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세슘137』

세슘137

파스칼 크로시 저/이세진 역/현실문화/144쪽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 인간이 지닌 잔인함의 경계는 서로 다른 역사적 사건들에 의해 정기적으로 갱신되는 것처럼 보인다. 파스칼 크로시는 저서 『세슘137』을 통해 현대인들이 저질러온 야만의 굴레를 ‘그래픽 노블’이란 장르로 표현해냈다. 여기서 그래픽 노블이란 소설만큼 길고 복잡한 플롯을 통해 예술성을 확장시킨 만화책들을 의미한다. 나치즘에서부터 일본 히로시마 원폭 투하, 체르노빌 원전 사고, 9.11 테러를 스케치한 『세슘137』은 과학기술이 언제 인간을 겨냥할지 모르는 이 시대에 인간의 야만성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책 제목이기도 한 ‘세슘’은 핵분열 시 발생하는 방사성 동위원소 중 하나로, 과거 인류가 ‘가치중립적’인 과학기술로 가공할 만한 파괴를 저질렀던 사건들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대변되는 오늘날의 비극을 연결시키는 키워드로 표현된다.

먼저 나치가 ‘오라두르 쉬르 글란’이란 한 마을에서 자행한 대량 학살에 대한 증언이 초반부에 나온다. 이는 나치즘을 위한 유명한 선전물인 ‘의지의 승리’와 관련한 대담으로 이어지며 히틀러가 사용한 프로파간다 전략을 섬뜩하게 조명하기도 한다. 나치로 얼룩진 1930~40년대를 조망한 뒤 저자는 독일과 함께 파시즘 진영에 속했던 일본에 가해진 폭력, 원폭 투하에 주목한다. 그 뒤에는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건의 피해지였던 우크라이나의 ‘프리피야티’ 거주민의 증언들이 이어진다. 여기선 사건의 정보 제공을 거부하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폐쇄성과 방사능 유출로 인한 끔찍한 삶의 행태가 절규하듯 폭로된다. 과거 인류가 저질렀던 거대한 폭력에 대한 시선은 오늘날 현대인이 스스로 자행하는 여러 폭력의 형태들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인간을 유인원에 빗대며 인간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던진 작품의 서두와 다르게,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인간의 양심’에 대해 얘기한다. 폭력의 굴레를 만들어낸 건 인간이지만 이를 멈출 수 있는 것 또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가 진부할 수 없는 것은 이것이 가공할 만한 현대사의 이면들을 샅샅이 훑은 뒤 고통스럽게 내려진 당위적 결론이기 때문이다. 도처에 산재한 폭력의 가능성들을 인간은 경계할 수 있다. 즉 인간이 인간을 경계해야 하는 존재임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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