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동리 현대적 의의

이동하 교수
(서울시립대
국어국문학과)
이 땅에 근대의 물결이 도래한 시기를 20세기 초로 본다면, 지금 우리는 ‘근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역사상의 한 단계가 1백 년 남짓 진행된 시점에 도달해 있는 셈이다. 그 기간 동안 근대는 많은 귀중한 성과를 이룩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근대는 근대 이전의 역사가 알지 못했던 문제점들을 숱하게 만들어냈다. 인간을 파편화하고 기계화하면서 끝없는 불안에 내몰리게 만든 것이 근대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이 후자의 측면은 금방 이해될 것이다.

이런 ‘성과’와 ‘문제점’이 서로 겹치며 엇갈리는 가운데 어느덧 1백 년이 넘는 연륜을 기록한 지금의 시점에서 우리는 더 이상 이런 겹침과 엇갈림의 이중주를 지금까지와 동일한 방식으로 견디어낼 수만은 없다는 절박감을 느끼고 있다. 그냥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의 ‘견디기’를 계속하며 대충대충 살아가기에는 문제점의 측면이 너무 위협적으로 커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제는 근대의 문제점을 깨끗이 해결한 ‘탈근대’의 지평을 탐색하는 작업을 치열하게 추진해야 할 필요성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대해 있는 것이다.

이런 필요성을 제대로 인식했을 때 우리가 누구보다 먼저 시선을 보내게 되는 인물 가운데 하나가 소설가 김동리(1913-1995)이다. 지난 1백여 년 사이의 기간 동안 이 땅에서 살고 간 인물 가운데, 근대의 성과를 제대로 살려내면서 동시에 그것의 문제점을 뛰어넘기 위한 노력을 남달리 치열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수행한 ‘문제적 개인’의 하나가 김동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그의 노력이 실제로 얼마나 좋은 성적을 거두었는가에 대해서는 평가가 나누어질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들이 이런 노력에 바쳐진 것이었고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에 그 나름의 진정성과 성실성이 확보되어 있었다는 사실만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김동리의 문학에서 그의 특별한 개성으로 돋보이는 측면은 ‘문제점 뛰어넘기’의 측면이다. 김동리 자신 그 점에 대해 자각적이었다. 그는 그의 문학론을 집약하고 있는 「문학하는 것에 대한 사고」라는 글에서 인간들 개개인과 천지(‘세계’가 아니라 ‘천지’라는 고풍스러운 어휘를 사용한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이에 떼려야 뗄 수 없는 ‘유기적 관련’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문학의 존재 이유를 이와 관련지어 설명한 바 있는데, 이런 그의 발언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것은, 파편화·기계화·불안의 보편화와 같은 근대의 핵심적인 문제점들을 돌파하는 길을 그와 같은 방향의 문학에서 찾아내고자 하는 의욕과,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과연 김동리는 그와 같은 방향의 문학을 건설하는 일에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쳤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무녀도」를 설명하면서 사용한 표현을 빌려서 다시 요약하면 ‘한 있는 인간이 한 없는 자연에 융화되는 길을 찾는’ 작업이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과 자연 사이에 상식적으로 가로놓인 장벽을 무너뜨리는’ 작업이었다. 이런 그의 평생을 일관한 작업에서 우리는 탈근대의 지평을 탐색하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에 의미심장한 시사를 주는 문학적 선례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김동리는 그 나름으로 근대를 수용하고 이용하면서 자기화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가 다른 것 아닌 ‘근대’소설의 낭만적 미학과 창작기법을 높은 수준에서 체득하여 활용했다는 사실부터가 이 점을 가리키고 있거니와, 근대 특유의 산물인 민족주의라든가 순수문학론 같은 것들과 그와의 사이에 맺어져 있는 복잡하면서도 끈끈한 관계 역시 이런 점을 잘 보여준다. 김동리가 지니고 있는 이와 같은 측면은 많은 경우 모순과 혼란을 동반하면서 나타난다. 이런 사실은 어떤 점에서 우리에게 곤혹스러운 느낌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러나 각도를 달리해서 보면,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게 주어진 ‘탈근대 모색’의 과제 앞에서 더욱 섬세한 사유를 행하고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그것 역시 의미 깊은 참조사항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올해는 한국 문학의 거장 김동리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다. 그는 자신만의 작품성을 바탕으로 운명으로부터 구원에 도달하는 인간상을 작품에 구현해냈으며 자신만의 ‘순수문학’ 영역을 구축하기도 했다. 문학계에서는 탄생 100주년을 맞아 각종 학술대회를 통해 그를 재조명하고 있으며 그의 현대적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대학신문』은 이번 기획을 통해 그의 문학세계와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메시지를 재조명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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