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 「그림일기」

“건축가는 건물을 설계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영화 「말하는 건축가」(2011)로 대중에게 알려진 건축가 정기용(1945~2011)의 말이다. 인간의 삶을 누구보다 중요시한 한 건축가의 삶이 9월 22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된다.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는 작가가 일생에 걸쳐 남긴 그림과 글이 건축과 삶에 대해 새긴 일상의 보고라는 점에서 이름 붙여졌다. 이번 아카이브에서는 단순히 건축가로서의 성과물을 보이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의 건축 철학의 배경이 되었던 책과 그가 남긴 다양한 노트도 감상할 수 있다.

정기용 건축가는 건축물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소유물로서의 건축물보다 다수의 주민들을 위한 공공 건축물을 더 중시했다. 특히 그는 ‘무주 프로젝트’를 통해 현대 건축가들에게 외면당했던 농촌 지역 주민들의 삶의 모습을 고민했다. 1996년부터 10여년간 무주의 공공 건축물 30여 개를 설치한 정기용은 마을회관과 향토박물관 신축, 군청 재건축만 아니라 버스 정류장, 화장실과 같은 사소한 곳까지 손수 작업했다. 무주 프로젝트의 핵심인 무주 안성면 주민자치센터는 ‘사람이 중심’이라는 정기용 건축가의 철학을 잘 보여준다. 그는 그림 중심에 화살표로 십(十)자 방향을 그려놓았다. 주민들이 풍광과 채광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공간과 시선의 미를 최대한으로 누릴 수 있도록 북쪽에 있는 덕유산, 단지봉 등을 고려한 것이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주민자치센터에 있는 목욕탕이다. 그는 약한 수압으로 집에서 목욕을 할 수 없어 일년에 몇번 버스를 대절해 읍내에 나가 목욕한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듣고 목욕탕을 짓기로 결정했다. “공공건물은 사용할 사람에게 물어봐야 한다”던 그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정기용 건축가는 도시의 건축에 있어서도 공공성을 생각했다. 그는 공공성은 건축물과 그 주변 환경의 관계성에서 나온다고 여겼고 이는 화장품 회사의 사옥에도 반영됐다. 빌딩과 주택으로 가득했던 논현동에 문화적인 공간을 계획한 것이다. 논현동의 특성상 주거지역이 대다수이고 높이제한을 받고 있어 필요공간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면적이 작았다. 때문에 건물 내부와 옥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정원을 만들었다. 화장품 회사의 사옥인 만큼 옥상 정원에는 화장품 원료로 사용되는 풀과 나무를 심었다. 또 내부 정원이 밖으로 투명하게 드러나는 면을 만들었다. 'Care with Nature'라는 한 기업 슬로건이 강남의 ‘서 있는 정원’을 만든 것이다.

정기용 건축가는 이외에도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느낌표’의 어린이 전용 도서관 건립 활동인 ‘기적의 도서관’, 제주 4·3 평화공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김해 봉화마을 사저 등을 설계했다. 이후 그는 지역 공동체 문화 재건에 힘썼던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을 받았다. ‘건축물’보다 사람들의 ‘삶’에 더 무게를 뒀던 그의 아카이브인 만큼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볼 수 있게 구성돼있다. 기획자 정다영씨는 “건축을 넘어 도시라는 공간을 중시했던 고인의 철학과 사상에 대한 자료들을 최대한 많이 포함했다”고 말했다. ‘건축’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자 한다면 이번 특별전 관람이 제격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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