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평의 마지막 피난처, 고시원
1.5평의 마지막 피난처, 고시원
  • 변성엽 기자
  • 승인 2013.04.07 0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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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는 안정된 거처를 마련하지 못하고 고시원, 쪽방, 만화방 등 정상적인 주거공간이라고 여기기 어려운 곳에서 생활하는 주거취약계층들이 존재한다. 보건복지부의 비공식 자료에 따르면 전체 1인 주거취약계층의 절반 이상이 고시원에 거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학신문』은 주거취약계층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인 고시원의 열악한 실태를 조명하고, 더 나아가 갈 곳 없는 1인 저소득층들의 주거문제를 짚는다.


주거 공간이 부족한 빈곤층

◇고시원, 그 열악한 현장을 찾다=찬 바람이 불던 지난 30일(토) 한 노인이 옷을 여미며 봉천동 H 고시원을 나서고 있었다. 기자가 노인의 뒤를 따라가며 거듭 취재를 요청했지만 노인은 계속 묵묵부답이었다. 한참 뒤에야 인기척을 느낀 그는 보청기를 귀에 꽂은 후 취재에 응했다.

그는 김씨 할아버지(67)로 7년째 고시원에 거주 중이다. 김씨 할아버지와 같이 들어간 고시원은 상상 이상으로 열악했다. 미로처럼 얽힌 복도는 성인 남성 한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폭이었고 김씨 할아버지와 함께 들어간 방은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비좁았다. 마땅한 환풍 시설이 없는 방 안은 음식물 냄새로 가득했고 벽은 누렇게 변해 있었다.

보청기가 왼쪽 하나밖에 없는 할아버지를 위해 기자는 할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대화가 시작되자 할아버지는 목소리를 낮추라는 손짓을 했다. 방 사이 벽이 벽돌이 아닌 합판으로 돼 있어 방음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취재 도중 옆방 사람이 한숨 쉬는 소리까지 들렸다.

김씨 할아버지는 고시원에 살면서 가장 두려운 일이 화장실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시원 화장실은 재래식 변기라서 허리가 안 좋으신 김씨 할아버지가 이용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직접 가본 화장실은 벽에 타일 하나 없이 콘크리트가 노출돼 있어 비위생적으로 보였고 소변기가 따로 없어 역한 냄새가 코끝을 강하게 찔렀다. 이런 비위생적인 화장실 안에 세탁기와 샤워실이 딸려 있었다. 하지만 세탁기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사실상 직접 손빨래를 해야 하고 샤워실도 2개밖에 없어 샤워를 하기 위해서는 한없이 기다려야 한다.

김씨 할아버지가 처음부터 고시원 생활을 한 것은 아니다. 할아버지는 지방에서 사진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진기가 점차 디지털화 되면서 매출이 계속 떨어져 사진소를 그만두고 서울로 상경했다. 빈털터리로 서울에 상경한 할아버지는 고시원을 거처로 두고 경비원, 공공근로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 현재는 건강이 안 좋아져 장애연금과 기초노령연금으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할아버지가 받는 장애연금, 기초노령연금은 총 24만4천원, 이중 고시원비로 한달에 21만원이 나간다. 다행히 예전에 어느 정도 벌어둔 돈이 있어 생활 유지는 되고 있다며 할아버지는 쓴웃음을 지었다.

한편 신림동 K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는 대학생 전씨(25)는 상황이 좀 낫다. 평소 꼼꼼한 성격의 전씨는 7군데의 고시원을 둘러본 끝에 이 고시원을 선택했다. 그런데 전씨가 고시원 알선 사이트를 통해 알아본 고시원들은 사진과 실제가 매우 달랐다. 그가 들른 고시원들은 침대가 책상 밑으로 들어가 있는 등 대체로 방이 너무 좁아 다리를 뻗고 잘 수 없을 정도였다. 또 방에 창문이 없는 곳이 많았고 창문이 있는 곳의 경우에는 옆방과 걸쳐 있도록 설계된 경우도 있었다.

결국 전씨는 K 고시원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외견상으로 괜찮아 보이던 K 고시원도 그에겐 안정적인 보금자리가 되지 못했다. 처음에는 고시원이 생각보다 조용해 나름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어느날 옆방에서 코고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그는 고시원이 방음이 잘 돼 조용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기척을 내지 않으려 조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후로 그도 최대한 기척을 내지 않으려 노력하느라 신경이 많이 쓰인다고 말했다.

55가구가 거주하는 고시원에 세탁기가 2대밖에 없는 것도 불편한 점 중 하나다. 빨래를 하기 위해 하루종일 기다리는 일이 그에게는 일상이다.

