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간 노동, 잦은 인권침해 등 열악한 노동 환경… 간접고용으로 책임 소재는 불분명

셔틀버스도 채 다니기 전인 이른 새벽 6시 반, 서울대 구석구석은 벌써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제 하루 동안 학생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을 깨끗하게 치우는 청소부 아주머니들 때문이다. 이들은 학교 비정규직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노동조건에 놓인 채 일하고 있지만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다. 『대학신문』은 123주년 노동절을 맞아 청소노동자들의 일과를 동행해 보고 그 실태를 취재했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어”=25동 청소를 맡으시는 박씨 아주머니(59)는 매일 학생들이 등교하기 전 이른 새벽부터 청소를 시작한다. 어제 하루 동안의 활동을 증명이라도 하듯 건물 곳곳이 지저분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쓰레기통에는 쓰레기가 넘쳐 수북하게 산을 이뤄놓고 있었으며 주위에 나뒹구는 도시락, 치킨박스 등에선 남은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진동했다. 박씨 아주머니는 먼저 고무장갑을 끼고 쓰레기통을 하나하나 뒤져가며 분리수거를 다시 했다. 쓰레기통 옆에 너저분하게 놓여있던 음식물 또한 한곳에 모은 후 포장들은 다시 분리수거를 해야 했다. 새벽에 입고나온 앞치마는 이것저것 묻어 이미 더러워진 지 오래다. 박씨 아주머니는 가장 힘든 청소 업무 중에서 쓰레기통 청소를 꼽는다. “쌓여있는 쓰레기들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며 “학생들이 분리수거만 좀 잘 해줘도 일이 한결 쉬워질 것 같은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쓰레기통 청소를 마친 아주머니는 쉴새 없이 다음 구역으로 이동한다. 강의실로 가보니 여기저기 책상에 버려진 커피 잔들과 바닥에 떨어진 과자 포장지들이 눈에 띄었다. 과방 역시 쓰레기는 물론이고 먹다 남은 음식까지도 그대로 방치돼 있어 지저분했다. 강의실, 과방, 화장실에도 치워야 할 것들은 끝없이 쏟아졌다. 매일매일 우리가 모르는 사이 청소부 아주머니들은 쓰레기들과 끝나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삽화: 강동석 기자 tbag@snu.kr

◇대학 용역 모두에게 외면 받는 청소노동자들=고강도의 노동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근로조건은 상당히 열악하다. 박씨 아주머니는 “시급 약 4900원의 최저임금에 가까운 연봉을 받고 일한다”며 낮은 임금 수준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또한 아주머니는 “매년 3월마다 돌아오는 새로운 용업 업체 계약 때마다 혹시라도 재계약이 안 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생긴다”고 걱정했다. 실제로 작년 총학생회 산하기구와 관악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발표한「서울대 청소·경비노동자 인권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노동자들은 월 평균 115만원의 저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식사비, 휴식시간 및 장소도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됐다.

이러한 비정규직 노동자이 받는 열악한 처우는 비단 서울대의 일만은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작년 발표한 「청소용역노동자의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주당 총 노동시간은 40.89시간이며 하루 평균 9.2시간 노동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청소업이라는 고된 직종의 특성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또한 근로기준법 위반사항인 토요 근무도 평균 1.9시간인 것으로 드러났다. 정해진 청소 업무 이외의 업무를 지시받은 노동자가 전체의 58%나 됐고 폭언·폭행, 시설이용자의 멸시·조롱은 각각 22.5%, 21.5%에 달했다. 한편 2011년 용역업체가 바뀌며 140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집단해고당한 적이 있는 홍익대의 경우 현재는 노조가 설립돼 그나마 안정적인 승계가 가능해졌지만 노동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며 휴게실도 계단 밑, 기계실에 마련되는 상황이다. 이에 서강대를 비롯한 연세대와 이화여대 등 여러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향상을 위한 시위와 파업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대학이 청소노동자를 간접고용하는 형태에서 발생한다. 대학은 입찰을 통해 매년 새로운 청소 용역 업체를 선정하고 해당 용역 업체들은 기존에 있던 청소노동자들을 승계받는 간접고용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형태는 고용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사업주 간의 계약으로 맺어지기 때문에 대학은 용역업체 소속의 청소노동자에게 근로감독·지시를 내릴 수 없다. 그러나 청소업이라는 특성상 대학이 실질적으로 지시를 내리고 청소노동자들을 관리 감독하고 있음에도, 법적으로는 청소노동자에 대한 의무를 전혀 지지 않아도 돼 대학이 권리를 누리면서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소 홍민기 연구원은 “근본적으로 용역을 통해 계약을 한 상황에서는 대학당국이 근로조건에 대해 신경 쓸 의무가 없다”며 “그렇다면 동시에 법적으로 근로자들을 지시, 감독하면 안 되지만 현실적으로 지시, 감독을 안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부조리한 구조를 지적했다.

◇최소한의 권리를 위해서=대학내 청소노동자 문제가 여론으로 확산되며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자 대학들은 자체적인 방안을 내놓고 있다. 올해 입찰부터 서울대는 학내 청소·경비노동자의 노동권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용역업체에 근로조건이행확약서를 작성토록 권고했다. 비록 권고수준에서 끝났지만 휴식시간 등 최소한의 노동조건을 보장키 위한 대학과 용역업체 간의 약속이 마련되면서 부당해고나 성폭력 등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연세대는 청소노동자들의 고용 승계를 보장키로 했다. 대학이 용역을 변경하더라도 청소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걱정은 덜게 된 것이다. 한편 서울시립대는 서울시가 시행한 ‘2차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의 일환으로 이번 3월부터 청소노동자들을 직접고용형태로 전환했다.

하지만 청소노동자들은 실질적으로 근로감독을 하는 원청인 대학의 보다 책임있는 자세를 기대하고 있다. 권고 수준의 소극적 대처에서 벗어나 청소노동자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익대 공공노조 김윤수 처장은 “대학의 간접고용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결국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으며 홍민기 연구원 역시 “말만 사업자간 계약일뿐 실질적으로 고용관계에 놓인 이들에게 대학은 원칙적으로 직접고용을 해야한다”며 “현실여건상 어렵다면 적어도 고용조건을 향상시키려는 의무를 져야 한다”고 말했다.

모두가 보기 싫어하는 학교의 어두운 부분을 매일 깨끗하게 치우는 청소노동자들은 오늘도 우리가 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흔적들을 치우고 있다. 궂은일은 도맡아 하면서도 최소한의 근로조건도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대학을 비롯한 우리사회는 너무 냉담했던 것은 아닐까. 대학들이 청소노동자들의 근로 환경을 개선시키려는 행동을 취하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청소노동자들이 보다 나은 근로 환경에서 일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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