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금) 행정법원은 1심 판결에서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영등위)가 김선 감독의 영화 「자가당착」에 내린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영등위를 상대로 진행된 행정소송 중 행정법원이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박주민 담당 변호사는 “영등위는 당연히 항소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긴 재판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사실 영화 「자가당착」에 제한상영가 등급을 부여한 결정에는 무리가 있었다. 영등위는 박근혜 후보와 정치인 허경영의 사진이 붙은 마네킹을 참수하고 피가 솟구치는 장면을 문제 삼았는데, 이미 개봉된 많은 영화에서 인물의 신체 절단을 묘사한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빌」이나 「데스프루프」와 같은 유명 작품들에서는 마네킹도 아닌 실제 인물들의 신체 절단이 반복 묘사된다. 그런데 영등위는 “「자가당착」이 ‘특정인’을 대상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훼손할 정도의 폭력성이 표현되어 관련 규정에 근거하여 제한상영가로 결정되었음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며 ‘특정인’에 대한 폭력이 문제가 된다고 언급했다. 이 말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폭력보다 ‘특정인’에 대한 폭력이 더 문제가 된다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이번 일의 근본적이 문제점은 한국의 제한상영가 등급제도이다. 제한상영가 등급제도는 ‘등급분류 보류제도’가 상영금지 조치에 준한다는 이유로 위헌판정을 받자 이를 대체하기 위해 신설한 등급이다. 이 제도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모든 표현물이 어떤 방식으로라도 상영될 수 있다는 ‘완전등급제’ 개념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제한상영관이 없어 제한상영가 등급은 여전히 상영금지와 같은 효력을 발휘한다. 사실상 상업성을 포기한 「자가당착」과 같은 작품들이 행정소송까지 감수하게 된 것도 대중에게 선보일 기회를 완전히 박탈하는 제한상영가 등급제도의 부당함에 항의하기 위해서이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중요한 기본권이다. 특히 예술의 자유는 22조를 통해 재차 강조되고 있기까지 하다. 하지만 현행 제한상영가 등급제도는 이런 헌법정신을 잘 살리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사회문화 전반에 실질적인 민주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한 공감이 확산되어 있는 만큼 이번 기회에 제한상영가 등급에 대한 재고가 이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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