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글로벌 서울대 진단 ① 외국인 학생

글로벌 서울대 어디로 가고있나

대학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중요한 과제로 국제화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서울대도 세계 대학 평가 10위권 진입을 위해 다양한 국제화 사업을 실시해 왔다. 지난 2006년 국제협력본부를 신설한 이래 1차 사업으로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 △외국인 유학생 유치 △외국인 교수 초빙 및 지원 △국제 하계강좌 개설 △신문명 프로젝트 등을 추진했다.

2010년부터 시작된 2차 사업에서는 외국인 유학생 유치 전략을 강화했다. 매학기 300여명이던 정원을 늘리고 유치 국가의 다변화, 입학사정관제도 도입, 유관기관과의 연계 확대 및 홍보 강화 등을 통한 우수 인재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국제협력본부는 외국인 유학생의 유치로 나라간 인력을 상호 활용하고 재학생들의 시야를 넓히도록 한다는 입장이다.

외국인 교수 초빙 프로젝트도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본부는 해외 석학들을 본교 교수로 채용해 교육과 연구의 질을 높이고 연구 환경을 선진화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지난해 1월 총 235억원을 투입한 ̒글로벌 선도 연구중심대학 육성 프로젝트̓가 실시됐다. 노벨상급 세계 석학을 초빙하기 위해 부총장 2명과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초빙위원회를 만들어 연봉 및 연구비 15억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

적극적인 국제화 정책으로 교내 외국인 교수와 학생 수는 지난 몇년간 급격히 증가했고 영어 강좌 수 역시 늘었다. 이 과정에서 서울대의 국제화 지수는 개선돼 지난해 발표된 QS 세계대학평가 순위에서 국제화 정책 실시 이전인 2005년보다 50계단 이상 상승한 37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국제화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철학 없이 실시되는 국제화 정책이 외국인 학생의 부적응, 영어 강의의 질적 하락 등 여러 문제점을 낳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봉사활동 동아리 스누버디에서 활동했던 허은정씨(체육교육과·08)는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 학생이 졸업요건 등 학사관리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본부의 국제화 정책이 양적 팽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시적인 관점에서 질적인 성장 역시 담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학신문』은 네 번에 걸쳐 서울대가 실시하고 있는 국제화 정책 방향이 단순히 ‘글로벌 지수’를 높이는 데만 급급한 것은 아닌지 그 내실을 진단해 본다. 글로벌 서울대의 실태 및 현황을 짚어보고 이를 바탕으로 대학 국제화 정책의 실효성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자 한다.

외국인 학생, 더이상 소수가 아니다

유럽에서 온 A씨는 서울대에서 몇년 째 공부 중이지만 여전히 한국어가 미숙하다. 수업 진도를 따라가기 버거워 수업시간에 멍하니 앉아있기 일쑤다. 타향살이의 외로움과 더불어 한국 학생들의 배타적인 시선 때문에 심적으로 힘들기도 하다. 어느 날 수업을 알아듣지 못하고 앉아있는 A씨에게 교수님이 농담 반 진담 반 “한국에 왔으면 한국어를 해야지 못하겠다면 돌아가라”는 말을 던졌다. 그 말을 들은 A씨는 고민 끝에 귀국을 결정했다. 국비장학생으로 서울대에 왔던 외국인 학생이 심적인 어려움, 학업의 곤란 때문에 본국으로 돌아간 사례다.

작년 10월 기준 서울대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학생은 3106명(학위과정생, 비학위과정생 포함)이다. 캠퍼스를 지나가는 학생 9명 중 1명이 외국인이라는 뜻이다. 국제화 정세에 발맞춰 외국인 학생 수는 꾸준히 증가할 전망이다. 이에 『대학신문』은 2011년 외국인 학생들이 느끼는 배타적인 시선, 부족한 행정 지원 등에 대해 짚은 바 있다(『대학신문』 2011년 10월 17일자). 이후 단과대 외국인학생지원센터가 점차 지원을 늘리는 등의 개선이 있었지만 여전히 외국인 학생들은 학업에서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또 외국인 학생에 대한 배타적인 시선도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한국어라는 높은 벽 앞에서

외국인 학생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한국어’다. 현재 서울대는 외국인 학생 선발 시 한국어 능력을 선택적으로 요구하고 있고 졸업요건에도 별도의 한국어 능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때문에 외국인 학생들은 한국어가 주가 되는 학교생활 전반에서 힘듦을 호소하고 있었다. 특히 한국어로 진행되는 강의, 한국 학생들과 함께하는 조별과제 등의 학업활동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터키에서 온 슈크리야씨(영어교육과·10)는 “입학하기 전 1년간 한국어 교육을 받고 입학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한국어로 진행되는 강의는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외국인 학생회 SISA 회장 장리리씨(소비자학과 석사과정)도 “조별과제의 경우 빨리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한국어가 능숙하지 못한 외국인 학생들은 미안해하며 가만히 있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한국어 교육지원 △입학기준의 한국어 요건 강화 △졸업기준으로 어느 정도의 한국어 구사능력 요구 등이 제시된다.

