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취재] 캐나다 퀘벡의 학생운동

‘작은 프랑스’라 불리는 캐나다 퀘벡에 재작년부터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을 기축으로 전 세계를 휩쓸었던 ‘분노 신드롬’이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다. 1%의 횡포에 항거해 민주주의를 수호하자는 외침 속에서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은 소위 ‘등록금 투쟁’으로도 불렸던 범세계적 교육 복지 투쟁이었다. 그 중에서도 퀘벡은 미국 서부와 함께 가장 활발한 교육 복지 투쟁을 벌였던 곳으로 꼽힌다. 주(State)정부의 대학 등록금 인상 정책에서 촉발된 퀘벡 학생들의 대규모 시위는 1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삽화: 강동석 기자 tbag@snu.kr

◇ 공약(空約)과 뿔난 학생들=지난 3월 22일(금)은 퀘벡주의 전 다수당이었던 자유당 정부의 등록금 인상안을 저지한 퀘벡 학생 운동 1주년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이날 역시 20만명이 운집했던 작년 그날처럼 많은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다시 시위를 벌였다. 당일에만 294명의 학생들이 체포됐고 경찰에 따르면 체포된 학생들 대부분은 637달러의 벌금을 내고 풀려났다. 1년 전 ‘단풍의 봄(maple spring)’으로 불리는 대규모 시위에 힘입어 선거로 주정부까지 전복시켰던 퀘벡주 학생들은 왜 아직도 여전히 등록금 인상 반대를 외치고 있을까?

때는 2012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유당 샤레스트 전 주 총리는 2017년까지 대학 등록금 본인 부담분을 3,793달러(약 420만원)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퀘벡은 1960년대 소위 ‘조용한 혁명’으로 복지제도가 마련되고 1968년부터 1990년까지 20여년간 대학 등록금이 연간 540달러로 유지됐다. 이후 등록금은 몇 차례 인상을 거쳐 2007년부터 현재까지 2,168달러(약 240만원)로 동결됐다. 대한민국 4년제 일반대학의 2013학년도 연간 평균 등록금이 667만8천원인 것을 생각해보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실제로 퀘벡은 전 세계적으로 대학 등록금이 가장 낮은 축에속한다. 하지만 정부의 점진적 등록금 인상안은 퀘벡 대학생들에게 60년대 세워진 ‘복지 이상’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졌다. 시위에 참여했던 대학생 에이미 베르너-데마라이스는 “정부가 등록금 인상을 통보했고 우리는 거부한다. 교육은 상품이 아니기에 결코 값으로 매겨질 수 없고 지식은 공유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2012년 3월, 25만명이 몬트리올의 관광명소로 유명한 퀘벡 구 시가지에 운집했다. 몬트리올 주민 190만명의 13퍼센트에 달하는 인원이었다. 2011년 우리나라의 촛불집회와 비슷한 일면을 보인 대규모 시위기도 했다. 대학생뿐 아니라 미취학 아동, 중등 교육기관 학생들, 유모차를 끄는 주민들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주 정부의 등록금 인상안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며 거리로 나왔다. 비교적 평화적으로 진행됐던 시위를 과잉 진압하는 경찰들에 대한 비난도 뒤따랐다.

작년 5월에는 몬트리올 인구의 4분의 1에 달하는 50만명이 모이기도 했다. 등록금 인상 철회와 함께 대학가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제약하고 학생 조합이 집단행동을 위해 수업에 참여하는 것을 막는 주법률 제12호에 반대하는 집회였다. 이제 시위는 대학생들 뿐 아니라 이들을 지지하는 시민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양상을 띠게 되었다.

추락하는 민심에 동요한 자유당은 상황 타개를 위한 조기 총선을 실시했지만 작년 9월 총선에서 등록금 인상 반대를 공약으로 내세운 퀘벡당(PQ)에게 정권을 빼앗겼다. 그러나 퀘벡당은 곧 한계를 드러냈다. 전 자유당의 정책에 반기를 들어 당선됐음에도 공약을 뒤집어 등록금 인상을 공표한 것이다. 지난 2월 신임 마르와 총리는 5년 동안 등록금 연 3% 인상안과 함께 대학 지원 예산 2억5천만 달러 삭감안을 발표했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장석준 자문위원은 이를 “시류를 탄 중도우파 정당의 한계”라 평가하며 “대중 동원 투쟁이 정치적 성과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더 정밀한 전략을 세워야 했다”고 전했다.

새 정부에 배신감을 느낀 학생들은 다시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2월 26일과 27일 예정됐던 교육부 장관과의 협상은 결렬됐고 3월 대규모 시위에 이어 간헐적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P-6으로 불리는 지방 법률 조례 수정 및 폐기를 놓고 시위가 거듭되고 있다. P-6은 마스크나 얼굴을 가리는 장비를 착용한 시위자가 경찰에 사전 고지 없이 거리에서 시위할 경우 벌금을 물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콩코르디아대의 한 생협 대표는 “P-6은 부조리의 극치”라며 “이러한 관료주의적 절차는 평화적으로 집회할 수 있는 사람들의 능력을 경시하고 시민의 권리를 축소시키려는 의도로도 보인다”고 말했다.

