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절대왕정의 기틀을 닦은 루이 14세는 그의 옥좌를 만인이 경외하고 찬탄할 그 어떤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는 라신, 코르네유 등 극작가들을 후원해 그 이전까지는 상상할 수 없었던 대규모의 장엄한 비극작품들을 무대에 올리게 함으로써 국왕에 대한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태양왕으로 칭송받던 자신을 빛내 줄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무대인 베르사유 궁전을 지었다. 무려 1,400개의 분수가 곳곳에 자리 잡은 정원에 들어서면 황금마차를 타고 아름다운 젊음을 과시하는 태양신 아폴로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정원의 머리에 위치한 이 아폴로의 분수에서 모든 자연 경관이 펼쳐지듯이, 루이 14세의 권위로부터 프랑스의 모든 질서가 생성되고 유지됨을 부각시키는 배치이다. 거대하고 화려한 조형물에 압도된 봉건귀족들은 궁정 내에서는 매우 복잡하고 세밀한 에티켓을 지키도록 요구받았다. 신분과 국왕과의 친소관계에 따라 하나하나 규정된 궁정 예법을 따르면서 그들은 계속된 긴장상태 속에서 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경쟁했다. 이처럼 베르사유 궁전은 절대주의의 한 표상이면서 봉건귀족에 대한 실질적 지배를 가능케 하는 정치적 도구였다.

하나의 정치공동체에서 이미지, 조형적 상징, 정치적 연출 등을 활용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인데, 현대에 그것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사회는 아마 북한일 것이다. 1970년대 김정일의 주도 하에 제작된 「피바다」, 「꽃 파는 처녀」 등 ‘5대 혁명가극’과 2002년부터 선보인 「아리랑」 축전 등의 대규모 공연예술은 영웅적인 혁명지도자에 의한 민족해방의 희망과 열정을 표현한다. 한편, ‘인류의 태양’으로 일컬어지는 김일성을 기리는 대규모 동상, 영생탑, 주체사상탑 등 거대한 조형물들이 평양을 비롯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북한 전체가 김일성과 그 가족의 혁명 서사를 표상하는 장치들로 채워져 있고, 대규모 군중 예술을 통해 그 이야기를 재현한다는 점에서 권헌익·정병호의 『극장국가 북한』에서 제안하듯 북한이라는 국가를 하나의 거대한 극장에 빗대어 볼 수도 있겠다.

삽화: 최지수 기자 orgol222@snu.kr

프랑스의 이론가 기 드보르(Guy Debord)는 현대 사회를 상품과 매스미디어가 공급하는 이미지, 즉 스펙터클에 의해 점령된 사회로 파악한다. 직접적이고 생생한 경험들이 이미지와 기호들의 세계로 변형·가공돼 이것들이 실재를 대체하게 되면서 삶 전체는 스펙터클들의 거대한 축적물로 재연된다. 이처럼 스펙터클의 사회란 우리가 능동적으로 ‘보는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도나 의지와 무관하게 ‘보이는 어떤 것’이 지배하는 사회다. 이러한 분석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것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와는 가장 동떨어져 있는 북한 사회에 잘 들어맞는다. 주체사상, 선군정치 등의 이념을 표상한 기호와 이미지 등이 실체이자 요체로 확립되고 그에 따른 인간형이 규범으로 제시되는 데 반해 인민의 삶 그 자체는 점점 주변적인 것으로 밀려난다. 국가가 연출하는 스펙터클과 그 화려한 외양 이면에서 인민의 고통과 사회적 모순들은 은폐되고 억압된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생일인 오늘 4월 15일을 ‘태양절’로 제정하고 ‘민족 최대의 명절’로 섬긴다. 태양절에는 다양한 생일행사가 열리는데 북한 인민들이 올해는 어떤 스펙터클에 둘러싸여 세상을 해석할지 궁금하다. 그런데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던 ‘태양왕’ 루이 14세의 절대왕정도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처형됨으로써 종말을 고했다는 사실쯤은 그들도 알고 있지 않을까.

 

장준영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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