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 박사과정
(협동과정 서양고전학)
금요일 밤 11시, 행정관 앞에 조금씩 학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고 있다. 10분 뒤에 출발하는 마지막 야간 통학 버스를 기다리는 이들이다. 행선지는 인근 지하철역과, 흔히 고시촌으로 일컬어지는 대학동 쪽이다. 긴 줄이 이어지고, 정해진 출발 시간에 버스 안은 오늘도 만원이다. 친분은 없지만 낯익은 얼굴들도 눈에 띄고, 아는 이를 가끔씩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는 지금처럼, 이름은 모르지만 거의 매일 마주치게 되는 이들이다. 대체로 지쳐보이기는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여전히 젊다.

중앙도서관 열람실 운영 종료를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온 후에도, 24시간 개방 열람실에는 여전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이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꼬박 밤을 지새는 이들도 있을 테고, 또 어떤 이들은 못 다한 공부가 끝나면 새벽녘에 귀가하기도 할 것이다. 이 역시도, 거의 매일 반복되는 풍경이다. 물론 도서관뿐만이 아니라 여전히 불야성인 곳곳의 건물과 창문들이 긴 밤을 밝히고 있다. 목소리가 없는 밤은 적막하다. 도서관 열람실이나 연구실, 실험실에는 그 목소리 없는 시간을 지키고 있는 이들이 있다. 떠들썩했던 낮의 이면에서,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 수업이나 정기 시험을 앞둔 학부생과 대학원생, 이들 저마다가 그 침묵을 공유하며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가 여전히 젊다. 청춘을 지닌 이들이 어둠 속에서 학교를 밝히고 있다.

소설가 박상륭의 단편 가운데 한 구절이 떠오른다. 정확한 구절은 기억나지 않지만, ̒앓음다운̓ 삶이라는 표현이 여운을 많이 남겼었다. 금요일 밤 막차를 기다리는, 긴 하루에 지쳐 조금은 초췌해 보이는 이들의 젊음에게서도 그 ̒앓음다움̓을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소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그들 나름대로의 존재미학을 택해 살아내고 있는, 이름 모를 젊은 벗들에게서 말이다. 오래전, 격정적이며 치열하게 젊은 ‘날’을 묻고, 또한 젊은 ‘나’를 물었던 선배들이 있었다. 세상은 그 시절보다 한결 평화로워졌다. 오늘의 젊음들은 표면적으로는 한결 잔잔해진 사회현실 위에서 각자 나름의 삶과 젊음을 앓고 또한 누리고 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일부는 여전히, 금요일 밤 학교에 남아 있다.

라디오 헤드(Radio Head)의 <Creep>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80년대 초에 태어난 소위 ‘어중간한’ 우리 세대를 상징한다고들 한다. 함께 듣고 읽었던 친구들은 학교를 떠난 지 오래인 듯하다. 그 시절 벗들의 금요일은 이곳과 사뭇 다를 것이다. 그렇게 30대 중반, 오래전 어느 시인이 “한뉘 나그넷길 반고비”라 노래했던 나이가 가까워졌다. 배움도 얕고 재주도 없는 이가 책상물림 노릇을 오래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열람실 한 켠에 앉아 모처럼 감상에 젖어 써내려 가다 보니 어느새 안내방송이 나오는 참이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긴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옛말을 귀동냥했던 것을 위안 삼으며 11시 10분 마지막 버스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민주화 운동 열사 추모비에 누군가 헌화해둔 꽃이 옅은 밤안개 너머로 눈에 띈다. 아름다웠던 젊은 선배들이 유산으로 남겨준 그 계절을 걷고 있다. 그래, 올해도 어김없이 5월이다. 대학동 행 버스 안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젊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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