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티벌 ‘불온한 예술들’ 개최
정치성 이유로 한 예술 제한 비판

지난 3월 31일(일) 대법원은 청년유니온이 플래시몹 활동을 사전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벌금형을 확정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선 예술 집회의 경우 사전 신고가 필요하지 않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대법원에선 비록 형식적으로는 예술 집회더라도 집회의 내용이 정치적이므로 사전 신고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정치적인 내용을 담았다는 이유만으로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것은 예술에 대한 내용 검열과 탄압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또 김선 감독의 「자가당착」이 제한상영가 등급을 부여받고, 싸이의 ‘젠틀맨’이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는 등의 사건이 이어지면서 예술의 자유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9일(목) 문화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공공운수노조연맹 세종문화회관지부, 표현의자유를위한연대의 주최로 광화문 광장과 세종문화회관에서 페스티벌 ̒불온한 예술들̓이 열렸다. 이번 행사는 플래시몹, 포럼, 영화 「자가당착」 상영 및 감독과의 대화, 토크쇼 등 다양한 형식으로 예술의 자유가 제한되는 실태를 확인하고 예술의 자유를 더 광범위하게 보장하기 위한 방법들을 모색했다.

사진: 주현희 기자 juhieni@snu.kr

◇예술의 자유에 대해 고민하다=이날 진행된 포럼은 ̒예술(藝術), 헌법 제22조를 반추하다̓는 주제로 열렸다. 헌법 제21조의 조항인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는 표현의 자유에 관한 중요한 조항으로 여겨져 많은 논의가 진행돼왔다. 그러나 헌법 제22조의 첫 조항인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를 논거로 예술의 자유를 별도로 고민하려는 시도는 드물었다. 이에 이번 포럼은 예술의 자유를 별도로 보장하고 있는 헌법 제22조에 특히 주목해 그 의미에 대해 고찰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패널로 참가한 김종철 교수(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는 “비교헌법적인 시각에서 조사해보면 예술의 자유를 일반적인 자유로부터 떼어 보장하는 것은 해외에서는 드문 것으로 주목할 만하다”며 헌법 제22조의 의미를 재고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포럼에 참가한 패널들은 예술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한 근거를 제시하는 지점에서 서로 다른 견해를 보였다. 김 교수는 예술의 자유만을 별도로 요구해선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으며 전반적인 표현의 자유의 범위를 넓혀가는 과정에서 예술의 자유도 함께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술의 자유를 표현의 자유로부터 새롭게 끄집어내 보장하자는 것은 오히려 예술을 정치로부터 분리하려는프레임 안에 들어가는 것”이라며 “표현의 자유 전반을 강조하면서 다만 예술이라는 형식 안에서 이뤄지는 정치적인 논의들도 역시 보장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모든 집회는 정치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도 예술 집회만을 별도로 보장해 주고 있는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경신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예술의 자유가 실정법에서도 이미 일반적인 표현의 자유와는 구별되는 보장 근거를 두고 있다며 예술의 특수성을 강조했다. 그는 “모든 법에는 예술에 있어서 예외를 두고 있다”며 저작권법, 명예훼손죄, 음란물 처벌 등에 있어서 예술성이 가미돼있다면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실례를 제시했다. 그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프라다는 하나의 상징으로 사용됐고 예술적 변용이 이뤄졌음으로 상업적 이용이라 할지라도 상표권 침해로 보지 않는다는 예시를 들기도 했다. 또 임정희 교수(연세대 겸임교수)는 예술의 자유가 인간 행위의 전반에 해당하는 문화권과 연관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예술의 자유를 선취함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확대해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예술의 자유가 탄압되다=이어진 영화상영회 및 감독과의 대화, 토크쇼에선 예술계에서 활동 중인 이들이 예술의 자유가 제한되는 현실을 토로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이날 상영된 영화 「자가당착」은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으로 인해 외부 상영이 금지됐으며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영등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진행 중인 작품이다. 제한상영가 등급은 지정된 제한상영관에서만 상영될 수 있도록 하는 등급이지만 국내에는 제한상영관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상영금지와 같은 조치다. 영화 「자가당착」은 공권력을 상징하는 포돌이 인형이 저항하는 시민들인 쥐를 탄압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대통령 후보 시절 박근혜를 포돌이의 어머니로 제시하는 등 뚜렷한 정치적 지향을 보인다. 영등위는 박근혜 대통령 후보와 정치인 허경영 마네킹의 머리가 절단되고 피가 분출되는 장면을 이유로 제한상영가 등급을 부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감독 김선은 “처음에는 정치적인 주제를 문제 삼다가 나중에는 잔인한 표현을 문제 삼더라”며 정치적인 판단을 해선 안 될 영등위가 자신이 문제제기를 하자 나중에 말을 바꾼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현행 영등위의 등급제에 대해서도 “제한상영가 등급은 위헌의 소지가 있으며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라며 제한상영가 등급 폐지를 주장했다.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등 정치인을 풍자하는 포스터를 붙인 예술인 이하도 자신이 겪었던 사례들을 소개했다. 그는 안철수·문재인을 풍자한 포스터를 붙일 당시 “다 붙이고 부산을 떠나려고 하는데 부산 경찰이 전화가 와 ‘이제 광주 가시네요’ 하더라”며 감시받았던 기억을 담담하게 말했다. 또 “독일 「슈피겔」 잡지에선 부시와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을 풍자하는 그렸는데 오히려 대사관과 다국적 기업들이 그림을 사겠다고 했다”며 해외의 사례를 들어 풍자 문화에 대한 한국의 폐쇄적인 대응을 지적했다.

프레시안에서 시사만화와 삽화를 맡고 있는 손문상 화백은 “2002년 「동아일보」에 있을 당시 데스크가 내가 그린 만평을 보고 ‘당신이 이런 구질구질한 그림을 그리니까 우리 회사에 루이비똥이나 베르사체 광고가 안 들어오는 것 아니냐’는 검열을 받은 적이 있다”며 예술에 대한 탄압이 경제, 정치적인 제약을 넘어 예술가의 작품을 모멸하는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행사는 토크쇼에 참석한 패널들이 향후 계획을 밝히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하씨는 “표현의 자유가 없다면 예술가는 살 필요가 없으므로 앞으로도 포스터를 계속 붙일 것”이라고 말하는 등 여건에 관계없이 꾸준한 예술 활동을 이어갈 것을 다짐했다.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참가한 랑희씨(표현의자유를위한연대 회원)는 “표현의 자유가 단순히 개인적인 의미를 넘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였다”며 행사의 의의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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