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수 교수
(인류학과)
서울대총동창회 회장과 서울대 총장의 연명으로 2015년에 맞을 ‘개학 120주년’을 준비한다는 ‘서울大同窓會報’의 내용이 돌고 있다. ‘서울대 120년사’의 출판계획도 있는 모양이다. 언제부터인지 ‘開學 1895年·統合開校 1946年’의 슬로건이 나돌기 시작하였다. 나는 ‘진리는 나의 빛’을모토로 해온 서울대의 교사와 관련된 내용에 허위가 삽입되어 있음을 지적하기 위해서 이 글을 적는다.

진실교육을 목표로 하고 있는 학문의 전당에서 주최하는 작업에 거짓이 개입되어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문제라고 하더라도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統合開校 1946年’에 대해서는 수긍이 간다. 공문서들이 그러한 견해를 고증하기에 충분히 존재한다.

그러나 ‘開學 1895年’이라는 단어는 엄밀한 고증을 통과하지 못한 주장의 차원일 뿐이다. 그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공문서나 서류들도 없는 상태이다. 대한제국시대의 법관양성소 설립을 기준으로 하여 현재 국립대학법인 서울대 교사의 시발점으로 삼자는 주장이다. 그러한 주장을 반영이나 하듯, 법학전문대학원 앞에는 이준 열사의 동상도 세워 두었다. 후세들에게 저명한 분의 추모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는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開學 1895年’의 주장과 연계의도가 있는 것이라면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사실에 엄밀해야 할 법학도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겠다는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서울대 총장의 이름으로 ‘開學1895年’의 주장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필요하다. 문제가 있는 주장을 사실화하려면, 적절한 과정의 고증이 필요하다. 가장 잘 된 고증 과정이라는 것은, 고증하고 싶은 주장을 거부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는 것이다. 아무리 거부하려고 해도 거부가 되지 않는다면, 그 주장은 사실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아니, 당연히 사실로서 받아들여져야만 한다.

얼마 전에, 조그만 모임이 결성되어서 ‘開學 1895年’의 주장을 검토한 적이 있지만, 그것은 사실로서 받아들여지기에 충분히 지지할 수 있는 자료가 존재하지 않았음을 확인한 바 있다. 그후 그러한 내용의 보고가 행정라인을 통해서 이루어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 견해가 묵살되었는지, 버젓이 총장의 이름으로 ‘開學 1895年’이 공공연하게 거론되는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실적을 탐하는 교수들이 허위 논문을 작성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開學 1895年’과 ‘진리는 나의 빛’을 나란히 놓고 보니, 일말의 자괴감이 든다. 전자가 진리의 범주에 속할 수 있는가? 대학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소홀하게 접근한다면, 과연 ‘서울대 120년사’라는 책이 제대로 나올 수 있을까? 그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어느 부분을얼버무리거나 뜯어 맞추어야 하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개입될텐데. 과연 그러한 방식으로 대학의 정체성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일부의 주장을 근거로 하여, 그것을 억지로 만들어냄으로서 대학의 정체성이 빛난다고 생각하는 구성원들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은 사실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이 농후하고, 사실로부터 벗어나서 만들어진 정체성은 허위를 내포하게 될 것이고, 허위를 내포한 정체성은 반드시 무너질 수밖에 없다.

역사의 엄정함 앞에서 숙연해야할 과제가 ‘서울대 120년사’ 앞에 놓여 있다. 2015년, 누가 그 사상누각과 허위의 멍에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 것인가? 진리에 비추어서 조금이라도 켕기는 점이 있다면, 그리고 2015년 ‘서울대’가 부끄럽지 않으려면, ‘開學 1895年’과 ‘서울대 120년사’는하루속히 사라져야할 단어들이라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