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책] 『침묵의 공장』

침묵의 공장

강명관 저/천년의상상/
132쪽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한 강연장에서 “창의적 제품은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서 탄생한다”고 말한 바 있다. 또 삼성은 올해부터 ‘삼성 컨버전스 소프트웨어 아카데미(SCSA)’ 입사 전형 도입을 통해 인문학 전공자 채용을 늘리고 그들에게 이공계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기업들이 새로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인문학적 발상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듣던 “인문학을 하면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이 조만간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침묵의 공장』의 저자 강명관 교수(부산대 한문학과)는 “인문학이 기업의 이윤 창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며 부정적인 시각을 던지고 있다. 그는 “인문학은 자본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비판정신을 견지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인문학이 자본에 종속된 상태가 바로 인문학의 위기”라고 말한다. 나아가 저자는 대학을 인문학의 위기를 심화하는 주범으로 지목한다. 그에 따르면 현재 대학은 연구비 확보를 최우선으로 하며 스스로 자본에 대한 종속을 심화하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연구비 수령액이 많을수록 대학의 평가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대학은 연구보다는 연구비 신청서를 더 중시하며 연구의 질적인 측면보다는 양적인 측면을 더 중시하게 됐다. 대학이 학문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대량으로 연구 결과만을 생산해내는 ‘침묵의 공장’이 된 것이다.

사실 르네상스 시대 이후로 인문학은 ‘인간의 정신을 고귀하고 완전하게 하는 학문’으로 정의돼왔다. 이 정의를 고려한다면 인간에게 내재된 특성을 탐구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인문학의 최우선 가치로 볼 수 있다. 결국 인문학의 최우선 가치가 배제된 채 인문학이 자본의 이윤 창출을 위해 이용되는 등 다른 목적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은 인문학의 가치와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저자의 말처럼 인문학은 자본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자본은 인간을 인간 그 자체로서 바라보기보다는 이윤 창출을 위한 수단으로서 파악할 뿐이다. 단적으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 좋아하는 취미활동으로 보내는 시간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이지만 부가가치의 총합으로 표현되는 GDP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자본은 이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으며 개인에게 이윤 창출을 위한 노동만을 강요한다. 결국 인간성에 대한 탐구를 본질로 하는 인문학은 인간성을 파괴하는 자본에 대해 비판정신을 견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삽화: 강동석 기자 tbag@snu.kr

이런 인식 하에 실제 대학 밖에서 인문학이 자본에 종속되는 것을 거부하고자 하는 시도를 찾을 수 있다. 대학의 울타리 밖에서 자발적으로 인문학을 탐구하는 ‘대안연구공동체’가 바로 그 사례중 하나다. 이들은 정부와 기업의 지원을 거부하며 구성원들의 회비를 통해서만 운영됨으로써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유지할 수 있다(『대학신문』 2012년 4월 16일자). 이 단체들의 구성원들은 이윤의 목적이 아닌 순수하게 삶 속에서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이다. 자발적 학습공동체를 찾는 이들의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맞춰 개설 강좌의 수도 증가하는 추세다. 더불어 이 단체들은 주기적으로 자신들의 연구 성과를 단행본으로 발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문학이 자본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인문학자 스스로가 연구비를 거부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이 과연 현실에 적용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의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2012년 시간강사의 평균 연봉은 약 604만원에 불과하다(「교수신문」 2013년 1월 2일자). 이는 대학에 자리 잡지 못한 대다수의 인문학자들이 기본적인 생계조차 유지하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하는 통계 수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연구 지원비 없이 오직 인문학에 대한 사명감으로만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결국 인문학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자본과의 현실적 여건을 고려한 타협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침묵의 공장』에서 저자의 주장은 다소 비현실적이며 급진적인 면이 있지만 독자에게 인문학과 자본의 관계에 대한 고민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인문학의 최우선 가치는 인간만이 지니는 고유한 특성을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기에 자본과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한다면 인문학이 자본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이 책을 시발점으로 인문학이 지녀야 할 비판정신과 인문학이 처한 현실적인 여건을 모두 고려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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