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문화재 복원을 둘러싼 논란들
건축문화재 복원을 둘러싼 논란들
  • 대학신문사
  • 승인 2013.04.07 05: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는 철저한 고증을 거쳐 원형을 살렸다는 문화재 당국의 발표를 종종 듣는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복원 문화재들은 실상 원형과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학신문』에서는 문화재 복원 여부와 과정에 관한 논쟁점을 짚고 바람직한 복원을 위한 방향을 소개하고자 한다.

 

복원, 누구나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대표 사찰로 꼽히는 불국사에는 신라시대 양식의 건물이 세워져 있지 않다. 불국사는 임진왜란 때 무너진 후 조선 숙종 때에 다시 세워졌지만 조선말 국가가 혼란스러워지면서 사원이 무너졌다. 1970년 복원 당시 신라 시대의 가구양식에 대한 자료가 부족했고, 신라시대의 부재(건축물의 재료)들도 거의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불국사의 건축물들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양식을 혼용해 복원됐다. 이처럼 우리가 ‘원형’이라고 생각하는 복원 문화재는 사실 ‘원형’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우리는 건축문화재복원을 당연한 듯 바라보고 있다.


◇복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하지만 복원만이 당연한 결정은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 하나인 파르테논 신전을 떠올려 보자. 장중한 기둥들이 늘어서 있지만 완전한 모습은 아니다. 건축양식은 물론 건축물의 재료까지 대부분 확인할 수 있지만 복원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념건조물과 유적지의 보존과 복원을 위한 국제 헌장인 「베니스 헌장」(1964)에는 “추정(conjecture)이 시작되는 순간 복원은 멈춰야 하며, 불가피한 변화의 경우 그 흔적을 남겨야 한다”고 돼 있다. 우리나라 문화재청에서 2009년 정한 「역사적 건축물과 유적의 수리복원 및 관리에 관한 일반원칙」에도 “복원은 고증에 의해 충분하고 직접적인 증거를 통해 역사, 문화적 가치를 회복할 수 있는 경우에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화재와 관련된 기본 원칙은 복원이 반드시 행해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우선 복원은 수리, 수복, 복원 등 다양한 보존 방법 중에서도 가장 큰 정도의 변화이기 때문에 자칫 후대에 왜곡된 역사를 남겨줄 수 있다. 복원은 일부분을 고치는 수준이 아니라 특정 시점으로 전체 또는 일부를 되찾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김봉렬 교수(한국예술종합대학 건축과)는 “복원된 건축물은 100년 후에는 곧 역사가 돼 후세에 꼼짝할 수 없는 것이 된다”며 무분별한 복원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또 건축물의 터 자체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역사를 기억해 온 장소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김 교수는 “장소(site) 자체가 역사적인 건축물이기 때문에 그나마 있는 것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며 건축물을 세우는 것이 오히려 유적지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10년 넘게 발굴돼온 경기도 양주 회암사지의 사례를 들어 “회암사 박물관에서는 이미 영상과 모형 등을 통해 시각적으로 회암사를 보여주고 있다”며 “아무도 살지 않는 폐사지에 굳이 건물을 세울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복원이 이뤄지는 이유들=이런 문제점들이 있음에도 복원이 이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복원의 충분한 자료가 있는 경우가 있다. 『화성성역의궤』의 도면을 토대로 복원된 수원화성 복원과 사진 및 실측자료를 바탕으로 복원된 숭례문이 복원된 그 사례다. 이 경우 문화재의 미적, 역사적 가치를 살리기 위해 복원하게 된다.

직접적인 증거가 없음에도 당대의 필요에 따라 복원이 이뤄지는 경우도 잦다. 국가에서는 건축문화재가 민족 문화의 상징물로서 가치가 높기 때문에 복원을 추진하고자 한다. 또 지방자치단체 역시 관광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복원을 실행해오고 있다. 우리가 복원을 당연하게 여길 만큼 자주 복원이 돼 온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복원이 전통 기술 및 문화 보존 방법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강근 교수는(서울시립대 건축학과) “전통 기술은 사용되지 않으면 그대로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복원 작업이 전통 기술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다. 이번 숭례문 복원 과정에서 전통방식으로 기와를 굽는 등 여러 전통 기술들이 주목받은 사례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처럼 복원이 필요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기 때문에 복원 담당자들의 합의를 통해 복원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김 교수는 적절한 합의를 통해 성공적으로 복원한 사례로 1980년대 경주 안압지 복원을 꼽는다. 안압지의 경우 못 주위로 26개의 건물터가 발굴됐는데 여기에 26개소의 건축물을 세우는 대신 3개소의 건물만 복원하고 나머지 터에는 이곳에 건물이 있었다고 표시하는 데 그쳤다. 현대인들이 건축물을 새로이 세운다고 해서 완전하게 원형을 되살리는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하되 건축물의 재현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미적가치와 터가 주는 상상력을 같이 살린 것이다.(그림 ①)

