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 사회 구성원 간
공통된 근거 속 합의의 과정이 필요
차별금지법에 대한 담론도
합의 가능한 근거에서 논의돼야

권 민 사회부장
우연성과 다원성의 결합체인 민주사회가 유지되고 굴러갈 수 있는 기반은 각기 다른 개인이나 집단의 공통된 합의의 산물로 이뤄진다. 이를테면 그 나라의 법이나 제도, 관습 같은 것들이 구성원의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이 저마다 우선시하는 가치관이 모두 다른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특정 사안에 대해 합의에 도달해 같은 가치를 지향해갈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은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조건으로 특정한 신념이나 가치관에서 벗어나 보편적으로 수용 가능한 근거 내에서 의견을 제시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각각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합의된 질서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신념을 초월한 ‘공유된 근거’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의 합의가 형성될 때 그 사회는 협력과 발전 가능성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현재 한국의 상황은 합의를 위한 의논이라는 것이 통하지 않을 만큼의 극단적인 갈등과 분열을 겪고 있음이 분명한 것 같다. 민주통합당 김한길 의원 등 70여명의 국회의원이 발의했지만 무산된 차별금지법 얘기다. 차별금지법은 대한민국 헌법상 인간의 평등을 보장한다는 이념에 따라 성별, 나이, 학력, 성적 지향, 사상, 가족 형태 등을 이유로 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고자 하는 법이다. 그런데 이 차별금지법의 입법 시도는 올해만 우리나라에서 2006년과 2010년에 이어 세 번째로 무산됐다. 무산된 데는 주로 성적 지향 등 특정 조항에 대한 보수·기독교 단체의 극심한 반발이 컸는데, 사실 정과 교가 분리됐다는 나라에서 특정 종교의 입김으로 국회의 소수자 보호 원칙을 세우는 입법 시도가 무산됐다는 것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지만 차별금지법 입법에 반대하는 이들의 논리를 찬찬히 살펴보면 더 그러한 것 같다. 차별금지법 반대자들의 주장은 차별금지법 내 수많은 조항 중에서도 주로 성적 지향에 대한 반대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일부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한 반대파들은 핵심적 주장으로 “동성애를 합법화하면 이것이 널리 퍼지게 돼 사회의 근간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말하며 그 근거를 성경에서 찾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동성애를 죄악으로 취급했으므로 동성애를 용인하는 모든 관념과 제도 역시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라는 것이다. 특정 신념을 공유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다. 게다가 이것이 또 한국 특유의 ‘종북 좌파’ 논란과 묘하게 얽히면서 특정 조항에선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한 어떤 종류의 움직임도 비난 또는 의도적 무관심의 대상이 됐다. 모든 종류의 ‘차별 철폐’와 인권에 관한 자유로운 담론의 가능성과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돼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더 나아가 차별금지법 조항 중 사상이나 정치적 지향과 같은 문제와도 민감하게 얽혀있다.

차별에 대한 논의와 이에 대한 공유된 가치를 갖는 과정은, 자유민주주의를 핵심 근간으로 삼고 인간의 자유, 평등을 주요 이념으로 규정한 우리나라에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누구든 존중받아야 하며 차별이 있을 경우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데 대한 우리사회의 공통된 합의가 벌써 몇 년째 어떤 식으로든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누구든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언제쯤 우리 사회에서 인권이라는 이 담론이 더 이상 무조건적인 극단적 갈등으로 표출되지 않고 하나의 합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날이 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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