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관악의 능선을 타고
봄은 관악의 능선을 타고
  • 김혜인 기자
  • 승인 2013.05.05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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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캠퍼스 내 식물

겨울이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캠퍼스에 봄이 성큼 다가왔다. 대로변 은행나무의 앙상했던 가지에 연녹색 이파리가 솟아오르고, 꽁꽁 얼었던 자하연엔 벚꽃 잎이 떠올랐다. 날씨가 풀리면서 겨우내 조용했던 버들골에도 소풍을 나온 유치원생과 햇볕을 쬐며 수다를 떠는 학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라는 말도 있듯이, 나무와 꽃도 약간의 배경지식을 갖추고 살펴보면 그 아름다움을 배로 느낄 수 있다. 봄을 맞아 캠퍼스 곳곳에 자라나는 나무와 꽃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보자.

◇새순이 움트는 나무들=버드나무가 많은 사범대학 뒤의 잔디밭 ‘버들골’, 감나무가 있는 규장각 옆 ‘감골’처럼 관악캠퍼스는 나무와 떼어서 생각하기 어렵다. 캠퍼스 내에는 느티나무, 회양목, 칠엽수 등 약 100여종의 수목이 식재돼 있다. 또한 튤립나무, 팽나무, 수수꽃다리 등 주변에서는 보기 힘든 나무들도 많다. (『대학신문』 2005년 09월 05일자)

이렇게 많은 나무들 중에 우리와 가장 친숙한 나무는 당연히 교목 ‘느티나무’다. 중앙도서관에서 자하연에 이르는 구역에만 53그루가 심어져 있을 정도로 느티나무는 캠퍼스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다. 윤여창 교수(산림환경학부)는 “수명이 천년에 달하는 느티나무는 가지와 잎이 무성해 큰 그늘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의 쉼터 역할을 했고 성황당 나무로 모셔지기도 했다”며 느티나무의 강한 생명력과 포용력에 대해 말했다. 1983년 느티나무는 숭고한 학문의 정신을 존중하며 세상을 널리 포용해 나간다는 뜻에서 교목으로 지정되었다. 그 이후 느티나무는 학교 구성원들에게 사랑받으며 개교 60주년 등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교내 곳곳에 기념식수로 심어졌다. 1978년에는 캠퍼스 진입로에 3백살이 넘은 느티나무가 수명을 다해 베어져 학생들이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대학신문』 1978년 10월 09일자) 이 나무는 나중에 미대 조소과에서 실습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또 캠퍼스에서 주목할 만한 나무로는 ‘마로니에’로 더 알려진 서양 칠엽수를 꼽을 수 있다. ‘칠엽수’라는 이름 그대로 잎이 7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로니에 나무는 서울대학교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하기 전 동숭동 캠퍼스 문리과대학 교정에 있었기 때문에 70년대 동숭동 캠퍼스 시절의 ‘추억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마로니에의 시작은 경성제국대학 당시 불문학 강사였던 한 프랑스 신부가 휴가로 고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옛 캠퍼스에 묘목 몇 그루를 심은 것이었다. 1928년 동숭동 캠퍼스 터는 한국을 통틀어 단 두 그루의 마로니에 나무에서 시작해 지금은 ‘젊음의 상징’인 마로니에 공원으로 바뀌었다. 다만 관악캠퍼스에 서식하는 칠엽수와 마로니에 나무인 서양칠엽수는 차이가 있다. 윤교수는 “서양칠엽수는 열매에 가시가 돋아 있는 반면에 동양의 칠엽수는 열매가 호두알처럼 동글동글하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캠퍼스엔 다양한 나무들이 자라나고 있다. 벚나무는 얼마 전까지 흐드러지게 연분홍 꽃을 피웠다. 현재 관악 캠퍼스에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왕벚나무는 이미 꽃이 졌지만, 그렇다고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비슷한 종의 ‘겹벚나무’가 한창 만개했기 때문이다. 일반 벚꽃의 잎이 5개인 것과 달리 겹벚나무는 수십장으로 겹친 꽃잎이 갈수록 짙게 물들어 ‘절세미인’이라는 꽃말에 걸맞은 자태를 자랑한다. 김기선 교수(식물생산과학부)는 “벚나무는 짧은 기간 개화했다가 지는 게 보통인데 우리 캠퍼스는 수직 고도가 높다보니 교문에서 시작하여 공대까지 2주가량 차례차례 꽃을 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사진: 심수진 기자 jin08061992@snu.kr, 삽화: 강동석 기자 tbag@snu.kr

