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희 박사과정
(원자핵공학과)
어떤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할 때 문제를 바라보는 프레임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다. 심지어 문제를 바라보는 프레임이 달라서 서로 소통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본다. 과학기술과 관련한 논란에서도 이러한 프레임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벌써 2주기를 맞는 후쿠시마 사고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지진과 해일이라는 자연 재해에 의하여 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한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이를 반박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언급하기 이전에 그것이 왜 자연재해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전문가는 언론에서 별로 본 적이 없다.

사실 후쿠시마 사고를 둘러싼 토론이나 논란을 쭉 지켜보면 자연재해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핵발전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단점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핵발전은 기본적으로 핵분열 반응에 의하여 발생하는 질량 결손 에너지를 이용한다. 하지만 연쇄 핵분열 반응이 중단되더라도 불안정한 핵분열 생성물로 인해 많은 열이 발생한다. 후쿠시마 사고의 경우 오직 붕괴열만으로 핵연료 다발이 녹아내렸고 다량의 방사능 물질이 외부로 유출되었다.

물론 붕괴열은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물리적 현상이며 대부분의 발전소들은 붕괴열을 냉각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후쿠시마 사고에서 보았듯이 붕괴열을 적절히 냉각시킬 수 없는 상황이 오면 매우 치명적인 사고가 날 수 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후쿠시마 사고가 터지고 나서 그 원인으로 자연재해에 취약했던 붕괴열 제거 시스템을 지적했지만 이 문제를 조금 다른 프레임으로 바라보면, 더욱더 근본적인 원인은 핵연료를 태운 후에는 항상 붕괴열이 나온다는 물리적 현상 자체이다.

만약 후쿠시마 사고의 핵심이 붕괴열의 냉각 시스템이 아니라 붕괴열 자체에 있다고 지적하게 되면 후쿠시마 사고를 둘러싼 논쟁의 양상이 크게 달라진다. 냉각 시스템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논의 자체가 기술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고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도 발전소의 구조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전문가들로 한정된다. 반면에 붕괴열 자체를 문제로 지적하면 그것 자체를 심각한 결함으로 지적할 수 있으므로 기술적인 논쟁의 수준을 넘어서 발전소 자체의 존폐에 대한 논쟁으로 확대된다.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바라볼 것인가는 전적으로 논쟁 참여자가 견지하고 있는 핵발전소에 대한 입장에 달려있다.

후쿠시마 사고를 바라보는 두 가지 프레임 중 어느 것이 옳다 혹은 그르다 말 할 수는 없다. 문제를 바라보는 프레임이 다를 뿐이며 불행하게도 이 두 가지 프레임은 서로 양립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찬핵론자의 입장에서 보면 붕괴열이 문제가 아니라 붕괴열을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문제이지만 반핵론자의 입장에서는 붕괴열 자체가 원자력 발전의 심각한 결함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프레임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면 우리는 핵발전소를 둘러싼 논쟁이 단지 기술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에너지 정책에 대한 싸움이며 에너지 정책으로부터 파생되는 사회 구조에 대한 다툼이다.


최용희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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