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종영미술관 전시 「통찰」

不刻齋(불각재)̓ 조각가 김종영을 기리는 김종영미술관엔 조각하지 않는 곳이라는 독특한 이름이 붙어 있다. 이곳에선 우성(又誠) 김종영이 런던 테이트갤러리 국제조각공모전에 입상한 지 60주년을 기념해 7월 7일까지 특별전 「통찰」을 연다.

이번 특별전은 개관 이래 처음으로 김종영 작가의 회화, 조각, 데생, 서예 작품들을 모은 전관 전시다. 또한 단순히 조각가로서의 그의 성과물을 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우성의 작품 세계 저변에 자리 잡고 있는 철학적 기반을 포괄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김종영 조각가는 성실한 작품 활동과 교육 활동으로 광복 이후 추상 조각 미술계에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또 국내 조각가로는 처음으로 해외 공모전에서 입상해 한국 조각을 해외에 알리기도 했다.

조각 양식에 있어선 서구의 것을 따르고 있지만 예술적 배경으로는 동양의 사상에 뿌리를 둔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번에 전시되고 있는 서예, 데생,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조각 등은 일관되게 ̒志在不朽(지재불후)’와 ̒不刻(불각)의 美(미)’라는 그의 예술관을 드러낸다. 강고한 글씨로 써내려간 ̒志在不朽̓와 ̒不刻齋̓라는 서예 작품은 가장 직접적으로 그의 예술 철학을 보여준다. ̒지재불후’는 ‘썩지 않는데 뜻을 둔다’는 풀이로 명리(名利)에 급급하지 말라는 의미다. 그러나 김종영의 예술관에 있어 그것은 단순히 속세와 탈속세의 구분을 뜻하지만은 않는다. 그보다 이 말엔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해선 영원을 담아낼 수 없기에 추상화와 상징화를 통해 본질적 생명을 포착해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의 저서 『초월과 창조를 향하여』에서 “실재에 관한 모든 것은, 그것을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해서는 추상화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 위에 있다.

 

사진 제공: 김종영미술관

「작품 76-13」과 이를 위한 그의 데생(사진 ①)들은 그가 대상에 내재한 생명력을 표현해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보여준다. 그는 반복적인 데생들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것인가 고민한다. 그에게 있어 데생은 단순한 구상이 아니라 작품의 의미를 만들어가기 위한 실천적인 과정이었다. 그런 노력의 결과 「작품 76-13」(사진 ②)은 드로잉의 화사한 분위기와 풍부한 머릿결을 사상하는 대신 추상화된 몇개의 원으로만 여인성을 표현해내고 있다. 그는 이처럼 대상과 동떨어진 순수 추상을 추구하기보다는 인물, 산, 잎 등을 추상화해 본래적 미를 표현해내는데 천착했다.

̒지재불후̓가 그의 예술적 지향을 담아냈다면, ̒불각̓은 방법론이면서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예술적 목표다. 그는 가급적 대상에 억지스러운 변형을 삼가고자 했으며 대상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절제된 조각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가 쓴 『도덕경』의 글귀들은 ̒불각̓의 철학적 배경을 부연 설명한다. 한 듯 하지 않은 듯, 자연의 순리에 따라 알맞은 행위만을 해야 한다는 노자의 무위(無爲) 사상이 곧 그가 지향한 조각에서는 ̒불각̓의 의미와 상통하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 김종영미술관

 

김종영의 「작품 71-5 자각상」(사진 ③)에선 그가 실천해 온 ̒불각̓의 정신이 오롯이 드러난다. 그는 최소한의 개입만으로 작품의 의미를 살려내고자 한다. 불필요한 조각을 더하는 대신 나무의 결을 살려 연륜 있는 얼굴을 표현해내고 간략한 눈과 입만으로 관조적인 시선과 고민에 찬 얼굴을 그려낸다. 더 후기의 작품인 「작품 80-5」(사진 ④)에서는 더욱 절제된 개입이 이뤄지고 있다. 언뜻 거친 결이 그대로 드러나는 얼굴 위에 코를 표상하는 목편만이 덩그렇게 얹힌 모습으로만 보인다. 그러나 그려지지 않은 눈은 세상을 뚜렷이 응시하며 굳게 닫힌 입술에서는 인간적 고뇌가 배어나온다. 허공을 향한 덤덤한 눈빛은 오히려 쓸쓸한 느낌을 더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그는 최소한의 손길을 통해 얻은 단순성을 소중하게 여겼다.

이번 전시전은 어떤 의미에서 친절하지만 더없이 까다로운 전시일 수도 있다. 단순히 작가의 조각 작품 차원에서 김종영을 이해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작가 의식의 철학적 배경부터 발현 과정까지를 오롯이 전시 안에 녹여냈기 때문이다. 전시는 그의 예술관을 제시하고 개별 작품 차원에서 그것들이 어떻게 구현돼 나가는가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국 추상 조각의 선구자의 깊이 있는 작품 세계를 엿보고자 한다면 이번 특별전 관람이 제격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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