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관악을 밝히는 숨은 얼굴들 ②

‘서울대 3대 바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바로 서울대 축제에 놀러가는 사람, 고등학교 때 전교 1등 했다고 자랑하는 사람,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려 서울대까지 걸어오는 사람을 가리킨다. 하지만 서울대에 처음 방문한 사람이라면 서울대입구역에서 어떻게 학교에 가야 하는지 헤매기 마련이다. 또 캠퍼스가 워낙 넓다보니 한 건물에서 다른 건물로 이동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캠퍼스 특성상 셔틀버스는 학교 구성원들에게 구세주와 같은 존재이다. 서울대 셔틀버스의 운행은 1975년에 동숭동, 청량리, 종암동 등지에 있던 단과대학들을 관악캠퍼스로 통합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셔틀버스는 열악한 교통사정으로 인해 통근수단이 없어 막막했던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운행됐다(『대학신문』2004년 04월 12일자). 이제 셔틀버스는 학생들의 통학을 돕고 캠퍼스를 순환하는 등 학내 구성원의 이동수단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조규영씨(54)는 교내 업무용 차량을 운전하기 시작해서 셔틀버스를 운행한 지는 13년이 됐다. 운전을 업으로 삼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운전대를 잡으면 즐겁다는 조규영씨를 만나봤다.

버스 기사들의 하루는 모두가 출근하기 전에 시작해 모두가 퇴근한 후에 끝난다. 오전 7시부터 운행을 시작하는 서울대입구역 셔틀의 경우 집이 먼 기사들은 오전 4시 정도에 기상해야 한다. 운행 30분 전에는 출근해서 미리 시동도 걸고 엔진벨트가 늘어졌는지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정류장을 오가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 조씨는 “학교에서 식권이 제공되기는 하지만 식당 줄이 너무 길어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는 일이 많”라고 말한다. 학생들이 귀가하는 오후 4시부터 7시까진 가장 바쁜 시간대로 한 차에 70명까지 탑승한다. 그래도 2년 전부터 무전기가 생겨 길이 막힐 때 앞차와의 간격을 파악하는 등 유동적인 운행이 가능해졌다. 또한 기사들끼리 돌아가며 1주일에 한 번씩 심야 셔틀을 운행하는데, 일을 마치고 귀가하면 자정이 훌쩍 넘는다. 때문에 집이 먼 기사들은 공대 근처에 위치한 기사 휴게실에서 취침하기도 한다. 조씨는 “심야셔틀 당번인 날에는 집에 들어가서 4시간 정도 눈을 붙이다 또 출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다보면 재미있는 실수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조씨가 심야셔틀 운행을 마치고 퇴근할 때의 일이다. “버스 안에 불 다 끄고 정리하고 나오는데 갑자기 사람이 뛰쳐나오는 거예요.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늦게까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셔틀을 탄 학생이 자기도 몰래 졸다가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 뛰어나온 것이다. 그 외에도 봉천동행 버스를 대학동으로 운행하거나, 본부행 버스를 대학동으로 운행하는 실수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조기사는 “내가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데도 학생들이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며 웃음을 지었다.

사진: 주현희 기자 juhieni@snu.kr

조규영씨는 가장 중요한 것이 ‘충분한 휴식’이라고 말했다. 잠깐의 졸음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평지에 있었던 기사 휴게실은 캠퍼스 공간 활용 문제로 공대 근처 높은 지대로 이전했다. 이에 대해 조씨는 “안전하게 운전하려면 푹 쉬어야 하는데 지금 휴게실은 겨울에 춥고 많이 비좁다”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어서 조씨는 아침에 한창 버스를 기다리는 줄이 긴데도 앉아서 가려고 버스를 타지 않거나 술을 마시고 차량 내에 구토를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며 “다들 똑똑한 학생들인 만큼 남을 배려하는 태도도 갖췄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렇게 버스를 운행하는 일 외에도 기사들은 총장, 학장 수행용 차량 운행, 주유, 차량 청소, 겨울에는 제설 작업까지 다양한 일들을 맡고 있다. 게다가 최근 들어 친절한 서비스가 강조되면서 승객 한명 한명에게 인사를 하는 것도 업무의 일부분이 다고 한다. 실제로 기사휴게실에는 ‘어서오세요, 안녕히가세요’라고 적힌 큰 종이가 붙어 있었다. “한번에 50명 이상 일일이 인사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형식적으로 하게 되기도 하지.” 버스기사들의 인사가 불친절하다는 민원 때문에 아침에 인사를 연습하는 조회를 열자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한다. 조규영씨는 “학생들이 내릴 때 ‘수고하십니다’ 한마디만 건네도 기사들한테 굉장히 큰 힘이 됩니다”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후 조씨는 “나 인터뷰 해주셨는데 내 차 타고 돌아가셔야지”라며 기자를 버스로 끌었다. 커다란 버스에 혼자 올라 바라보는 차창 밖 캠퍼스 풍경이 한층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번주 셔틀버스를 타게 된다면 내리기 전 기사님께 “감사합니다!”라고 밝게 인사해보는 건 어떨까. 복잡한 통학길에 지쳤던 당신의 마음도 버스 기사의 마음만큼이나 따뜻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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