전씨는 현재 4학년으로 대학원을 준비 중이다. 그러다보니 학점관리다 졸업논문이다 준비할 것이 많아 왕복 4시간이 넘게 걸리던 통학 생활을 접고 자취를 결심했다. 하지만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에 보증금이 없고 가격도 저렴한 고시원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고시원 생활은 졸업과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한참 예민한 나 자신을 한없이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현재 과외를 2개 하면서 생활을 유지하는 그에게서 여유는 찾을 수 없었다.

◇고시원 실태 들여다보니= 서울의 고시원 수는 2004년 2,621개소에서 2011년 8,273개소로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전체 1인 주거취약계층의 절반 이상이 고시원에 거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0년 제출한 비주택 거주민 인권상황 실태보고서에 따르면 고시원 거주자들은 고시원의 열악한 시설 등으로 많은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이 지적하는 고시원의 문제점으로는 방음문제가 75%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환기와 채광의 경우도 각각 67.5%, 65%의 비율을 보였다. 이는 방 안에 환풍기는커녕 제대로 된 창문조차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의 비공식 자료에 따르면 고시원의 전체 방 중 44.3%가 창문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주민의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공동사용 시설도 문제로 지적된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조사자 중 13.3%가 화장실, 취사실, 세탁실 등 시설 부족을 고시원에서 느끼는 가장 큰 불편함으로 꼽았다. 이와 관련해서 한국도시연구소에서 2010년에 발간한 「도시와빈곤」에 따르면 고시원의 95%가 화장실, 부엌, 목욕시설을 공동사용하고 있으며 평균 이용인원이 15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최저주거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고시원의 비좁은 방 크기 역시 문제로 지적됐다. 국가인권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고시원의 평균 전용면적은 5.55㎡로 쪽방의 평균 전용면적인 6.19㎡보다도 좁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거복지연대 남상오 사무총장은 “고시원의 경우 절대적인 임대료 수준은 가장 낮지만 면적당 임대료 단가의 경우 오피스텔, 아파트, 원룸보다 높다”며 “이러한 고시원의 열악한 주거 환경은 납득되기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2년 대학생주거권네트워크의 조사에 따르면 평균 고시원의 평당 임대료는 한달에 약 14만원으로 11만8천원으로 조사된 타워팰리스의 평당 임대료보다 높았다.
 

삽화: 선우훈 기자 mrdrug@snu.kr



무엇이 그들을 고시원으로 몰았나

◇불가피한 선택, 고시원=이러한 열악한 주거 환경에도 불구하고 고시원 거주민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고시원을 주거지로 선택하게 된다. 보건복지부의 자료에 따르면 고시원 거주민들 중 73.5%가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싶은 의향을 밝혔다. 남 사무총장은 “고시원 거주민 모두는 고시원을 하루빨리 벗어나야할 주거공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이들은 고시원 말고는 살 곳이 마땅치 않다. 그들이 거주할 수 있는 저렴한 소형주택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1인 가구는 사회적, 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급증하고 있다. 남 사무총장은 “결혼 연령의 상승, 늘어나는 상경 인구,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으로 인한 고령자 단신 가구의 증가 등으로 1인 가구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의 비중은 2000년대 15.5%에서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0년에는 약 25%에 달했다. 4가구 중 1가구는 1인 가구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다가구 및 다세대 주택 등 저렴한 소형 가구의 주거를 담당했던 주택들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실제로 국토해양부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소형주택으로 분류되는 60㎡ 이하의 주택이 서울의 경우 2001년 약 22만호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해 2008년 약 13만호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추세는 특히 다가구, 다세대의 주택공급의 감소에 연유한다. 이 주택들의 감소는 2002년 「서울특별시 주차장 설치 및 관리조례」가 개정돼 가구당 주차장 설치기준이 강화되고 2006년부터 200㎡ 초과의 건축물을 신축할 경우 기반시설부담금이 부과되는 등 사업성이 크게 악화됐기 때문이다.

다가구 및 다세대 주택이 보통 임대가 목적인 사실을 미뤄 볼 때 저금리 시대의 도래로 전세 보증금을 투자하는 것이 큰 수익률을 내기 힘들어진 상황도 다가구·다세대 주택의 감소를 야기했다고 볼 수 있다. 대신 아파트와 같은 수익성이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통계청의 ‘2012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1인 가구의 빈곤율은 50.1%로 8.4%를 기록한 4인 가구의 빈곤율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급속하게 늘고 있는 1인 가구는 4인 가구에 비해 경제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리고 저렴한 소형주택 물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저소득 1인 가구들은 저렴하게 혼자서 잠자리를 해결할 수 있는 고시원으로 몰리게 됐다. 기존 주택의 범주에 속하지 않고 주거 기능을 담당하지 않았던 고시원이 실질적인 주택으로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주거취약계층은 약 24만가구로 이중 절반가량이 고시원에 거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자료에서 말하는 주거취약계층은 안정된 거처를 마련하지 못하고 주거공간이라고 여기기 어려운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로 고시원 거주민도 이에 속한다.

