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윤리의 현주소를 진단하다
연구윤리의 현주소를 진단하다
  • 정승호 기자
  • 승인 2013.04.06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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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표절과 조작으로 얼룩진 연구윤리

최근 사회 각계각층 인사들이 논문 조작·표절 시비에 휘말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대학 총장을 비롯해 학계뿐 아니라 고위공직자, 유명 스타강사, 연예인의 논문조차 의심받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까지 이들 모두가 부정한 논문을 작성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한국사회에서 연구윤리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연구윤리정보센터 행정분과 위원장 이원용 교수(연세대 화학과)는 “연구윤리 문제는 최근 집중해 벌어지고 있기보다는 그동안 누적됐던 문제가 드러나는 것일 뿐”이라며 현실을 진단했다. 연구윤리 문제는 어제 오늘일이 아닌 것이다. 이에 한국사회의 연구윤리가 어떤 수준에 이르렀는지 진단하고 관련 제도의 실태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삽화: 강동석 기자 tbag@snu.kr

한국사회의 연구윤리

사실 연구윤리는 현재 공론화되고 있는 표절·조작에 관한 규범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2007년 당시 과학기술부가 제정한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2012년 교육과학기술부 개정)에 따르면 ‘연구진실성’과 ‘연구윤리’를 구분하고 있다. ‘연구진실성’은 연구수행 및 결과도출에 있어 위조·변조·표절 등 의도적 부정행위 또는 비의도적 오류가 개입되지 않고 객관성과 정확성이 확보된 것을 의미한다. 최근 드러나고 있는 문제는 연구진실성이 준수되지 못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연구진실성을 포함하는 개념인 연구윤리는 연구자가 연구를 수행할 때 지켜야할 총체적 원칙을 말한다. 따라서 연구윤리는 △논문저자 표시 등 공로배분의 공정성 △연구실 문화의 민주성 △인체,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과 관계된 생명윤리에 관한 사항 등을 총괄하는 개념인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연구윤리에 대한 개념이 체계적으로 정립된 것은 2005년 12월 황우석 사건 이후다. 그전까지는 ‘타인의 연구를 악의적이고 과도하게 베끼는 것은 나쁘다’는 막연한 의식만 있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지적재산권에 대한 의식도 희박해 노환진 교수(대구경북과학기술원 기초학부)에 따르면 “이 시기까지 한국 학술계의 주된 관심은 독자적인 연구보다는 외국의 학문을 소개하는 것에 있었다”며 “해외 연구자들의 결과물을 정당한 절차 없이 인용한 경우가 잦았다”고 한다. 또 자기표절의 개념도 없었으므로 이중게재 역시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다 2005년 황우석 사건에서 드러난 생명윤리 문제와 논문조작 문제가 국제적으로 이슈화되면서 해외의 연구윤리 개념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에 학계 스스로 연구윤리에 대한 개념 정립을 시도했으며 이를 명시한 규정을 만드는 데 착수했다. 또한 연구윤리에 어긋난 ‘연구 부정행위’를 조치하기 위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등의 행정기구도 속속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기간 동안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 속에 연구윤리가 뿌리내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초·중·고교는 물론 학위 논문을 준비해야 하는 대학에서조차 연구윤리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행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구윤리를 준수해야 한다는 의식은 고사하고 연구윤리에 대한 개념 자체를 알지 못하는 구성원들이 대다수인 현실이다. 전 연구처장 서진호 교수(식품생명공학과)는 “학부생만 보더라도 과제물 베끼기와 교재 복사에 대한 죄의식 자체가 없는 실정”이라며 “연구윤리와 지적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자리잡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제대로 된 제도적 개선이 행해졌는가?

한국사회의 미숙한 연구윤리 의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를 바로잡을 ‘제도적 노력’이 필요했다. 노환진 교수는 “연구윤리에 대한 규정이 제정될 뿐 아니라 이를 담당할 행정적 체계가 필요하다”며 “학계의 제도를 총괄하는 정부적 차원의 조직 역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정부는 앞서 언급한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을 제정하고 이를 꾸준히 개정해왔다. 또한 2007년에 한국연구재단 산하에 연구윤리정보센터를 신설했으며 별도로 교과부가 초·중·고교 및 대학에 대한 연구윤리 활동을 총괄하도록 했다.

학계에서도 제도적 노력이 이뤄졌다. 「2010년 국내 연구윤리 활동 실태조사·분석 보고서(2010년 연구윤리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대학 중 83.7%, 학회 중 96.6%가 연구윤리 관련 규정 및 지침을 제정하고 있었고 전국 대학 중 80.4%, 학회 중 67.7%가 연구진실성위원회를 포함해 연구 부정행위 발생 시 사후 행정처리를 담당하는 연구윤리위원회가 설치된 상태였다(『대학신문』 2012년 5월 7일자).

