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글로벌 서울대 진단 ③ 영어강의

‘세계속의 서울대’를 목표로 본부가 대학의 글로벌화 추진에 박차를 가하면서 급증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영어강의다. 하지만 영어강의가 급증하는 과정에서 부작용 또한 드러나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은 학부생들과 교수들을 대상으로 ‘서울대 영어강의 만족도 및 필요성 설문조사’를 진행해 현 영어강의 운영의 실태와 문제점에 대해 살펴봤다. 설문조사는 학부생을 대상으로는 온라인 설문을, 교수를 대상으로는 이메일 설문을 통해 9일(목)부터 11일까지 사흘간 진행됐으며 총 학부생 588명, 교수 174명이 응답했다.

삽화: 선우훈 기자 mrdrug@snu.kr

학생 5명 중 3명 “영어강의 수강했다”

영어강의가 늘면서 이를 수강하거나 진행하는 학내 구성원의 비율도 크게 늘었다. 설문조사 결과 ‘영어강의를 수강해보신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학부생 응답자의 66%가 ‘그렇다’고 답했고 교수들의 62%가 ‘영어강의를 진행한 경험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있다’고 답했다. 학생들은 토론형, 발표형, 연구수행형, 내용전달형 수업 중 주로 강의자로부터 강의 내용을 전달받는 내용전달형 수업을 들었으며(61%), 한국어가 모국어인 교수에게 수업을 들었다(64%). 교수들의 경우에도 주로 내용전달형 수업을 진행했다(56%). 본부는 “외국인 학생이 늘어남에 따라 외국어 강좌 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며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외국어 진행 강좌 확대가 필요해지면서 2007년부터 외국어 강의 확대 및 내실화에 힘쓰고 있다”고 영어강의 운영의 취지를 밝혔다.

하지만 학생들의 경우 ‘영어강의를 수강하신 계기가 무엇입니까?’(복수응답 가능)라는 질문에 ‘졸업하려면 반드시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를 수강해야 해서’(43%)를 가장 큰 이유로, ‘졸업필수 과목이 영어로만 개설돼서’(22%)를 두번째로 꼽으며 사실상 의무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영어강의를 듣는 것으로 드러났다. 교수의 경우에도 ‘영어강의를 진행하게 되신 계기가 무엇입니까?’(복수응답 가능)라는 질문에 ‘의무적으로 개설해야하기 때문에’(36%)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의무적 개설의 이유로는 ‘학과 차원으로 할당된 영어강의 수를 충족시키기 위해’(46%)와 ‘교수 개인에게 영어강의 진행이 의무화돼 있어서(부임 시 요건 등)’(34%)가 과반수 이상을 차지했다.


학생, 영어강의 필요성 공감. 교수는 엇갈려

학생들의 경우 영어강의의 필요성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공감했다. ‘영어강의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69%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필요하다고 응답한 학생들은 ‘영어강의가 필요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복수응답 가능)라는 질문에 ‘영어 능력 등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40%), ‘학문에서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34%)를 영어강의 필요의 이유로 꼽았다. 자유기술에서 한 학생은 “이공계 분야 수업 교재는 원서인 경우가 많고 학생들이 연구를 지속하려면 대부분 영어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영어강의 비중을 높일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교수들의 경우에는 영어강의 필요성에 대해 엇갈리는 반응을 보였다. 영어강의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6%는 ‘필요하다’고, 44%는 ‘필요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영어강의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교수들은 ‘영어강의가 필요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복수응답 가능)라는 질문에 ‘외국인 학생 및 교수의 수요가 있어서’(29%)와 ‘학생들의 학문에서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29%)를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 한 교수는 자유기술에서 “서울대가 세계적인 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교수와 외국인 학생이 더 늘어야 한다”며 “그에 따라 영어강좌가 더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꼽은 교수 역시 “앞으로 외국인 학생들을 많이 끌어들이고 국제화 진행을 위해서는 영어강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영어강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답한 교수들은 영어강의의 효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필요하지 않다고 답한 교수들은 ‘영어강의가 필요하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복수응답 가능)라는 질문에 ‘수업 내용이 원활하게 전달되지 않아서’(28%)와 ‘한국어 수업 진행의 효율성이 더 좋아서’(26%)를 이유로 꼽았다. 한 교수는 자유기술에서 “영어강의가 지식의 전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며 “강의자와 학생 모두 한국인인 상황에서 영어로 강의를 진행한다면 한국어 강의에 비해 그 효율이 반도 안된다”고 영어강의의 효율성을 비판했다. 영어강의에서 학생들의 참여도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자유기술 항목에서 한 교수는 학생들과의 소통 문제를 들며 “대부분 강의자가 지식을 전달하는 일방향 수업으로 진행되고 학생과 교수의 상호작용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기술했다. 실제로 ‘학생들이 강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까?’라는 질문에 교수들 중 약 44%가 학생들의 참여가 저조한 편이었다고 평했다.

영어강의의 효율성 문제에 대해서는 학생들도 일부 공감했다. ‘영어강의가 필요하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복수응답 가능)라는 질문에 학생들은 ‘한국어 수업 진행의 효율성이 더 좋아서’(37%)라고 응답했다. 영어강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답한 31%의 학생 중 한명은 “영어강의를 진행하는 한국인 교수도 영어보다 한국어가 더 편하고 학생들도 한국어일 때 이해하기가 더 편한데 왜 굳이 영어로 하는지 모르겠다”며 “오히려 영어강의가 수업에 대한 집중도를 저하시킨다”고 답했다.


