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사는 세상] 논객 한윤형씨

우리 시대의 청년들은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20대는 조용하다” 또는 “20대는 무관심하다”는 비판, 심지어 ‘20대 개XX론’과 같은 도발이 제기돼도 이들은 여전히 “침묵은 금”이라는 격언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모양이다. 이러한 침묵 가운데 청년 논객이라는 존재는 유난히 특별하다. 사회를 재단하고 비판하는 논객답게 굵직한 이슈들을 제기하고 사람들의 통념에 균열을 가하는 동시에 세대에 맞는 차별화된 문제의식과 톡톡 튀는 재기를 더한다.


『대학신문』은 지난 9일(목) 각종 언론사와 논객들이 밀집돼 있는 서대문역 근처에서 오늘날 청년 논객의 대표격인 「미디어스」 한윤형 기자를 만났다. 집요하고 성실한 분석과 날카로운 관찰력이 담긴 글에서 비춰진 딱딱한 이미지와 달리 그는 친근한 인상이었다. 마치 학생처럼 빨간 백팩을 메고 온 그와 근처의 한 카페에 들어가 앉았다.

사진: 심수진 기자 jin08061992@snu.klr

정치를 논하는 글쟁이가 되기까지


“한마디로 우연의 연속이었어요. 글쓰기 자체에 로망을 가졌다기보다는 지지하는 정치 세력에 대한 글을 몰입해 쓰다보니 이 길에 빠져든 거죠.” 한윤형이 사회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우연히 접한 진중권의 책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강준만의 『인물과 사상』 등을 통해 사회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때 강준만을 중심으로 일어난 「조선일보」 반대 운동인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해 안티조선 커뮤니티의 온라인 게시판에 몇 편의 글을 쓰기도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일보」가 개최한 제1회 전국고교생 논리논술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수상 인터뷰를 하러 온 기자에게 안티조선 운동의 참여자임을 밝히며 상을 거부해 안티조선 운동의 스타가 됐다.
“2001년에 대학생이 된 후에도 안티조선 운동을 계속했고 그해 말 민주노동당에 입당해 당원이 됐어요.” 당시 당원 활동을 하면서 운영했던 블로그 활동을 통해 진보 논객으로 유명세를 타다 군대를 갔다 온 후 여러 잡지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특히 2008년 촛불시위 이후 20대 논객으로 알려지면서 약간 부담스러울 정도로 주목을 받았어요.” 그 이후에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활발한 집필활동을 해왔다. 「한국일보」, 「한겨레」, 「한겨레21」, 「경향신문」, 「주간경향」, 「시사IN」,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등에 다양한 칼럼을 연재했고 현재는 매체 비평 웹진 「미디어스」에서 정치부 기자로 일하며 집필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가 다뤄온 주제들은 실로 광범위하다. “한마디로 여러 가지에 대해 ‘잡글’ 쓰는 사람인 것 같아요, 저도 제 자신을 잘 규정하기 힘드니까요.” 안티조선 운동의 역사나 뉴라이트 역사관, 안철수 현상, 2008년의 광우병 사태와 촛불시위 등은 그가 다루는 수많은 주제 중 극히 일부다. 하지만 그가 아무 주제나 관계 없이 ‘잡글’을 쓴 것은 결코 아니었다. “주제들은 다양했지만 이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한국 사회에 대해 토론을 하면 나올 수밖에 없는 뜨거운 논란거리죠. 그리고 이 주제들을 관통하는 공통된 관심사는 ‘한국 정치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의 문제였어요.” 한국 정치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라는 주제에서 언론, 역사, 정치 등 여러 주제들이 파생됐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자기 글의 장점은 무엇일까. “기존에 있던 통념들 뒤에 나만의 생각들을 덧붙이면서 다른 생각들을 조금씩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면에서 ‘잡글’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죠.” 이처럼 그는 스스로를 ‘잡글 쓰는 사람’으로 명명하지만 진보 진영에서 그의 무게감은 상당하다. 촛불시위 이후 붙여졌던 ̒20대 대표 필진’이라는 타이틀을 넘어 이제 그는 청년 논객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대표적인 인물로 자리잡고 있다.

삽화: 선우훈 기자 mrdrug@snu.kr



그가 규정하는 88만원 세대

“청년 세대의 문제는 그들이 가장 힘든 세대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한국의 사회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표층이기에 문제가 된다.”(『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中)


한국 정치에 대한 그의 평론 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이 88만원 세대에 대한 그의 독특한 시각이다. 그의 신간『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88만원 세대를 ‘잉여’로 규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88만원 세대는 진취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는 ̒잉여로운̓ 세대, 시사평론가 김용민이 비판했듯 “대학생 때도 저항하지 못하는” 보수적인 세대, 영화 『맘마미아』에 나타난 청춘의 두근거리는 낭만을 즐기지 못하는 “닳디 닳은” 세대다. 이들은 부모 세대가 보기엔 한심하고 답답하기 그지없는 “야망도 없는”, 꿈도 희망도 없는 ‘루저’들이다.