◇‘준주택’ 도입됐지만=저소득 1인 가구가 고시원으로 몰리면서 고시원과 같이 주택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사실상 주거기능을 제공하는 주거유형들이 대두됐다. 그러자 정부는 2010년 ‘준주택’ 개념을 도입해 오피스텔, 고시원, 노인복지주택을 제도권에 포함시켰다. 준주택을 주택정책의 대상으로 파악, 관리해 명실상부 1인 가구의 주거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그 취지였다. 이후 지자체는 준주택에 대해 주거환경에 대한 관리, 감독을 할 수 있게 됐다.

준주택으로 지정되는 대신 준주택 건물주들은 국민주택기금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즉 건물을 지을 때 국민주택기금에서 싼 금리에 사업자 융자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제는 제대로 된 관리, 감독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국도시연구소 서종균 소장은 “현재 정부가 준주택 개념을 도입한 것은 이제부터 준주택을 주택정책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선언에 그치고 있다”며 “정부가 앞장서서 그에 합당한 관리, 규제 정책을 만들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삽화: 선우훈 기자 mrdrug@snu.kr


 

삽화: 선우훈 기자 mrdrug@snu.kr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최소한의 주거환경이 보장돼야=지금 당장 고시원을 없애자는 데는 회의적인 입장이 지배적이다. 고시원이 현재 저소득 1인 가구에게 주택기회를 제공하는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 사무총장은 “고시원 거주민들은 모두 저소득 1인 가구”라며 “이들을 위한 주거 보장이 단기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고시원을 규제하는 것은 그들을 거리로 내모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신상영 연구원 역시 “소형 임대주택이 많이 공급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시원을 일방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또 다른 기형 주거환경을 만들어낼 뿐”이라고 말했다.

대신 고시원이 최소한의 질과 안전이 보장되도 바뀌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이 모이고 있다. 현재 고시원의 주거환경에 대한 실질적 규제 수단은 건축법, 소방법 수준으로 매우 미흡한 상황이다. 주거 면적, 방음, 환기, 채광 등 기본적인 혹은 최소한의 주거생활을 보장하는 것과 관련된 기준이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도시연구소 김준희 연구원은 “주택에 최저주거기준이 있듯이 사람에게 임대해주는 거처에 대한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며 “그 기준을 지키지 않는 주거를 폐쇄, 철거 혹은 기준에 적합하도록 개량을 강제하는 것이 고시원 주거환경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최근 서울시가 거주환경이 열악한 고시원의 시설 개선에 나서기로 한 것도 이러한 저소득·취약계층의 안정적 주거복지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다. 지난해 서울시는 ‘희망고시원’ 사업을 계획했다. 올해 상반기 기존 고시원 건물을 매입해 리모델링을 거친 후 직접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이를 통해 낮은 방세에 안전시설을 갖춘 공공 고시원을 직접 선보여 이 모델이 확산된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근본적 해결책은?=장기적 관점에서 고시원이 저렴한 소형주택으로 점차 대체될 필요성이 있다. 신 연구원은 “고시원에 대한 강력한 규제들이 있지만 고시원은 시설 자체가 근본적으로 적절한 주거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는 기형적 주거형태”라며 “저소득 1인 가구가 부담할 수 있는 저렴한 소형 주택의 공급을 늘려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고시원을 대체하는 장기적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에 소형 주택 공급을 민간에만 의존하던 방식을 벗어나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부는 2009년 ‘도시형생활주택’ 개념을 도입해 소형주택 확대를 꾀했지만 민간 공급자들이 가격을 높게 책정해 취지를 살리지 못한 바 있다. 신 연구원은 “LH공사나 SH공사와 같은 공기업의 차원에서 소형주택을 저렴하게 공급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도심 내 기존주택을 매입해 저소득층에게 저렴하게 임대해주는 매입임대제도의 확대도 고려해볼만 하다”고 말했다.

기존에 있는 소형주택을 저렴한 가격에 임대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돼야 한다. 한국도시연구소 김준희 연구원은 “저소득 1인 가구에게 저렴한 가격에 임대해주는 건물주에게 세금에 대한 혜택을 주는 등의 경제적 유인이 필요하다”며 “박근혜 정부가 2014년부터 실시하기로 한 주택바우처 제도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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