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보안과 검증, 인체인식기술의 원리를 밝히다 ③

삑! 기숙사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다. 다른 도구 없이 ‘손’으로 문을 열었을 뿐이다. 기숙사 학부생활관에서는 카드키 등의 열쇠 없이 손등으로만 출입할 수 있다. 정맥인식기술이 내장된 기계가 구비돼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맥인식기술은 학교 기숙사뿐만 아니라 건설현장이나 병영의 출입관리, 공공기관의 근태관리 등에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

정맥인식기술은 손바닥, 손등, 손가락처럼 주로 손 부위의 피하 정맥 모양으로 개인의 신원을 판별하는 기술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 개인의 정맥 모양이 각기 다름이 전제돼야 한다. 그런데 같은 유전적 형질을 공유하는 일란성 쌍둥이조차도 정맥 모양이 다르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맥도 생체인식기술의 적용대상이 될 수 있었다. 정맥의 형태를 생체정보로서 개인의 신원을 구분하는 데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때 전신에 위치한 정맥 중 주로 손 부위가 이용되는 것은 팔꿈치 등 다른 신체부위에 비해 손이 사용자 입장에서 정맥인식 기계에 인식시키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삽화: 최지수 기자  orgol222@snu.kr

‘핏줄’에서 ‘열쇠’로

정맥인식은 적외선 투영을 통해 정맥의 형태를 파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정맥은 피하(皮下)에 위치하기 때문에 가시광선으로는 정맥의 형태를 알 수 없다. 따라서 적외선을 해당 부분에 비추고 그 반사된 영상을 통해 정맥의 형태를 파악하는 방법이 주로 이용된다.

그런데 최초로 얻은 영상에서는 정맥부위와 그외 배경영역의 명암 차이가 미약해 정맥의 형태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최초 영상에서는 개인의 정맥 패턴을 파악할 수 없으며 패턴화를 위한 추가적인 작업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처리’ 과정을 마친 다음에는 최초 영상으로부터 정맥이 분포하고 있는 부분이 분리된다. 이를 ‘이치화과정(thresholding)’이라 하며 이치화과정 후 정맥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내접사각형의 형태로 추출된다. 이치화된 영상은 3차원의 혈관 모양을 2차원으로 ‘평활화’하는 작업을 거쳐 정맥을 평면상 단순한 선의 형태로 표현한다.

이렇게 선 모양으로 정맥의 형태가 표현되면 뒤이어 수치화 및 암호화 작업이 이어진다. 선이 갈라지는 분기선, 끝선, 분기각 등 정맥의 특징은 평면좌표 위 벡터로 표현할 수 있으며 벡터는 다시 수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정맥의 특성을 나타내는 알고리즘에 벡터값을 대입하면 수치화된 대푯값을 얻을 수 있다. 정맥인식기술을 구현하는 장치는 사전에 등록된 수치와 입력된 수치의 비교를 통해 개인의 신원을 식별해낼 수 있다.

정맥인식기술은 지문인식기술, 홍채인식기술 등 다른 생체인식기술에 비해 ‘사용성(usability)’이 높은 편이다. 사용성은 불특정 다수의 성인을 대상으로 어느 정도의 비율이 이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 척도다. 정맥인식기술의 사용성은 99.98%에 달하며 이 수치는 약 95%의 사용성을 보이는 지문인식기술보다도 높은 수치다. 지문처럼 피부 위에 위치한 생체특징은 상처 등 신체 외부 손상에 영향을 받는 데 비해 정맥은 피하에 위치해 외부요인으로부터 영향을 덜 받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정맥인식기술은 사용자의 거부감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정맥인식기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온 테크스피어 연구소 최우섭 팀장은 “홍채와 얼굴에 빛을 비추는 것은 사용자의 거부감을 야기할 수 있다”며 “정맥인식기술은 주로 손을 이용하기 때문에 사용자의 거부감이 적다”고 밝혔다. 게다가 신체부분을 직접 인식기계에 접촉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빛을 비춘다는 점도 거부감을 낮추는 데 일조한다.

무엇보다도 정맥인식기술의 가장 큰 장점은 건설현장, 병영 등 악조건의 환경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땀, 먼지, 물, 기름 등 오염물질에 노출될 확률이 높은 환경에서는 지문인식과 손인식 등 신체 외부의 생체특징을 이용한 기술이 적용되기 어렵다. 하지만 정맥인식기술은 오염물질에 의한 신체외부 변형과 관계없이 제역할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맥인식기술은 다른 생체인식기술에 비해 다양한 환경에서 사용될 수 있다.

보다 높은 완성을 위해

하지만 실생활에서 정맥인식기술을 이용하고 있는 기숙사 구성원들은 “분명 내 손등임에도 기계가 잘 인식하지 못한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최우섭 팀장은 “처음 혈관 등록 시 관리자가 정맥을 등록하는 데 있어 미숙한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관에서 정맥인식기술을 전담하는 인력을 배치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미숙련자도 제대로 등록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의 개선이 필요하다.

게다가 정맥인식기술은 주로 손을 이용하기 때문에 미세한 손의 떨림에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외부 온도에 의한 혈관 수축·팽창의 크기 차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최 팀장은 “정맥의 미세한 변화에 따른 오차를 보완하기 위한 기술이 필요하다”고 밝히며 이런 변화폭에 대응하는 고수준의 알고리즘이 개발돼야하는 필요성을 제기했다.

또 기숙사의 출입관리나 공공기관의 근태관리에 쓰이는 정맥인식기술은 한때 생체정보 수집·활용에 관한 인권침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정맥인식기술 활용을 위해 개인의 동의 없이 정맥형태에 관한 정보가 수집됐기 때문이다.

이에 2005년 정부에서는 ‘생체정보보호 가이드라인’을 제정했으며 기숙사 등 대부분의 기관에서 ‘생체정보제공동의서’를 받고 있다. 하지만 현재 생체정보보호 가이드라인은 실질적으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으며 관련 법제도도 구비돼 있지 못한 상황이다.

최우섭 팀장은 “정맥인식기술 자체는 이미 완성도가 높은 단계에 다다랐기 때문에 타 생체인식기술과 융합을 통해 보안을 강화하는 쪽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으며 “보안 분야를 넘어 사무전반 정보관리에도 정맥인식기술이 응용될 여지가 있다”고 전했다. 앞으로 정맥인식기술이 현재의 단점을 극복하고 일상생활의 어느 영역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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