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사상 처음 재판과정 TV, 인터넷 통해 생중계
국민의 사법신뢰 회복과 재판 이해수준 향상의 첫 걸음으로 평가

지난달 대법원에서의 재판을 생중계하는 것을 허용하는 법률이 시행된 후 지난 21일(목) 대법원이 65년의 한국 사법 역사상 최초로 재판 진행 과정을 방송에 생중계했다. 이날 대법원 홈페이지와 포털사이트 네이버, 한국정책방송 KTV를 통해 방영된 재판 전 과정은 중계 시간에만 댓글이 200여개가 달리는 등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대학신문』은 재판 과정의 중계 방송 실시에 대한 기대와 과제를 짚어봤다.

◇재판의 투명성을 향한 첫걸음=이번에 생중계된 재판의 내용은 한국인과 결혼한 베트남 여성이 남편의 동의 없이 아들을 데리고 몰래 본국으로 돌아간 사건이었다. 사건의 쟁점은 부모 중 한 사람이 다른 부모와 협의하거나 법원의 결정을 거치지 않고 자녀를 데리고 출국한 행위가 미성년자약취죄 또는 국외이송약취죄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변론이 이어지면서 검사와 변호인들 사이의 법리 공방이 치열하게 이뤄졌다. 검사는 “피고인의 행위는 아버지의 양육과 보호감독권, 그리고 자녀의 정당한 양육을 받을 권리 등 복리에 관한 권리를 완전히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국선변호사는 “부부갈등이 심화된 상태에서 아이를 데려간 동기나 목적이 정당하다”며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판단은 문제가 없다”며 팽팽히 맞섰다. 변론이 생중계되자 시민들도 댓글을 통해 “엄마가 아이를 인질로 삼은 것은 아니니 무죄다”, “여성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며 분명히 처벌해야 한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재판의 과정을 중계하는 것은 영화 「도가니」, 「부러진 화살」 등에서 나타난 사법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다. 공개변론의 전 과정을 중계함으로써 재판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높이고,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증진하는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13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가 주최한 대법원장 초청토론에서 “국민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 사건을 공개함으로써 일반 국민과 전문가들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갈등을 조율하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대법원의 기능을 충실하게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열린 재판’의 기대와 과제=전문가들은 재판과정의 중계 방송으로 재판의 내용과 과정이 충실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재판의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드러나면 법관과 검사, 변호사가 ‘대충’ 재판을 하지 않고 재판에 성실히 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막말 판사’ 사건 등에서 드러난 사법부의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모습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최근 부산지법 동부지원의 한 부장판사가 마약관리법 위반 전과가 있는 피고인에게 재판 도중 “초등학교 나왔죠? 부인은 대학교 나왔다면서요. 마약 먹여서 결혼한 것 아니에요?”라고 폭언을 퍼부은 사건과 같은 일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삽화: 강동석 기자 tbag@snu.kr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에서 발표된 「사법의 투명성과 개방성 확보를 위한 재판방송 실시 방안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변호사협회장 마조리 콘(Marjorie Cohn)은 “대규모 청중 앞에서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해야 하기 때문에 카메라 앞에서 멋대로 행동하는 판사들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사법에 대한 시민들의 학습 효과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법을 실제로 경험할 기회가 많지 않은 일반 시민들이 방송을 통해 사법제도에 대한 이해수준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 대변인실의 한 관계자는 “사법에 대한 시민들의 깊이있는 이해는 시민의 사법에 대한 실질적 통제권 행사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재판의 중계 방송이 확대될 경우 보완해야 할 점 역시 상당하다. 대법원은 추후 적절한 사건에 대해 재판 공개 방송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 경우 현재 재판의 중계 방송 대상인 대법원 재판에서는 피고인의 출석이 필수 요건이 아니기 때문에 피고인의 신상이 노출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지만, 중계 방송이 피고인의 출석이 필수 요건인 1심이나 2심 재판으로 확대될 경우 피고자의 신상 노출 우려가 생긴다. 또 공개 방송이 형사사건에서 이뤄질 경우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문제 역시 제기된다. 피고인이 형사 사건에 으레 있기 쉬운 사회적 비난에 위축돼 자신을 제대로 방어하기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의 특성상 여론에 휘둘릴 우려도 있다. 21일 사건의 방송은 한국정책방송과 대법원 홈페이지를 통해 중계됐다. 이 방송은 재판의 전 과정을 가감없이 방영했지만, 언론 보도 과정에서 각 언론사들이 재판을 재구성해 보도할 경우 사실을 자극적으로 보도하거나 왜곡해 국민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또 판사나 변호사, 증인들의 판단이 여론에 좌우될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성폭력 사건의 재판에서 판사가 시민들의 분노에 휩쓸려 법적으로 실제 죄에 해당하는 형량을 초과해 판결하는 경우 등을 포함한다.

우려는 존재하지만 법정 안팎의 분위기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국민에게 재판 과정 방송을 공개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사법부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입장이 대다수다. 대법원 윤성식 공보관은 법률저널 및 TV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변론의 전 과정을 인터넷과 방송을 통해 공개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증진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향후 기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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