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한 학문인가?
무엇을 위한 학문인가?
  • 허서연 학술부장
  • 승인 2013.03.31 0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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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RN의 힉스 입자 발견은
장기적인 과학기술 지원의 결과
진정한 ‘학문의 진보’ 위해서는
기초과학에 대한 꾸준한 지원 필요해

 

지난 14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힉스 입자’의 발견이 확실하다고 발표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번 발표로 지난 1964년부터 남겨진 수수께끼가 풀릴 수 있을지 기대의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이 힉스 입자의 발견은 하루아침에 이루어 진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발견은 약 50년 가까이 포기하지 않고 연구를 진행한 연구진의 인내와 노력,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연구여건을 보조해준 CERN의 지원이 맺은 결실이었다. 금전적인 실적과 실제 가시적인 영향력에 대한 기준으로 학문의 가치를 계산하고 있는 국내의 현실. 이와는 대조적인 CERN의 행보 앞에 그저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힉스입자에 대한 발표로 유명해진 CERN은 기초과학 연구를 위해 1954년 스위스 제네바에 설립된 연구소다. CERN에서 주목할 점은 유럽 20개국의 비용 분담으로 운영될 뿐더러 전 세계 과학자들이 모여 연구를 진행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전 세계 각국의 연구자가 한 곳에 모일 수 있다는 장점은 CERN의 발전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됐다. 여러 국가에서 참여한 과학자들은 CERN에서 단순히 연구만 진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학술에 대한 토론의 장, 소통의 네트워크로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풍부한 경제적인 지원 아래 자유롭게 과학적 지식을 펼치기에 최적의 장소에서 노벨수상자를 5번이나 배출한 이력은 당연할 법도 하다.


실제 ‘WWW(World Wide Web)’를 최초로 개발해 상용화하기도 한 CERN은 세계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현재도 승승장구 하고 있다. 이 순간에도 아마 수천명의 연구진은 우주에 대한 ‘진리’와 ‘이론’을 밝혀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기초과학 또는 기초학문을 위한 전문 연구소는 얼마나 될까? 최근 국내 학계를 비추어 볼 때 기초과학을 포함한 기초학문의 위치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기초과학을 전공하려 하는 학생이 급격히 감소할 뿐 아니라 대학에서는 이미 기초과학은 물론 기초학문 관련 학과를 폐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낳게 한 원인은 바로 학문을 ‘돈벌이’의 기준에 평가하는 현실에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사회에서는 연구 성과에 대해 ‘얼마나 돈이 되느냐’로 값을 매기고 있었고 이는 실제 학계에서 금전적으로 이익이 되는 연구만을 좇는 풍토를 낳았다. 하지만 기초학문은 이러한 잣대로 평가할 수 없는 학문이다. 아니, 이러한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는 학문이다. 대부분 금전적인 성과를 보이는 학문은 응용분야 혹은 실용분야의 학문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더 중요한 사실을 하나 더 간과하고 있다. 오늘날 ‘돈벌이’가 되는 학문, 이들의 연구가 탄생하기 위해 밑거름이 된 학문이 무엇인지를. 바로 ‘기초학문’이다. 무궁무진한 가치를 지닌 기초학문은 어쩌면 지금 경제적인 이익을 창출하는 실용학문보다 더 큰 값을 지닌 학문일지도 모른다. 


불행히도 사회가 기초학문에 대해 무관심으로 반응하고 있는 악순환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21세기에 등장한 정부들, 그리고 국내 수많은 학자들은 꾸준히 ‘학문의 진보’를 외치고 있다. 그리고 이번 해에 출범한 박근혜 정부 역시 같은 목표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정작 사라져 가는 ‘학문들’의 목소리는 외면한 채 학문의 진보만을 외치고 있다. 인류사를 통틀어 학문의 진보는 끈기와 노력 그리고 믿음이 필수적으로 수반됐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학문의 진보에 한 획을 그었던 이들 역시 결코 기초학문에서 손에서 떼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학계는 어떠한가. 학계와 정부는 앞선 조건들을 무시한 채 단순히 실적의 결과만을 원하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원하는 것은 학문의 진보가 아니라 아마 돈과 명예의 진보에만 그치고 있는 듯하다. CERN의 행보 앞에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맥없이 사라져가는 ‘이들’이 우리의 슬픈 자화상임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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