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변성엽 기자
사회부
한국 사회에서 고시원은 고시생 내지 가난한 대학생들의 임시적인 거처로 인식돼왔다. 언론에 고시원의 열악한 실태가 조명될 때면 “에이, 몇달 사는 곳인데”라며 지나치는 것도 이러한 안일한 시각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평균 연령이 46세에 이르는 이들이 평균 1.8년 정도의 기간을 고시원에 거주한다. 또 고시원 거주자가 전체 주거취약계층의 절반을 차지하는 등 고시원은 현실적으로 1인 저소득 주거형태로 자리잡은 상태다. ‘임시주거’로 지어진 비정상적 형태의 주거지가 ‘실질적’ 거주지가 돼버린 상황에서 고시원의 열악한 주거환경 문제를 더 이상 두고봐서는 안된다.

노숙인과 같이 거주할 장소가 없는 이들에게만 주거권을 국한시키는 것은 주거권을 좁게 보는 처사다. 주거권을 넓게 본다면 고시원, 더 심각하게는 비닐하우스, 만화방, 쪽방촌 등 안정된 주거환경으로 생각할 수 없는 기형적인 주거환경에서 거주하고 있는 주거취약계층들에게도 시선을 돌려야 한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거리노숙인의 주거권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는 적합한 거처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도 홈리스로 보고 있는 영국이나 안전하고 안정적인 주거에 대한 적절한 접근성이 없는 경우를 홈리스로 보는 호주의 사례와 대비된다. 우리나라도 헌법 제35조 3항에 국민에게 쾌적한 주거생활을 보장할 의무가 규정돼 있지만 정부는 팔짱만 낀 채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

유엔은 철거민이나 노숙인과 같이 집이 없어 거리로 내몰린 사람뿐 아니라 안정된 주거공간이 없는 이들을 모두 홈리스의 개념에 포함시켜 그들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함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유엔은 한국 정부에도 보다 넓은 차원에서의 주거권을 보장하라고 권고 한 바 있다. 이제는 우리 정부도 주거권을 넓게 바라볼 차례다. 열악한 주거환경에 신음하는 고시원 거주민과 같이 적절한 주거를 갖지 못하는 이들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힘을 쏟아야 한다. 이들의 주거권은 그들에게 보장돼야 할 다른 층위의 인권들과 분리해 설명할 수 없는 권리다. 인간다운 삶의 기본적 조건은 적정한 주거확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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