학생 대부분 강의에 만족, 교수는 양분된 결과

실제 강의를 수강했거나 진행하는 학부생과 교수는 영어강의에 만족하고 있을까. 학부생의 경우 영어강의를 수강했다고 답한 학생 중 50%가 만족했다고 답해 영어강의에 불만족한다고 답한 27%보다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 중 한명은 자유기술에서 “전체적으로 교수의 강의법은 달랐지만 늘 신선하고 틀에서 벗어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며 “수업을 같이 듣는 외국인 학생들과 더 친해질 수 있었고 외국인 교수의 수업을 들으며 외국 대학의 강의 제도는 어떤지 알 수 있었다”고 답했다.

학생들은 자유기술에서 학교가 영어강의를 개설하기 급급해 학문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의무로 지정하는 경우가 많아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 학생은 “한글용어가 더 익숙한 학문에서는 갑자기 영어 전문용어를 듣게 되면 당황스럽다”고 자유기술에서 밝혔다.

내용 전달도에 불만을 표한 학생도 있었다. 설문과 별개로 익명을 요청한 한 학생은 “지난 학기 들었던 핵심교양 과목 교수의 내용 전달력이 좋지 않아 강의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영어강의를 개설하는 교수들의 내용 전달력을 어느 정도 검증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교수들의 경우 영어강의 운영 만족도에 대해서 양분되는 모습을 보였다. ‘영어강의 운영에 대해 전반적으로 만족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만족한다고 답한 비율이 40%, 불만족한다고 답한 비율이 33%로 엇갈리는 경향을 보였다.

만족한다고 답한 교수들의 경우 영어강의를 통해 학생들이 영어 소통 능력 등 글로벌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고 봤다. 한 교수는 “영어강의가 학생들에게 글로벌 환경을 접하게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응답했다. 한 인문대 교수의 경우 “진행하는 수업에 외국대학 교환학생의 비율이 높아 교환학생과 한국인 학생들의 교류를 촉진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라며 “한국인 학생들에게는 영어로 한국사를 배울 때 타국에서 한국과 한국사, 한국문화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고려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며 영어강의를 긍정적으로 평하기도 했다.

반면 불만족한다고 답한 교수들의 경우 다시금 영어강의의 효율성 문제를 제기했다. 자유기술에서 한 교수는 “강의 준비에 2배 이상의 시간을 들이지만 추후에 보면 학생들은 이해를 잘 하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실망감을 표하기도 했다. 다른 교수의 경우 “영어강의는 교수와 학생 모두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수업 효율이 무척 낮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삽화: 선우훈 기자 mrdrug@snu.kr


부실한 개설·운영 체계에 따른 부작용들

영어강의의 여러 부작용은 영어강의 개설 및 운영 체계가 잡혀있지 않다는 데서 기인하는 측면이 있다. 현재 본부는 단과대 졸업요건에 포함되는 영어강의 의무 수강 기준만을 제공하고 있고 단과대는 자율적으로 영어강의를 개설하고 있다. 그러나 각 단과대는 영어강의 개설에 대해 별도의 체계를 마련하지 않은 상태로 그때그때 졸업요건에 맞춰 개설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공분야의 특성이나 수업 내용은 고려되지 않은 채 영어강의가 개설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한 교수는 지금처럼 학교의 강요로 영어강의가 개설되는 상황을 비판하며 “학과나 학계라는 학문 공동체의 자율적 판단에 따라 원하는 학과나 교수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공대나 경영대같이 영어강의의 비중이 큰 단과대의 경우 신임 교수 임용 후 5년 동안 영어강의 의무 개설, 매 학기 전필 두 과목 중 한 과목은 영어로 진행하는 등 나름대로의 규정을 만들어 놓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 교수는 “일부에서 영어강의 능력과 상관없이 신임교수들에게 억지로 영어강의를 하도록 강요하는 관행은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며 “적절한 언어능력이 있는 교수가 영어강의를 맡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엇이 영어강의인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없는 것도 문제로 제기되기도 했다. 영어강의의 범위는 과제와 시험, 질문 등 수업 전체가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에서부터 수업은 영어로 진행하지만 시험과 과제 등은 한국어로 진행되는 경우까지 다양하다. 심지어는 이름만 영어강의를 내걸고 아예 한국어로 진행되는 강의도 존재한다. 실제로 사범대의 한 수업에서는 영어강의로 개설됐음에도 불구하고 과제와 시험, ETL 토론이 한국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교수가 외국인 학생들에게 수강을 권장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영어가 거의 쓰이지 않는 체육과목을 영어로 개설하기도 하는 실정이다.

영어강의 개설을 뒷받침할 기반시설과 지원이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됐다. 일부 교수들은 자유기술에서 영어강의에 대한 지원 부재와 영어강의 진행을 위한 환경 마련이 되지 않은 상황을 지적했다. 교수들은 조교 지원 강화, 강의 중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한 IT기술 등 지원체계 마련, 표현 사례집 및 문제 해결방안 모음집 제공 등을 예로 들며 본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영어강의의 취지? “대학평가의 높은 순위를 위해”

이같이 영어강의 운영체계가 부재해 주먹구구식으로 개설·운영되고 있는 현실로 인해 영어강의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교수들의 경우 본교 영어강의의 취지에 대해 묻는 질문에 ‘학문에서의 국제경쟁력 강화’(20%)나 ‘영어 실력 등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18%)보다 ‘대학평가의 높은 순위를 위해’를 29%로 가장 많이 꼽았다. 학생들 역시 22%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대학평가의 높은 순위를 위해?라고 응답했다. 한 교수는 이러한 현실에 대해 “교수평가에서 높은 배점을 받고 한국어 강의보다 적은 학점을 강의해도 되는 현실상 '무늬만 영어 강의'로 진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며 “과연 우리 학교에서 원하는 영어강의가 이런 것인지 궁금하다”고 의문을 던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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