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주민참여예산제도 살펴보니… 열정적 주민참여와 시의 적극적 의견 수용으로 풀뿌리 민주주의 확대

◇예산 편성의 주체에 선 주민들=주부 윤성희씨는 평소 대학생들의 해외 어학연수가 경제적 낭비라고 생각해왔다. 자신이 사는 성북구에 위치한 39개의 대사관들을 이용하면 국내에서도 충분히 외국어를 공부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윤씨는 작년 서울시가 주민들이 직접 예산 편성에 참여할 시민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인터넷으로 접했고 참여예산위원회 공모위원 참가를 신청하게 됐다. 11: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추첨을 통해 공모위원으로 선정된 윤씨는 성북구 대학생들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대사관과의 교류를 통해 그 나라의 언어, 문화를 배울 수 있는 다문화도서관 설립을 제안했다. 사업은 통과됐고 현재 성북구 월곡동에 다문화도서관 설립이 추진 중이다. 윤씨는 다문화도서관이 많은 호응을 얻어 외국어 연극제, 뮤지컬과 같은 정규적인 프로그램도 열리길 기대하고 있다.

이처럼 지역의 예산편성과정에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참여예산제는 1989년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 시(市)에서 시작됐다. 주민의 1/3이 전기, 수도 등 기반시설이 공급되지 않은 곳에 사는 등 시정에서 완전히 소외돼 있어 주민 간 불평등이 심한 지역이었다. 이에 재정의 불투명성이 그 원인이라고 판단한 노동자당(PT)이 시민의 직접참여에 의한 정책결정을 정강정책으로 표방함으로써 제도가 도입됐다. 포르투알레그레는 현재 주민참여로 결정하는 예산규모가 시 예산의 25%가 넘고 참여예산제가 주민의 삶의 질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9년 48%이던 하수도 보급율이 참여예산제 시행 10년 만에 83%로 늘어난 것이 대표적이다. 참여인원도 꾸준히 증가해 2000년에는 인구 120만명 중 4만5천명이 참여하기에 이르렀다. 그후 참여예산제는 브라질의 다른 대도시들로 확산됐고 현재는 브라질을 넘어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참여예산제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무엇보다 주민들이 예산편성과 집행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예산이 효율적으로 사용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진보신당서울시당 김상철 사무처장은 “사회가 복잡해져 예전처럼 행정부가 모든 사업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없게 됐다”며 “여러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시민들이 예산제정 주체가 되면 행정부가 미처 파악하지 못하는 부분들도 관리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풀뿌리 민주주의 확산에 대한 시민사회의 요구와 세계적 흐름에 따라 주민참여제도가 도입됐다. 참여예산제는 처음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만 시행되다가 지방재정법에 시행 근거가 마련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05년 8월 「지방재정법」을 개정하면서 제 39조에 ‘지방자체단체의 장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지방예산편성과정에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여 시행할 수 있다’는 근거규정을 삽입한 것이다. 이후 2009년 전국의 90개 지방자치단체가 참여예산제 관련 조례를 제정했고 2011년에 「지방재정법」이 개정되면서 참여예산제의 시행은 의무가 됐다.

또 주민들 자신의 선호와 우선순위에 따라 예산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참여와 자기결정이라는 지방자치의 이념을 구현하는 참여민주주의를 가장 잘 반영한 제도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김 사무처장은 “이제까지 시민들은 스스로 공동체를 운영하는 경험을 하지 못했다”며 “공무원에 독점됐던 행정권한을 일반 시민들에게 분배함으로써 시민들에게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주체로서의 자신감을 심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참여예산제, 서울시에서도 싹트다=서울시는 박원순 시장 당선 뒤 주민참여예산제 워크숍과 정책 공청회 등을 거쳐 2012년 5월 「서울특별시 주민참여예산제 운영조례」가 시의회를 통과함에 따라 광역 시·도 중에서는 가장 늦게 참여예산제를 도입하게 됐다.

하지만 제도의 도입이나 내용에 있어 이미 어느정도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시는 2012년 재정 총 규모만 30조가 넘는데다 인구는 천만 명이 넘으며 25개 구청을 거느린 대도시다. 이러한 국가 수준의 광역자치단체에서 참여예산제를 본래 취지에 맞게 운영한 사례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서울시의 제도 도입은 곧 마을공동체 단위를 벗어나 대도시에서도 참여민주주의의 확산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또 서울시는 참여예산제의 후발주자이기는 하지만 다른 지방자치단체들과 비교했을 때 참여확대, 실효성 있는 운영, 지역구와의 협력 등에서 상대적으로 선진적인 내용을 더 많이 담고 있다. 서울시 참여예산제 지원협의회 하승수 회장은 “서울시 참여예산제는 올해가 2년차임에도 주민참여를 형식적으로만 보장하는 다른 지역과 달리 여러 면에서 한단계 나아간 면모를 보이고 있어 성공적으로 자리잡게 된다면 우리나라 지방자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나아가 현재 시민 참여가 전무한 국가 예산 편성에 있어서도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할 수 있다”고 의의를 밝혔다.

