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한일간 교류를 통해 다양한 문화재가 오고간 한편 임진왜란이나 일제강점기와 같은 역사적 혼란기에는 수많은 문화재들이 일본으로 반출되기도 했다. 유네스코 산하 문화재반환촉진위원회에 의하면 현재 파악된 것만 6만6천여점에 이른다. 하지만 국내에 돌아온 것은 10분의 1 수준인 6천점에 불과하다. 『대학신문』은 직접 일본을 방문해 반출된 문화재가 처해 있는 다양한 상황을 살펴봤다.
 

자연재해로 손실된 문화재

사진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불법 반출됐다가 건물이 손실돼 유구만 반환받은 자선당의 모습이다. 자선당은 조선 세종 때 세자 문종의 거처로 세워진 건물이다. 이 건물을 가져간 오쿠라는 자신이 모은 우리나라 문화재를 보관하는 ‘조선관’으로 자선당을 사용했다. 하지만 관동대지진에 의해 건물이 무너지고 결국 잔해만이 남겨졌다. 그리고 오쿠라 호텔 뒤편에 방치된 자선당의 잔해를 목원대 김정동 교수가 발견해 반환이 이뤄졌다. 현재 자선당 터 근처엔 자선당이 복원돼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문화재

카쿠린지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범종이 있다. 이 절은 약 1400년 전 일본에 불교를 전하러 간 고려의 혜편(惠便)스님과 그의 영향을 받은 당시 전설적인 정치가 쇼토쿠 태자가 같이 세웠다고 한다. 카쿠린지의 부주직(副住職)인 미키 타카모리씨는 “이 범종이 한일협동으로 세워진 이곳에 오랫동안 보관 되어온 것을 보면 친근의 표시로 기증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1000년 정도 된 이 범종은 깨끗하게 보존돼있고 소리도 맑고 아름답다. 그는 “가끔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이 종을 보고 돌려달라고 하는 것을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논란 끝에 비공개가 된 문화재

효고현 오노에 신사 뒤편에 자물쇠가 채워진 창고가 있다. 굳게 닫힌 문을 열어보면 그곳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범종이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보관돼있다. 이 종은 진구황후라는 전설의 인물이 약탈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노에 신사의 궁사(宮司)인 요시자키 타이슈우씨는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의 무늬를 봤을 때 당대의 일본의 권력자가 한국에 주문해서 만든 종인 것 같다”고 했다. 종의 형태나 달려진 고리를 보면 고려시대 종이긴 하지만 새겨진 일본 전통 무늬를 봐서는 주문품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공개돼 있던 이 종은 한국의 반환요청이 거세지면서 이 창고에 보관하게 됐다.

일본 중요문화재로 등록된 문화재


지난 1월 도쿄 국립 박물관은 청동기 시대의 유물부터 국보급 조선시대 왕조의 물건 등 다양한 문화재를 공개했다. 문제는 이들이 모두 도쿄국립박물관의 소장품이며 대부분이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등록돼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 측이 불법으로 반출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해 우리나라에선 손도 못 대고 있는 상황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호리에 카즈오씨(72)는 “천왕이 말 씀하셨듯이 일본과 한국은 친척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래서 이 많은 문화재들이 일본에 들어오게 된 것 같다.”라며 전 시품들이 반출된 것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생각을 밝혔다.

동포가 수집한 문화재


고려미술관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간 재일교포 정조문씨가 세운 사립 미술관 이다. 어렸을 때부터 조선인이라 무시를 당하며 자란 그는 어느 날 골동품 집에서 아름다운 조선의 도자기를 보고 감동 받는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재산을 털어 평생 동안 1200점 가까운 한국 문화재를 소집했다. 그리고는 이 미술관을 세우자마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큐레이터 이수혜씨는 “문화재 문제를 생각했을 때 역사를 두고 다투는 것보다 먼저 문화재들이 보존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미술관의 설립 취지를 밝혔다.


부실하게 관리되는 문화재


오쿠라 슈코칸은 메이지 시대에 활약한 사업가 오쿠라 키하치로가 세운 일본 최초의 사립미술관이다. 사진은 미술관 뒤편에 서 있는 고려 이천향교5층석탑과 고구려 평양율리사지8각5층 석탑이다. 오쿠라는 이들을 자신의 사립미술관의 장식품으로 사용하기 위해 반출했다. 이 두 건물은 각 시대의 특징을 띠고 있어 예술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석탑들임에도 제대로 관리를 받지 못한 채 방치돼있다. 탑의 끝 부분이 깨져있고, 석탑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화강암에 치명적인 시멘트로 탑의 구멍을 채우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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