사진 제공: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학사전』

 
복원 과정을 둘러싼 논쟁


◇복원시점, 언제로 정해야 하나=복원 여부를 결정하고 나서도 문화재를 어떻게 복원할지 합의하는 과정에서 논쟁이 발생한다. 우선 복원 시점의 문제가 존재한다. 그림이나 도자기 등 다른 문화재와 달리 건축문화재는 세월이 축적되면서 구조나 건축 재료에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복원을 결정했다고 하더라도 어느 시점으로 복원할지에 따라 복원된 문화재의 형태가 전혀 달라진다.

원칙적으로는 복원을 할 때 창건 당시 시점으로 되돌리는 것이 옳지만 개별 건축물의 역사 및 복원 근거가 있는지의 여부 등을 고려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은 조선초의 성문이지만 임진왜란 당시 경복궁과 함께 크게 훼손됐고 흥선대원군 때 중건됐다. 이때문에 문화재청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광화문 복원을 진행하면서 조선말(1885년)을 기준 시점으로 삼았다. 창건 당시 시점으로 되돌리는 것이 복원의 원칙이지만 조선초의 모습은 고증이 어려웠기 때문에 복원 시점을 그보다 후대로 설정한 것이다. 전봉희 교수(건축학과)는 “필요한 자료가 남아있는 시기 중 전성기를 추정 목표시점으로 잡는다”고 예외적인 원칙을 설명했다. 건축물이 가장 오래 존재한 형태, 건축물의 미적 완전성이 잘 드러나는 시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 시점을 고집해 복원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이강근 교수는 “건축물은 그 변화하는 과정 자체에 정체성(identity)을 찾아야 한다”는 점에 포착해 바람직한 복원은 건축물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덕수궁 복원과 관련한 논의가 한 예이다. 본래 덕수궁 중화전 주위로는 행각들이 있었으나, 그것들이 허물어지고 일제강점기 때 그 터 일부에 분수대가 들어섰다. 그런데 덕수궁 복원과 관련해 일제 잔재인 분수를 철거하고, 중화전 서쪽 행각을 다시 세워야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당시 이 교수는 이 경우 둘 다 덕수궁의 역사임으로 두 요소를 모두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중화전 복원 계획이 흐지부지 되면서 행각 복원은 없던 일이 됐지만, 복원 시점을 어떻게 설정하는 지와 관련해 주목할 만하다.(그림 ②)

삽화: 최지수 기자 orgol222@snu.kr

◇다른 방향들을 가리키는 증거들=복원과정에서 어느 증거를 채택할 것인가가 논란이 되는 경우도 있다. 복원에는 사진 자료, 설계도면, 문서화된 기록 외에도 다양한 증거들이 동원된다. 시나 옛 그림에서 이 문화재가 어떻게 표현되는지, 당대에 비슷한 유형의 건축물들은 어떻게 이용되었는지 등을 전체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0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된 경포대 판벽 복원은 서로 다른 증거들이 서로 충돌하며 논란을 일으킨 대표적인 경우이다. 강릉시의 경포대는 경포호 주변의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누각이다. 2008년 경포대는 판벽으로 정자를 둘러싼 형태로 복원됐다. 기둥에 판벽을 끼운 흔적인 장부구멍과 판벽이 설치된 일제시대 2장의 사진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복원을 찬성하는 자문위원 및 전문가들은 부사 이명헌이 1873년 마지막으로 보수한 이후 보수 기록이 없으므로, 이 때 판벽을 설치한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기준으로 복원했다.(그림 ③)

삽화: 최지수 기자 orgol222@snu.kr

그러나 이희봉 교수(중앙대 건축학과)를 비롯한 고건축, 역사 전문가들은 다양한 증거를 근거로 이를 반박했다. 이들은 시와 그림 등 인문학적 증거를 무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판벽을 설치해버리면 옛 문인들이 경포대에서 볼 수 있다고 기록한 증봉낙조(甑峯落照, 증봉으로 지는 해넘이)가 보이지 않고, 정자가 훤히 드러나게 그린 옛 그림들과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 누각 문화에서 판벽을 설치하는 일이 드물고, 관람이라는 건축물의 목적에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로 2011년 열린 심포지엄은 판벽 제거를 찬성하는 측의 우세로 마무리됐다. 당시 경포대 판벽 제거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며 공개 심포지엄을 주도한 이희봉 교수는 “공개 심포지엄에서 논의된 결과에 따라 과감하게 원상복구 할 수 있도록 구속력이 따르게 해야 한다”고 절차상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직까지 경포대는 판벽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이다.