무엇보다 서울시는 주민 참여를 넓은 범위에서 실질적으로 보장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우선 조례 제6조에서 ‘예산편성과정에 주민의견 제출의 범위는 해당 연도의 전체 예산을 대상으로 한다’고 규정해 주민참여 범위를 대폭 넓혔다. 참여예산의 범위를 서울특별시 ‘전체 예산’으로 명시한 것이다. 이는 다른 자치단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적극적인 규정이다. 제도에서 가장 핵심적인 참여기구인 주민참여예산위원회의 위원(주민위원) 수도 대폭 늘었는데 이전까지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주민위원 수가 최대 100명에 불과한 것에 반해 서울시는 위원수를 250명으로 지정했다. 위촉된 위원들은 △주민들의 의견 수렴을 위한 현장방문, 토론회 등 개최 △주민 및 지역회의, 분과위원회의 의견 심의·조정·결정 △예산편성에 대한 의견제출 등을 수행한다. 위원이 아닌 일반 시민들도 인터넷·우편·방문 등을 통해 자유롭게 참여예산사업을 신청할 수 있는 것도 눈에 띈다. 하승수 회장은 “서울시는 조례 제정부터 제도 운영까지 지자체가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공청회와 토론회를 통해 시민사회의 의견을 적극 반영함으로써 활발한 주민 참여가 가능했다”며 “이로써 교통, 환경, 건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폐지노인에게 안전용구 지급’, ‘홀로사는 저소득 노인가정 가스안전차단기 설치’ 등이 이 제도를 통해 제안된 모범적 사례로 꼽힌다.

참여예산제의 실질적인 운영을 위해 서울시는 예산학교를 통해 재정 및 예산현황, 주민참여예산제도와 국내외 사례 등에 대한 학습기회를 제공한다. 하승수 회장은 “시민위원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예산 전반에 대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며 “예산학교의 필요성에 대한 시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돼 참가자가 늘고 있으며 내용도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가 찾아간 예산학교는 참여한 시민 모두가 서울시 전체를 위한 예산 편성과 사업제안에 활발히 참여하는 등 모의 사업제안 활동으로 분주했다. 위원들은 사업 제안을 위한 조별 회의에서 너나할 것 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고 제시한 사업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했다. 지원협의회는 참여예산제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되며 이들은 시민위원들이 참여예산제에 더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제도에 대한 고민과 함께 예산학교에서의 위원 교육을 담당한다.

나아가 서울시는 자치구 참여예산제와의 연계성 확보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25개 자치구 참여예산위원회를 ‘지역회의’로 활용해 상호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현재 지역회의는 주민의견을 수렴, 선정해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위원회에 제출하도록 돼있다. 또 각 자치구에서 1명씩 서울시 참여예산위원회 위원을 추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승수 회장은 “자치구별로 특성있는 사업들을 갖고 있지만 교통, 환경, 문화 등 서울시 전체가 연계돼야할 사업들은 서울시와 자치구가 연계돼야만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공공청사 옥상을 활용한 나눔발전소 운동 사업, 서울시내 문화재 스탬프 투어 등이 이에 속한다.

사진: 심수진 기자 jin08061992@snu.kr

◇서울시 참여예산제, 개선 방향 모색 중=서울시 참여예산제는 아직 걸음마 단계로 지역별 형평성 보장, 시의회와의 소통 강화 등 개선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전문가, 참여예산위원회, 시민들과 함께 2012년 운영 성과에 대해 공정한 평가를 실시했고 상당한 부분에서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먼저 지역별 형평성의 경우 작년 은평구가 제안한 사업은 40억원이 반영된 반면 양천구, 서초구, 강남구는 한 사업도 통과되지 못했다. 서울시 예산총괄팀 임학본 주무관은 “이러한 결과는 참여예산이 적게 반영된 자치구의 의욕을 감소시킬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참여예산제는 분과위 구성시 각 자치구 기반 위원을 분과별 최소 1인 이상 배정해 지역별 형평성이 최대한 보장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은 상태다.

예산을 심의하는 기구인 시의회와의 갈등도 문제로 지적됐다. 2012년 당시 주민이 제안해 최종적으로 상정된 사업이 시의회와의 소통 부족으로 상임위 예비심사에서 500억 중 200억원 삭감됐다. 참여예산 한마당을 개최해 선정한 500억 가량 규모의 132개 사업이 원안 그대로 서울시의회에 제출됐지만 원안 대비 40%에 해당하는 금액이 삭감된 것이다. 김 사무총장은 “작년 서울시 시의회가 합당한 근거가 없이 자의적으로 예산을 삭감했다”며 “이는 사업을 제안한 주민이 사업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시의회에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 참여예산제는 지역회의 사업심사 결과를 해당지역 시의원에게 설명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시의회 상임위와 참여예산 분과위 간담회를 추진하는 등 참여예산제 운영에 대한 시의회와의 연계를 강화하는 개선안을 마련했다.

이렇듯 아직 개선돼야 할 문제는 많지만 서울시 참여예산제가 초기 단계임을 감안할 때 주민들의 열의나 사업 성과가 높다고 평가받고 있다. 하승수 회장은 “서울시는 조례를 제정할 때 시민사회 제안들을 대폭 수용했으며 주민들도 열의를 갖고 예산 편성에 참여했다”며 “그에 따라 작년의 경우 첫 시행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배정됐던 500억원의 예산을 넘는 2000억 원의 사업들이 제안됐고 다른 지역에서도 서울시 참여예산제도를 배우러 오는 등 많은 성과를 보였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민주주의 형태인 대의민주주의가 지역주민의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서 그 대안으로 풀뿌리 민주주의가 등장, 확산되고 있다. 그 대표격인 서울시 참여예산제가 우리 사회에 주민참여를 성공적으로 자리매김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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