 색채로 가득했다면, 말기의 작품들은 어두운 색조가 깔려 있다. 이 무렵 바스키아는 연인과 결별하고, 절친했던 앤디워홀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져 화상(畵商)들과의 관계도 끊기 시작한다. 작품 「행진(procession)」(그림 ➁)은 바스키아가 약물 중독으로 사망하기 2년 전에 그린 작품으로 당시의 우울한 내면이 잘 드러나 있다. 작품 속의 검은 인간들은 행진중이지만 무언가 병적이고 어두운 느낌을 준다. 그 중에서도 맨 오른쪽의 볼록 튀어나온 흑인 남자는 바스키아가 자신을 투영한 인물이라고 이야기된다. 그의 한 쪽 손에 들린 해골을 보면 바스키아는 자신을 향해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을 예감했던 것은 아닐까? 결국 ‘회화를 포기하고 아프리카로 떠나고 싶다’고 말하던 바스키아는 예매해둔 비행기가 출발하기 엿새 전 작업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전시를 기획한 전미경 큐레이터는 “바스키아의 생애나 그 당시 미국의 정치· 사회적 상황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다면 한층 더 풍부한 관람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조언했다. 굴곡진 삶의 상징들을 낙서라는 방식으로 자유분방하게 캔버스 위에 담아낸 바스키아. 국제갤러리의 전시장에는 벽에 남겼던 낙서만큼이나 강렬했던 그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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