◇캠퍼스를 뒤덮은 봄꽃들=2월초에 피는 풍년화에서 시작하여 산수유, 참나리, 매발톱, 할미꽃까지 캠퍼스에는 크고 작은 꽃들이 살고 있다. 또한 이 중 우리가 ‘봄’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꽃은 ‘진달래’일 것이다. ‘사랑의 기쁨’이라는 꽃말처럼 만발한 진달래를 보면 캠퍼스 곳곳에 분홍색 물감을 뿌려놓은 듯하다. 하지만 학교 안에는 꽃 모양만 보고는 진달래와 구별하기 어려운 산철쭉, 영산화가 자라고 있다. 꽃이 지고 잎이 나는 진달래와 달리 산철쭉은 꽃이 먼저 피고 그 사이로 뾰족한 잎들도 고개를 같이 내민다. 또 진달래 꽃잎은 약간 단 맛이 나서 예부터 알록달록한 화전으로 부쳐 먹기도 했지만 산철쭉은 독성이 있어 ‘개꽃’이라고 불렸다. 앞의 두 꽃이 분홍빛이라면, 영산화는 색깔이 붉은색, 흰색 등으로 다양하고 일본이 원산지라 ‘왜철쭉’이라고도 불린다.

또 한창 만개한 꽃으로는 캠퍼스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수수꽃다리’가 있다. 수수꽃다리의 이름은 연보라색 꽃잎이 뭉쳐 피어나는 모습이 수수이삭과 옛 여인들이 쓰던 가발을 뜻하는 ‘다리’처럼 풍성하다고 하여 붙여졌다. 멕시코 노래 ‘베사메무쵸’에 등장하는 ‘리라꽃’이나 ‘라일락’이 수수꽃다리의 외래종이다. 본부 버스정류장 화단에 가면 ‘미스김라일락’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수수꽃다리속(屬) 꽃을찾을 수 있다. 1947년에 미국 군정청 소속 식물 채집가 엘윈 M. 미더가 도봉산에서 자라고 있던 수수꽃다리의 종자를 미국으로 가져갔고, 당시 식물자료 정리를 도왔던 한국인의 성을 따서 ‘미스김라일락’이라는 품종을 만들었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기증비석에 미스김라일락 100그루를 기증한 사람이 ‘서울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밖에도 토양의 산성화 정도에 따라서 색깔이 붉은색에서 푸른색까지 바뀌는 수국, 투구꽃, 작약 등 다양한 꽃들이 캠퍼스에 자리 잡고 있다.

◇더 특별하게 봄 즐기기=캠퍼스에 자라나는 꽃과 나무의 종류만큼 그들을 즐기는 방법도 다양하다. 먼저 과제나 시험 때문에 지쳐 있을 때는 중도 앞 계단의 계수나무를 찾아보자. 김교수는 “달토끼가 그 밑에서 방아를 찧는다는 동요 때문에 계수나무를 상상 속의 나무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나무다”고 말했다. 가을이 되면 붉게 물드는 계수나무의 이파리는 하트 모양이며 은은하게 달콤한 향기를 풍기니 그늘 밑에서 기분을 전환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한편 두뇌를 상쾌하게 하고 싶다면 잣나무숲을 찾아보자. 스트레스 해소와 아토피질환 예방에 효과가 있는 피톤치드를 많이 분비해 도움이 될 것이다. 학술림의 권순걸 직원은 “공대 폭포와 자동차신기술연구센터 사이에 잔디밭, 정문 오른편에 잣나무가 많이 조성되어 있다”고 전했다.

다양한 식물을 관찰하고 싶다면 자하연부터 기숙사 삼거리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추천한다. 자하연엔 얼마 전 오래된 연못물을 빼고 창포, 수련 등 수생식물과 바위틈에는 노루오줌, 돌단풍 등을 심어 자생식물원을 조성해 놓았다. 자하연 카페를 지나 오솔길을 걷다 보면 노란 국화를 축소시켜 놓은 듯한 황매화와 참외처럼 노란 바탕에 흰 줄이 있는 병아리꽃, 현호색, 꽃잔디 등 앙증맞은 꽃들을 살펴볼 수 있다.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인문대 5동 앞에 오동나무도 만날 수 있다.

식물의 이름이 붙여진 유래를 알아보는 것도 좋은 감상법이다. 우리 학교엔 매발톱, 꽃범의꼬리 등 특이한 이름을 가진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작고 흰 꽃이 조로 지은 밥풀을 닮았다는 조팝나무, 나무꾼들이 짚신 바닥이 해지면 넓은 잎을 짚신바닥에 깔아 사용한 신갈나무 등 이름이 재미난 나무들이 많다. 배롱나무는 꽃이 백일 동안 핀다는 뜻인데, 실제로는 작은 꽃들이 7월에서 9월까지 차례로 피고 지어 오랫동안 꽃이 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나무와 꽃의 이름과 간략한 특징이 적힌 팻말을 살펴본다면 무심코 지나쳐왔던 식물들 하나하나가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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