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 삶이라는 틈
이타적 삶이라는 틈
  • 대학신문
  • 승인 2013.05.05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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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은 박사과정
국어국문학과
며칠 전, 학교에 가려고 여느 때처럼 버스를 타고 선릉역 정류장에 내렸다. 선정릉의 곡선 담장을 휘어 돌아 도착한 선릉역은 늘상 참 오묘한 풍경을 자랑한다. 테헤란로, 강남의 한복판, 그곳에는 의외로 ‘삶’이 있다. 고층 빌딩들에 바로 인접한 안결은 다소 지저분한 보도블록과 작고 큰 커피 전문점들, 대형 문구점, 인쇄소, 들쭉날쭉 식당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언제 선정릉의 곡선 담장과 푸른 나무들을 지나왔나 싶게 비둘기색 도시를 바쁘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만 남아 있다.

제일 많이 눈에 띠는 것은 ‘사회생활’의 화장을 하고, 앞머리를 동그랗게 말아 올리고, 투피스 정장을 한 어머니 연배 쯤 되는 분들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걸음걸이가 굉장히 빠르다는 것과 대개는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굉장히 멋을 부렸음에도 촌스럽고 다소 무서운 인상을 풍긴다. 또 눈에 띠는 것은 목걸이 사원증을 하고 있는 회사원들이다. 이들은 대개 단체로 움직이며 다소 무료한 표정을 하고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있다. 아마도 사무실의 반복된 업무들 사이 잠깐의 외출과 커피 한 잔에 자신이 움직이는 세상에 속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날 변함없이 버스에서 내려 빵집을 지나, 전통차집을 지나 역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오른편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 순간 또 누가 술에 취해 쓰러져있는 것은 아닌지, 누군가가 횡포를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피해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도시의 차가움과 원인 모를 위협에 이미 익숙해진 것일까. 그런데 흘낏 그곳을 바라보니 도시의 색깔을 닮은 비둘기 한 마리가 눈에 띠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아직 살결을 다 덮을 털을 갖고 있지도 않은 새끼 새가 있었다. 짧은 순간 많은 풍경이 압축적으로 스쳐지나갔다. 아기 새는 어디를 다친 듯, 바닥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리고 어미 새는 그 옆을 지키고 있었다. 아마도 어쩔 줄 몰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주변에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아줌마 가방을 대각선으로 둘러멘 한 아주머니는 특히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며 혀를 끌끌 차고 있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곧 그 불쌍한 새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듯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잠시 멈칫, 결국 지하철 역사를 향해 빠른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 풍경은 굉장히 어색했기 때문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것은 내가 평상시에 알던 ‘선릉역’의 카테고리에 들어오지 않는 ‘정(情)’적인 풍경이었다.

어미새의 아픈 마음에 공명하고 있었던 사람들의 모습은 참 새로운 것이었다. 그 사람들은 지하철 안 자신의 핸드폰에 고개를 파묻고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무뚝뚝한 표정과 멍한 응시로 곁을 스쳐지나가던 행인이 아니었다. 또 뉴스 지면에 자주 등장하는 탐욕적이고 혀를 끌끌 차게 만드는 사람들, 부와 권력에 대한 묘한 자기만족의 순환적 굴을 파고 내려가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지위와 직책을 자신의 존재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들은 풍경의 의미를 바꾸는 사람이 되었다. 그들은 경직되고 고정되어 있었던 도시의 풍경에 균열을 만들고 이곳은 살과 피를 가진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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