현대적 융통성 어디까지 허락될 수 있나=「베니스 헌장」에서는 “증축(첨가)은 건물의 중요한 부분, 전통적 환경, 구성의 균형과 주변과의 관계를 바꾸지 않을 때에만 허용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현대적인 변형은 일차적으로 지양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대의 무분별한 첨가의 사례로는 석가탑 상륜부가 있다. 석가탑의 경우 발견 당시 상륜부에 아무런 장식이 없었으나 60년대 복원 때 다른 탑의 꼭대기 장식을 모방해 임의로 장식물을 꽂아 넣었다. 우리가 답습해서는 안될 잘못된 변형인 것이다.

그러나 2010년 광화문 현판 사례처럼 현대의 변형이 근거가 있으면서도 건물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경우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문화재청은 2010년에 사진자료를 토대로 현판을 달았지만 곧 균열이 생겼고 현판을 다시 제작하게 되면서 한자 현판의 타당성에 대한 논란이 일어났다. 광화문이 국가적 상징물인 만큼 단순히 한자 현판으로 복원할 것이 아니라 한글로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당시 한글 현판을 지지했던 전봉희 교수는 “대외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자리인데 이 문을 단지 지나간 왕조의 궁궐 정문으로만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며 한글 현판을 지지하는 근거를 밝혔다. 또 전 교수는 “현판은 건축물 자체와 달리 역사상으로도 당대적 요구에 따라 훨씬 더 손쉽게 바뀌어왔다”며 문화재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결국 논란 끝에 문화재위원들은 2012년 12월 “한글 현판은 문화재 복원 정신에 맞지 않다”며 1885년 사진에 나온 글씨를 근거로 한자 현판을 제작할 것을 결정했다.

또 기술적인 문제로 복원에 융통성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신응수 대목장은 경복궁 근정전 해체 보수를 맡았던 당시 옛 방식의 지붕이 추녀와 기둥에 큰 하중을 주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 때문에 30년마다 건축물을 해체, 보수해야 해 문화재가 훼손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그는 지붕 속을 채우는 전통기술 대신 덧집을 설계하는 현대적인 공법을 제안했고 전문가들의 동의로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바람직한 복원을 위한 개선점들


우선 문화유산 보존 및 복원 논의와 관련해 투명성이 제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현재 문화재 사안에 관한 최고 심의자문기구는 문화재청 산하 문화재위원회이며 이들의 결정은 복원 여부에 강한 영향을 끼친다. 문화재위원 자격 요건에는 불교계, 언론계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재 전문가들이 위원회로 임명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지만, 현실적으로 위원 대다수가 전, 현직 교수로 이뤄져 있다. 전봉희 교수는 문화재위원회의 권한을 고려해 “인원구성이 좀더 다각화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는 공개적인 공청회나 심포지엄 등도 더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된다. 성공적인 복원으로 꼽히는 베니스의 페니체 극장 복원 당시에는 2년간 4차례 이상의 공개 심포지엄을 거쳤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이희봉 교수는 “문화재 관련 공무원 주관 심포지엄에는 구색 맞추기 인원을 구성하지 반대론자들은 초청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찬성과 반대 측이 골고루 참석하는 심포지엄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문화재 보존∙복원과 관련된 지방자치단체 직원들의 전문성도 요구된다. 현재 지역 문화재를 담당하고 있는 각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재 담당 직원들은 순환보직으로 인해 문화재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가지기가 힘들다. 전봉희 교수는 또 “문화재 담당이 되면 한직으로 밀려났다고 생각하는 경향까지 있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숭례문 화재 사건의 경우도 관리를 맡은 중구청에 전문가가 있어서 빠른 판단을 내렸다면 피해를 훨씬 더 줄일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며 전문가 배치가 부족한 상황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복원은 과거 건축물에 대한 불확실한 추측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부족한 점을 보완해 좀더 나은 복원이 가능하다면 이를 위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