그러나 이 제도들은 한국사회의 연구윤리 의식을 강화하는 데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우선 정부의 연구윤리정보센터 운영에서부터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윤리정보센터 위원 조성연 교수(호서대 유아교육과)는 “연구윤리정보센터의 현 인원으로는 전국 초·중·고교 및 대학을 대상으로 연구윤리 강화활동을 하는 데 무리가 있다”며 “재정적 지원을 통한 인원 확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학계의 연구윤리 관련 제도 운영을 관리·감독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는 학계의 허술한 제도 운영으로 이어졌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그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조 교수는 “연구 부정행위를 저지른 학자의 동료학자들이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주 구성원이기 때문에 합당한 징계가 내려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2010년 연구윤리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구성원으로 대학은 73.2%가, 학회는 81.9%가 내부인사들로만 위원을 선정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관리·감독이 없는 상황에서 내부인사 즉, 동료학자들은 엄정한 심사를 내릴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에 노환진 교수는 “학계에 ‘봐주기 문화’가 만연해 있다”며 비판했다. 그나마 서울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처럼 연구 부정행위로 파문을 일으켰던 대학들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제구실을 하고 있다는 평이지만 대다수의 대학과 학회는 이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반복적인 솜방망이 처벌로 통렬한 반성이 이뤄지지 못해 연구윤리 의식이 깊이 자리잡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각 교육기관에서 체계적인 연구윤리 교육을 시행할 제도적 여건조차 갖춰져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는 학회나 대학에게 연구윤리 교육을 의무화할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며 학계 스스로에게 연구윤리 교육을 맡겨 둔 상황이다. 따라서 학계에서 연구윤리 교육이 전반적으로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으며 그나마 교육의 방식도 효율적인 체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행해지고 있다. 서진호 교수는 “서울대도 신임교수와 대학원생에 대해 정기적인 교육이 이뤄지고 있지만 연구윤리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지금이라도 바로잡을 때

사실 현재 연구윤리 문제는 제도적 측면을 넘어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류웅재 교수(한양대 커뮤니케이션학과)는 “연구결과의 사회적 공헌도와 상관없이 논문발표와 학위취득 자체가 성과로 인정되면서 연구과정에서의 윤리는 무시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연구 성과를 양적으로 평가하는 사회 분위기도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연구윤리 문제는 하나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가면서 서서히 해결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우선적으로 선행돼야 할 과제를 꼽자면 연구윤리에 관한 사안을 총체적으로 다루며 실질적인 관리·감독 권한을 가진 정부기구가 구성돼야 한다. 조성연 교수는 “현재 학계의 연구윤리 제도가 합당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부의 엄정한 감독이 필요하다”며 그 이유를 밝혔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일정 수 이상의 외부인사 선임을 의무화하는 것도 정부기구의 역할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정부는 충분한 예산을 배정해 실효성 있는 연구윤리 강화 사업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연구윤리정보센터의 인력을 보강함으로써 이 기구가 실질적인 역할을 제대로 해내도록 할 수 있다. 게다가 ‘표절방지 프로그램’ 보급 등을 이용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검증 시스템의 강화를 유도할 수도 있다. 서진호 교수는 “과거 표절 방지프로그램을 도입하려 했지만 예산문제로 포기했다”며 “정부 차원에서 표절방지 프로그램을 구입해 각 대학에 일괄 배포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또 노환진 교수는 “해외의 경우처럼 보다 체계적이고 영향력 있는 윤리 지침이 구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보다 구속력을 가진 지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미국대학교수협회(AAUP)’가 제정한 연구윤리 지침은 구체적인 상황별로 연구자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명시돼 있으며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어 학계에서 이를 준수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연구윤리 지침에 구체적인 상황별 행동요령을 명시하고 이에 대해 학계 전체적 차원의 합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연구윤리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조규익 교수(숭실대 국문학과)는 “유치원에서부터 연구윤리에 대한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이를 제외하고 대책을 만든다는 것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고 역설했다. 유아교육 과정부터 고등교육 과정까지 연구윤리 교육에 대한 항목을 추가한 후 연구윤리 의식을 갖춘 사회구성원을 체계적으로 길러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단기간에는 성과를 얻기 힘들다. 하지만 총제적인 난국에 처해 있는 연구윤리를 제 궤도에 올리기 위해선 넓은 시야를 갖고 작은 변화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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