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간 연대의 자리였던 장터
술과 유흥만이 남았다는 지적 있어
그럼에도 학교의 제재는 부적절
학생들도 장터의 의미 고민해봐야

강윤희 취재부장
“임아무개 등 학생 100여명이 장터를 개설해 파전과 순대, 굴, 떡을 판매했다.”

‘문제 학생’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해 강제입영도 불사했던 80년대, 당대 정권 하에서 어쩌면 대학은 충실한 협력자였다. 모 대학 학생처는 ‘문제 학생’인 임아무개의 동태를 문교부에 일일이 보고했다. 장터 메뉴까지 보고해야 하는 시절이 있었나 싶지만 당시 장터는 학생들의 ‘사사로운’ 일거수일투족이 아니었다.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장터는 그 목표방향이 뚜렷한 편으로 주로 사회적 연대를 돈독히 하는 장을 제공했다. 학생들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외부 단체와 협력해 장터를 개최했고 이들은 자보와 유인물 등으로 홍보하는 동시에 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해나갔다. 장터를 찾는 손님들에게도 술 한잔과 안주 한 접시로 연대에 동참한다는 진지함이 묻어났다.

바야흐로 장터의 계절인 5월. 옹송그린 채 겨울을 보냈던 학생들이 해방터를 비롯한 캠퍼스 곳곳의 장터로 쏟아져 나왔다. 급변하는 캠퍼스 안에서 장터는 대학문화의 한 주축으로 그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요즈음 장터는 80년대 장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대다수가 사회적인 목적 등 고유의 의미를 잃어버렸고 남은 자리는 유흥, 그것도 술로 채워졌다. 술을 마시는 개인의 자유에 손가락질 할 순 없지만 손가락질 받고 있는 문제들은 과해도 ‘너무’ 과하다. 수업 중 구토를 하는 학생들, 강의가 불가능할 정도로 과한 소음, 심지어 풍문으로는 술에 취한 학생 한명이 중앙도서관에서 쓰러져 응급차에 실려나간 경우도 있다고 하니 지금의 부작용들이 단순한 해프닝은 아니다.

학교가 보기에도 학생들의 술주정이 과했나 보다. 인문대에서는 장터 기간 제한을 검토하고 있고 본부에서도 이같은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여느 사안이라면 “대학가면 뭐든 할 수 있다”고 고등학교에서조차 인정한 대학생들의 자율성을 감히 침해하려 든다며 발끈했을 테지만 학생여론의 온도는 예상과 다르다. 반발 대신 강의실까지 들려오는 누군가의 주정에 대한 반성이 자리한 것이다.

그럼에도 학교의 제재는 안타깝기만 하다.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대학문화의 축소가 우려된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기간을 제한해버리는 학교의 손쉬운 발상이 어쩌면 학생들에게 주어진 자율성의 자정작용에 더 이상 기대를 걸 수 없는 현실을 말해주는 것 같아서다. 장터를 마음껏 열 수 있는 자유뿐 아니라 대학생이기에 주어졌던 수많은 자유들은 이성적으로 납득 가능한 범위에서 권리를 행사하리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그 바탕에서 대학문화는 꽃폈다. 수많은 학생 자치활동은 자율성에서 우러나온 실천적인 행동들이었고 굳이 강요하지 않아도 대학생들의 자율성은 사회적 진보와 유사한 목표지점을 향하리라 기대됐다.

이제 학생들의 자율성은 제재가 없이는 방종이 돼버리는 것들 중 하나에 불과해진 것일까. 아니라고 단언하고 싶은 이유는 소수지만 옛 장터의 의미를 오늘날에 되새기려는 장터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박하게 막걸리 잔을 주고받으며 최소선을 지키려는 학생들이 ‘다수’기 때문이다. 교내 한 동아리는 베이킹 장터를 통해 모은 수익금을 캄보디아 구호 활동을 위해 기부할 예정이고, 다른 동아리도 ‘아름다운 가게’와 함께하는 공정무역 장터를 열어 수익금을 기부할 계획이라고 한다. 술과 유흥만이 목적이 된 줄 알았던 장터의 이면이다.

봄축제가 열릴 이번 주 어김없이 곳곳에서는 장터와 술판이 한창일 예정이다. 축제 기분에 젖은 상태에서 마시는 막걸리의 맛을 알기에 정부의 ‘금주법’과 같은 술에 대한 강제에 찬성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번만은 장터 제재라는 방안이 구체화되기 이전에 볼멘소리를 잠식시켜줄, 옛 장터의 의미가 고작 술주정으로 채워졌다는 오명을 피하기 위한 ‘장터인’들의 책임있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