현재 본부가 외국인 학생에게 제공하는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은 여전히 미비한 수준이다. 초급·중급·고급 한국어 과목 등의 정규과목도 총 5개에 불과하며 한국어 교육을 외국인 학생들의 책임으로 전가하고 있는 현실도 여전했다.

외국인 학생들의 한국어 능력 향상을 위한 제도적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서울대중국유학생연합회의 회장 양해승씨(국어국문학과·박사과정)는 "학교 차원에서 가격이 합리적이면서도 체계적으로 교육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며 “일주일에 2~3번 한국어 교육을 받도록 하거나 졸업요건에 일정 수준의 한국어 구사 능력을 포함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슈크리야씨는 “따로 시간을 내 한국어를 배우기 부담스러워 하는 외국인 학생들이 필수 교양수업 대신 한국어 수업을 듣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학생 입학 요건에 한국어 능력을 필수적으로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입학관리본부장 박재현 교수는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 학생을 선발하면 좋겠지만 지원하는 외국인 학생 수가 감소할 우려가 있어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행정 문제 조금씩 개선되는 중

외국인 학생에 대한 행정지원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는 평가다. 본부 차원에서 제공되는 장학금이나 인턴십 공지 등은 한국어와 영어가 동시에 공지되고 있다. 특히 몇몇 단과대는 외국인학생지원센터를 통해 외국인 학생을 지원하고 있다. 국제협력본부 성정현 담당관은 “예전에는 단과대에서 외국인 학생 관련 문제를 무조건 국제협력본부에 일임해 학생들이 불편을 느꼈다”며 “이제는 공대, 인문대, 자연대 등 외국인학생지원센터가 설치된 곳이 많고 각 기관이 역할 비중을 늘리고 있어 학생들이 행정적인 지원을 받는 것이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범대 등 일부 단과대는 여전히 외국인 학생을 위한 행정적 지원이 미비한 상태로 단과대 차원의 지원 확대가 필요한 상황이다.

여러 미비한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현재 외국인 학생들의 단체가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재외국민학생들의 ‘외국인특별전형동아리’가 신설돼 활동 중이며 외국인학생회인 SISA 역시 활동과 행사 등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더 많은 외국인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다. 학생지원과 김향미 선임주무관은 “SISA에는 모든 외국인 학생들이 가입돼 있지만 SISA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모르는 학생도 많기 때문에 홍보를 독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 유학생의 약 30%를 차지하는 중국유학생을 위한 서울대중국유학생연합회도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중국유학생연합회는 중국인 유학생을 위해 마이스누 등의 공지 내용을 번역해 자체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한국어 교육 동영상 강좌도 제작한다. 이 외에도 유학생들을 위해 의료보험 및 취업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한편 외국인 학생 지원 제도 및 인프라가 유학생의 다양한 국적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개선될 필요성도 있다. 학내에서 외국인 학생을 위해 제공되는 장학금 중 OECD국 학생이 지원할 수 있는 장학금이 많기 때문에 중국 학생의 경우 실질적으로 지원 가능한 장학금은 7개 정도에 불과하다. 양해승씨는 “아르바이트 등이 어려운 외국인 학생들의 경우 장학금이 필요한데 지원할 수 있는 장학금이 적어 외부 장학금을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며 “장학금 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이슬람교나 채식주의자인 학생들도 상당수인데 반해 학내에는 그 학생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러한 학생들의 불편함을 인지한 본부는 계획 중에 있는 외국인 기숙사에 종교와 음식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카페테리아 등의 편의시설을 계획하고 있다.

외국인 학생 여전히 '타인'

행정적 지원은 개선되고 있지만 내국인과 외국인 간의 벽은 여전히 두텁다. 전수영씨(지리교육과·13)는 “외국인 학생들과 같이 수업 듣고 생활하고 있지만 말을 걸거나 인사를 해본 적이 없어 마치 다른 곳에서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외국인 학생은 “외국인이기 때문에 한국 학생들이 나를 멀리한다는 생각이 든다”며 “외국인 학생들과만 교류하고 한국인 친구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외국인 학생들에 향한 배타적인 시각은 수업시간에도 드러난다. 장리리씨는 “영어 수업에서는 외국인 학생 때문에 한국 학생들이 피해를 입는다고 수업에서 나가달라는 권유를 받는 경우가 있고 한국어 수업에서는 수업 진도를 못 따라 올 수 있으니 수업을 취소하라는 암묵적 권유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2011년에 비해 외국인 학생에 대한 제도적 지원은 한발짝씩 개선되고 있지만 내국인과 외국인 간의 벽은 여전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내국인의 인식 개선을 위한 방안의 강구와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한 시점임을 시사한다. 장리리씨는 “제도의 미비점은 외국인 학생회 등을 통해 보완할 수 있으나 인식의 문제는 또다른 대책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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