“20대 문제가 청년 세대의 인성을 규탄하는 조류로 이어지는 것에 맞서고 싶은 욕구를 느꼈어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심화된 후기 자본주의 체제와 X세대, N세대, 386세대 등의 세대를 깊이있게 규정하면서 그가 내린 결론은 “청년 세대의 문제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청년 세대가 겪고 있는 문제는 88만원 세대의 아버지인 386세대가 놓인 시대적 상황으로부터 발생했다. 국가 성장과 더불어 부동산으로 부를 축적한 경험을 한 이들은 가지고 있는 자산을 기업이 아닌 부동산에 투자했고, 떨어진 기업 경쟁력은 노동 가격의 하락으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청년들이 스스로 벌며 살아갈 문이 점점 좁아지고 대부분 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세대’라는 결과물이 나타난 것이죠.”


88만원 세대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그들에겐 또 다른 특징이 있었다. “문화를 소비하면서 자라난 세대다 보니 우리 세대는 유난히 하고 싶은 것이나 꿈이 많았던 세대였어요.” 이 꿈과 열정은 청년 세대인 88만원 세대가 ‘열정 노동’을 통해 착취를 당하는 대표적인 집단이 되는 기반이 됐다. 2011년 최태섭·김정근 씨와 함께 집필한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는 프로게이머, 영화 연출직, 파티셰, 시민단체 활동가 등 본인의 ‘열정’을 기반으로 하는 직종들을 ‘열정 노동’으로 개념화한다. 열정 노동에 종사하는 열정 노동자들은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노동자가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꼼짝없이 노동력을 착취당한다. ‘열정’은 ‘노동’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에 따르는 권리도 없다는 논리다. “열정을 이유로 이들 직종에 뛰어드는 이들은 대부분 피가 끓는 열정을 가진 88만원 세대였고, 이들이 열정 노동의 대표적 희생자가 된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에요.”


"자본주의는 청춘들에게 ‘꿈’을 꾸라고 강요하고, 그 ‘꿈’을 실현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노동을 거의 공짜로 착취한다. 꿈은 자본주의가 청춘에 깔아 놓은 가장 잔인한 덫이다."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中)


그는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와 관련해 현 정부의 창조경제 담론을 비판하기도 했다. “창조경제 이념은 본래 2000년대 초반 산업 기반 사회에서 지식 기반 사회로 넘어가는 세계적인 흐름에서 김대중 정부가 제기한 이념이죠. 이 창조경제 이념은 창조에 대한 꿈을 가진 수많은 ‘열정 노동자’들을 낳았구요.” 그는 지금 이 시점 창조경제 담론이 다시 반복되는 것을 소리높여 비판한다. “일단 당시 창조경제가 창조에 대한 열정에 부풀어 열정 노동에 착취당하고 있는 수많은 88만원 세대들이라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을 잊으면 안돼요. 현재의 창조경제 역시 열정 노동의 착취가 더욱 심화되는 결과를 낳을 거에요.” 여기 그는 창조경제가 이 시점에 제기될 이유가 없다는 점도 덧붙였다. “지금 창조경제는 그 당시 일어난 세계적 변화와 같은 역사적 맥락이 없어요. 지금 우리 사회가 정보화 사회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창조경제가 지금 왜 필요한지 충분한 설명 없이 정치권은 뮤지션 싸이와 같은 창조적 힘이 필요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죠.”

삽화: 강동석 기자 tbag@snu.kr



청춘을 향한 청춘의 위로

한윤형은 진보 진영이 20대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표했다. “2000년대 초반에 진중권 등 진보 지식인들의 글이 출판시장에서 인기가 있었고, 이 글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들은 결국 당시의 대학 새내기 정도는 설득했을지 몰라도 더 광범위한 사고의 변화를 이루지는 못했다고 생각해요.” 당시 진보 진영 측에서는 한국의 사회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진보적인 유럽 국가들의 이미지만 제시했을 뿐 진보 담론을 한국의 맥락에서 실천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하지 못했는데, 이 점이 현재의 20대가 진보의 가능성을 느끼지 못하는 시초가 됐다는 논리다. 그는 20대라는 세대의 특수성에 맞는 새로운 진보 정치의 모델이 나타나지 않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는 “386세대와 달리 현재의 20대는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나 동질감 같은 것을 별달리 느끼지 않는 세대기 때문에 기존의 운동권 모델은 더 이상 20대에게 작동하지 못한다”며 “20대들이 사회 변화의 도구인 진보 정치라는 것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하는 총체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윤형씨는 88만원 세대가 그들이 마주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객관화가 우선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삶의 고통에 좌절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삶이 사회 속에서 어떤 위치를 갖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상황을 바라보는 데서 자신의 고통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될 거에요.”


그의 말대로 88만원 세대가 처한 고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어쩌면 연대의 가능성이 열리지 않을까? 오늘 청춘을 향한 한윤형의 냉정한 위로를 귀담아 들어 보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들이 서로에게서 ‘우리’를 발견하고 눈짓을 교환할 때 변화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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