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신문을 읽고’라는 제목만 놓고 보면 이 코너에 실리는 글의 목적은 두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번째는 『대학신문』의 기사를 읽고 독자들의 감상이나 의견을 싣는 것이고, 두번째는 옴부즈맨 형식의 『대학신문』 비평 칼럼을 싣는 것이다. 가끔 독자 후기 형식의 글들이 실리기도 하지만, 3명의 고정 필진이 있는 현재는 비평 칼럼을 싣는 것이 이 코너의 목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해볼 문제는 신문에 이런 비평 칼럼을 싣는 이유다. 우리의 인식과는 달리 이런 고정적인 옴부즈맨 칼럼을 싣는 언론들은 많지 않다. 그만큼 『대학신문』은 ‘우리는 비판을 달게 받아 더 나은 신문을 만들 각오가 돼있다’는 의지가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학기 필자는 두번의 칼럼을 통해 보도사진과 1면 편집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신문을 집어들게 만드는 것이 1면의 힘이고, 나름의 시각을 갖춘 보도사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과연 『대학신문』은 이런 비판을 달게 받아 더 나은 신문이 돼가고 있을까.

우선 최근 다섯번의 1면 보도사진을 보자. 두 번의 계절알림, 농촌 봉사활동, 축제, 전시회 등이 1면 보도사진을 장식했다. 이 보도사진들을 선택한 『대학신문』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이 사진들은 2014년에도, 2015년에도 찍을 수 있는 사진이고, 아마 1997년 보도사진으로 쓰인 사진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신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결정적 이유’가 없다.

보도사진뿐만이 아니다. 이번 학기 『대학신문』의 1면에는 서사만 있지 시사는 없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의 제목을 단 채 단순보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떤 것을 1면 상단에 놓을지에 대한 고민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1, 2, 3, 4면의 기사배치는 그냥 중요도 순으로 1번부터 20번까지 죽 늘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5월 13일자 1면 ‘강의평가 개선안 마련된다’ 기사와 하단의 인문대의 장터 시기 제한 기사를 예로 들어보자. 학생의 입장에서 강의평가가 어떻게 바뀌는지 보단 장터가 어떤 식으로든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이 더 궁금할 것이다. 5월 6일자 신문 역시 2주나 지난 총학 당선 기사보다는 『대학신문』이 기획한 국제 서울대 진단 기사가 1면으로서 가치가 더 높을 것이다.

‘대학신문을 읽고’는 『대학신문』의 지면에 실리는 글 중 유일하게 『대학신문』을 독자 대상으로 한 공간이다. 다시말해 『대학신문』이 이 코너를 경청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존재의 의미가 없는 것이다. ‘대학신문을 읽고’가 그저 ‘우리는 이만큼 비판에 열려있다’는 변명의 알리바이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믿는다. ‘더 나은 신문’은 지난 신문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다음 학기, 더 나아진 『대학신문』을 기대한다.

 

송성환

불어교육과·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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