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세슘137』
먼저 나치가 ‘오라두르 쉬르 글란’이란 한 마을에서 자행한 대량 학살에 대한 증언이 초반부에 나온다. 이는 나치즘을 위한 유명한 선전물인 ‘의지의 승리’와 관련한 대담으로 이어지며 히틀러가 사용한 프로파간다 전략을 섬뜩하게 조명하기도 한다. 나치로 얼룩진 1930~40년대를 조망한 뒤 저자는 독일과 함께 파시즘 진영에 속했던 일본에 가해진 폭력, 원폭 투하에 주목한다. 그 뒤에는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건의 피해지였던 우크라이나의 ‘프리피야티’ 거주민의 증언들이 이어진다. 여기선 사건의 정보 제공을 거부하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폐쇄성과 방사능 유출로 인한 끔찍한 삶의 행태가 절규하듯 폭로된다. 과거 인류가 저질렀던 거대한 폭력에 대한 시선은 오늘날 현대인이 스스로 자행하는 여러 폭력의 형태들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인간을 유인원에 빗대며 인간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던진 작품의 서두와 다르게,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인간의 양심’에 대해 얘기한다. 폭력의 굴레를 만들어낸 건 인간이지만 이를 멈출 수 있는 것 또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가 진부할 수 없는 것은 이것이 가공할 만한 현대사의 이면들을 샅샅이 훑은 뒤 고통스럽게 내려진 당위적 결론이기 때문이다. 도처에 산재한 폭력의 가능성들을 인간은 경계할 수 있다. 즉 인간이 인간을 경계해야 하는 존재임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역설하고 있다.
오천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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