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밤을 새워가며 셜록홈즈 전집을 탐독하던 때가 있었다. 당시 나는 셜록홈즈에 완전히 빠져있었다. 그는 조그만 단서에서 그 함의를 읽어내고, 몇 가지 함의들을 종합하여 사건의 본질을 이끌어낸다. 감춰져있던 사건의 본질이 드러나는 순간, 나는 홈즈의 추리력에 감복하곤 했다. 홈즈가 소설 속에서 자신이 썼다고 하는 『생명책』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다.

“논리학자는 바다를 보거나 폭포 소리를 듣지 않고서도 물 한 방울만으로 그것이 대서양이나 나이아가라 폭포 어디 것인지를 유추해 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세상만사는 거대한 하나의 사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고리 하나만 보더라도 언제든 전체적인 특성을 알아낼 수 있다. (중략) 상대방의 손톱, 코트 소매, 신발, 바지의 무릎 주위, 엄지와 검지의 굳은 정도, 표정 그리고 셔츠의 소맷부리 등을 살펴보면 어떤 일을 할 사람인지는 뻔히 드러난다. 실력이 좋은 관찰자가 그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보고도 뭔가 알아내지 못하는 상황이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서 코난 도일, 『셜록 홈즈 주홍색 연구』,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p.34)

지난호 대학신문에는 “동아리방에 월세 내라고요?”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었다. 사건은 한 학생의 메일에서 시작된다. 사회대 행정실이 학생 자치공간에 대한 비용을 학생들에게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대는 그 주장을 부인했고, 사건은 학생 자치공간에 대한 초과비용을 사회대 발전기금에서 가져와 해결되었다. 그러나 기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사건의 함의를 찾아낸다. 기사는 사건발생의 원인이 공간사용료 기준안에 학생 자치공간과 관련한 항목이 전혀 없다는 것으로 꼽는다. 이 사건이 지닌 함의는 학교가 학생 자치공간이 학교 공간사용의 목적을 초과하는 공간으로 인식했다는 점이다.

위의 기사 이외에도 지난호 대학신문 종합면의 많은 부분에서 학생 자치에 관한 기사들을 볼 수 있었다. 셜록홈즈처럼 이 기사들을 하나의 고리들로 보고, 그들의 함의를 찾아내 현재 학교의 한 단면을 유추해볼 수 있겠다. 자치에 대한 문제는 여기저기서 불거지지만, 그것이 많은 학우들과 학교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학생사회의 모습이다. 대학의 중심기능 중 하나였던 자치활동이 그 자리를 취업준비활동에 내어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스럽지만, 섣부른 걱정이길 바라본다.

앞으로도 대학신문이 학내의 사건들에서 그 함의를 풀어내고, 학교의 한 단면을 포착해주는 신문이 되길 바란다. 내가 읽었던 모든 책에서 셜록홈즈는 사건을 모두 해결해냈다. 그의 추리능력이 큰 몫을 했겠지만, 그의 곁에 있던 왓슨과 경감이 없었다면 사건이 온전히 해결되지 않았을 것이다. 끼워 맞추기식 비유 같지만 왓슨을 서울대 학우들로, 경감을 본부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셜록홈즈가 골방에 틀어박혀 사건의 비밀을 알아내더라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 가치가 없을 것이다.

대학신문이 학내의 어두운 단면을 밝혀주더라도 그것을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학우들과 학교의 관심일 것이다.

천윤수
미학과·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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