◇ 퀘벡의 ‘투쟁 유전자’=이렇듯 퀘벡 대학생들의 등록금 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다만 그럼에도 짧지 않은 시간동안 지역 내 대부분 대학생들의 결집과 주민들의 폭넓은 동의를 얻어내 ‘성공적인 대중 투쟁’의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대학 등록금 제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상안 반대에 당사자인 대학생뿐 아니라 주민들도 동의해 결국 선거를 통해 정부까지 바꿀 수 있었던 힘은 퀘벡에서 ‘교육은 보편적 복지’라는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맥길대 전 학생부회장 로빈 라이드-프레이저는 “작년 봄 등록금 투쟁이 성공적으로 전개될 수 있었던 것은 퀘벡의 오랜 내력에서 찾을 수 있는 연대의식과도 연관이 있다”고 전했다.

사진: 정혜경 기자 noma1221@snu.kr
신자유주의적 사고의 극단을 달리는 미국과 인접해 있으면서도 쉽게 변하지 않았던 퀘벡 ‘복지 유전자’의 기원은 어디에 있을까. 통상 퀘벡식 복지 체계의 출발점으로 꼽는 것은 60년대 후반의 ‘조용한 혁명’이다. 이는 조속한 현대화, 프랑스어와 문화의 보존,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권리 보장을 핵심으로 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퀘벡 정부는 교회가 관장하고 있던 교육, 의료사업을 주정부에 일임해 운영했고 노동조합의 권리와 사회복지를 위한 법률들도 확정했다. 퀘벡 분리주의 운동을 전개하는 동안에도 여러 차례의 주민 투표 등을 통해 민주적 절차에 대한 경험을 다졌다. 물론 이 모든 배경에는 풍부한 자원을 기반으로 한 경제적 번영이 있었다.

‘연대 의식’의 역사도 뿌리 깊다. 김은기 교수(고려대 국제학부)는 “‘다문화주의’를 최초로 공식 정책으로 채택한 캐나다의 이민사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퀘벡은 선이주한 프랑스계와 후발 주자인 영국계가 공존하는 과정에서 특유의 연대의식이 학습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대안 경제 체제로 급부상하고 있는 협동조합의 성공적인 모델로 퀘벡의 여러 사례들이 꼽히는 것도 이 퀘벡식 ‘연대주의’의 실제적 일면에 해당될 수 있다.

실제로 퀘벡 주민 70%가량이 1개 이상의 협동조합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주정부도 여러 협동조합을 대상으로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학교협동조합이 활발한 편이다. 캐나다 전체 학교협동조합의 75%가 퀘벡에 있다. 대학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교협동조합의 조합원이다. 그 중에서도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교육기관인 라발대의 학생구매협동조합은 1987년부터 학생들이 직접 협동조합을 결성해 필요한 물품을 직접 구매해 판매하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 학생구매협동조합은 갖가지 사무 용품을 취급하면서 시중가보다 20%가량 저렴한 가격으로 학생들에게 물건을 제공한다.

2012년의 ‘단풍의 봄’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에는 이처럼 오랜 역사에서 비롯한 시민 권리에 대한 높은 이해도, 제도적으로 탄탄하게 완비된 풀뿌리 단체와 더불어 등록금 투쟁을 지휘했던 학생 단체들의 적극적 노력도 있었다. 퀘벡 지역의 대표적인 세 학생조직 중 가장 급진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CLASSE(교육조합 연대를 위한 대연합)’의 대변인 제레미 베다드-빈은 등록금 투쟁을 위한 파업에 학생들을 독려하기 위해 직접 동분서주했다. 최대한 많은 학교들을 돌면서 수업시간 전후, 점심시간 등에 캠퍼스 곳곳에서 직접 학생들과 소통하려 노력했다. 그는“인터넷 정치의 시대에 실제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노력이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실패한 투쟁? 남은 숙제들=현재 퀘벡당 정부는 교육 재정 예산의 현실성을 지적하며 물가상승률과 연동해 등록금 인상은 필수적이라며 주민들을 설득하고 있다. 그러나 전 정부와 반대되는 공약을 내세워 당선됐음에도 당선 후 바로 입장을 선회했다는 점에서 유권자들을 우롱했다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맥길대에 다니고 있는 톰 에커씨는 “선거철과 맞물려 책임감 없는 공약을 내세우고 돌아선 퀘벡당에 실망한 학생들이 많다”며 지속적으로 투쟁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다른 한 학생 역시 “등록금 투쟁에 전략이 부재했다는 주류 언론의 질타도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수십만 학생들이 풀뿌리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기억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시민의 역량을 신뢰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며 “투쟁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소회를 전했다.

앞으로 퀘벡당 주 정부와 학생 조직이 어떻게 협상을 진전시킬지 주목되는 한편 지난 한국 대선의 주요 의제였던 ‘반값등록금’ 공약이 향후 어떻게 실현될 것인가에도 눈길이 간다. 최근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전국 4년제 일반대학 173개교의 공시내용을 분석한 결과 올해 전국 4년제 대학의 평균 등록금은 0.46% 인하된 데 그쳤다. 2013년 연간 평균 등록금은 667만 8천원으로 전년의 670만 9천원보다 3만 1천원 내린 것이다. 새 정부가 어떻게 대선 공약인 ‘고지서상 반값등록금’을 실현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퀘벡주 정부의 사례가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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