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관악을 밝히는 숨은 얼굴들 ③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창 잠에 푹 빠져 있는 새벽 3시. 누군가는 전화 벨소리에 잠이 깬다. 전화를 건 상대를 향해 오밤중에 웬 전화냐고 화를 낼 법도 한데 이들은 오히려 상대방의 목소리에 차분히 귀 기울인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24시간 내내 도움을 구하는 목소리를 들어주는 그들은 바로 스누콜 상담원들이다. 매년 되풀이 되는 학생들의 자살사건이 개인적인 문제만은 아니라는 여론이 활성화되면서 2008년 3월 대학생활문화원 내부에 스누콜을 설치했다. 스누콜 상담원들은 매주 20통 이상의 상담을 하고 있으며 상담원을 직접 방문한 학생들의 면담도 병행하고 있다. 스누콜이 개통된 지 5년째 ‘듣는 것’을 업으로 삼는 서정은 상담사(28)와 이정민 상담사(32)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 주현희 기자 juhieni@snu.kr

서울대 학생들이 그들에게 털어놓는 고민은 과연 무엇일까? 이 상담원은 “서울대생들은 상대적으로 실패를 적게 겪다보니 조그만 실패에도 크게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며 학생들이 주위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심하다고 했다. 학점이 낮게 나오자 슬럼프에 빠져 학사경고를 받은 경우에서부터 고시공부를 하다 압박감과 불안감을 견디기 못하고 전화를 거는 사람에 이르기 까지 진로와 학업과 관련해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상태가 해소되지 않고 지속 경우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스누콜 상담원들은 걸려오는 전화만 받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손을 내민다. 가령 상담원들은 스누라이프에 다소 상태가 심각하다고 여겨지는 글이 올라오면 글쓴이와 연락을 시도한다. 서 상담원은 “실제로 자신의 처지를 알리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쓰신 분이 계셨다”며 “이렇게 연락해 줘서 고맙다는 대답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고 말해 실시간으로 학생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상담원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이제껏 수많은 사연을 접했을 그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묻자 두 상담원은 입을 모아 위기상담을 꼽았다. 위기상담은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에게 걸려온 상담을 뜻하는데 이들은 종종 자살을 시도하는 중이거나 하기 직전에 전화를 걸기도 한다. 서 상담원은 “칼로 손목을 긋거나 뛰어내리기 직전 최종 확인을 받고 싶은 심리에 전화를 거시는 분들이 있다”며 “그런 경우 상담자분의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믿고 본인이 그 마음을 인정하게 한다”며 침착하게 얘기했다. 상황에 따라선 청원경찰과 같이 출동해 상담자를 직접 방문하기도 한다.

상담원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만큼 간혹 지칠 때도 있다. 그들이 타인을 도와줄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찾는 곳은 ‘상담원들의 상담원’이다. 이 상담원은 “외부의 기관을 이용하거나 대학생활문화원 자체 프로그램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동료 상담원끼리 서로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거나 또다른 상담원을 찾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서 상담원은 “심적으로 지칠 때 상담을 받고 나면 재충전돼 좀더 상담에 힘을 쏟을 수 있다”며 정신적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4시간 상시 대기하는 스누콜이지만 인력상황은 그리 안정적이지 않다. 특히 야간 교대시간의 모든 상담전화는 담당자 한사람의 핸드폰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간혹 오해를 받기도 한다. 상담시간이 자칫 길어질 땐 중간에 걸려온 전화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대학생활문화원의 시설 여건 상 당직을 서며 전화를 받을 수 없어 퇴근 이후 지하철이나 승용차로 이동 중 상담전화가 오기도 한다. “그러한 경우 전화를 거셨던 분에게 다시 직접 연락을 하거나 목적지에 도착한 후 상담을 시작한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게 일하는 그들이지만 상담에 대한 열정과 애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그들은 어떠한 상담사로 기억되고 싶을까? 한참을 생각하던 서 상담원은 “남들에게 얘기 못할 비밀을 털어놓아도 처음과 변함없이 대해주는 상담원이 되고 싶다”며 “그러한 상담을 받고 난 후엔 굉장히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오늘밤에도 스누콜 상담원들은 혹시 있을지 모를 전화에 긴장하며 잠이 들 것이다. 잠들 수 없는 관악의 밤, 혼자서는 도저히 짊어질 수 없는 짐을 지고 있다면 지금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구해보자. 그들은 언제든지 당신의 손을 잡아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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