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일본 오사카 시장 하시모토는 태평양전쟁 당시 존재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군인들이 전장에서 민간인 여성들을 성폭행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고 언급했다.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럼 위안부에 끌려간 여성들은 민간인이 아니었단 말인가. 좀 솔직해지자. 사실 위안부를 동원한 것은 당시 전선이 확대되면서 일본군의 성폭행이 빈발하고 성병이 만연해져 전투력이 손실되자, 이를 방지하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이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끊이지 않는 일본 우익 정치인들의 망언에서 공통적인 한 가지는, 인간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가는 전쟁의 참혹함에 대한 반성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들과 관련해 일본이 비난 받는 이유는 오사카 시장이 추측하듯 패전국이기 때문에, 인류의 악행을 대신할 희생양이기 때문이 아니다. ‘불가피한 전쟁 속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정계에 진출하고 선량한 보통 시민들을 다시금 증오와 반목의 장으로 선동해 나가기 때문이다.

한편, 일본에서 촉망 받는 문화비평가 아즈마 히로키는 트윗을 통해 하시모토의 발언에 주석을 달았는데 상당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우선 아즈마는 전쟁에 대해 위안부를 비롯한 온갖 폭력을 불러들이므로 옳지 못한 것이라고 운을 뗀다. 그런데 이어서 남성을 통제 불가능한 본능의 꼭두각시로 전락시키고 만다. 한창 때의 남성을 전장에 밀어 넣어 실컷 사람 죽이라고 시키고, 전투가 끝났으니 상큼하게 일반 시민처럼 욕망과 폭력성을 억제하며 지내라고 요구하는 것은 생물적으로 무리라는 주장을 펼친다. 여성을 욕망의 대상으로 보는 남성의 심정을 이해 못하겠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꽤나 통찰력이 돋보이는 멘션을 날린다. “남성은 그런 프로그램을 가진 기계다.”

삽화: 선우훈 기자 mrdrug@snu.kr

우선 전쟁과 비인도적 폭력의 친화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국가, 다른 공동체를 침탈할 목적으로 치러지는 전쟁에서는 대규모 살육, 성폭행 등이 빈번히 발생하지만, 이와는 다른 목적을 가진 전쟁에서는 그러한 무자비한 폭력이 자행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일본과 장개석의 국민당에 대항해 전쟁을 수행한 중국 인민해방군에는 ‘8개 주의사항’이 있었다. “말은 부드럽게, 매매는 공평하게, 빌린 물건은 반드시 돌려주며, 물건을 손상하면 반드시 배상하며, 사람을 때리지 않고 그에 대해 욕하지 않으며, 농작물을 해치지 않으며, 부녀자를 희롱하지 않으며, 포로를 학대하지 않는다.” 당시 해방군 전체에 이러한 기풍이 널리 퍼져 있었다고 한다. 전쟁에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폭력성이라는 관념, 그리고 남성은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 아래에서 본능의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관념에 경종을 울리는 사례다. 모든 남성이 똑같은 프로그램을 보유한 것은 아니다.

이달 초, 하시모토는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사령관에게 이렇게 권고했다고 한다. “병사들이 성적 에너지를 해소할 수 있게 풍속(매매춘)업소를 이용하면 어떤가.” 미군에 의해 벌어지는 성폭행 문제를 은근히 비꼬면서, 과거 일본군만 그런 게 아니라 미군도 마찬가지 아니냐는 지적으로 읽힌다. 그런데 그가 짐승이 아니라, 기계가 아니라, 적어도 인간이라면, 이렇게 제안해야 하지 않았을까. 젊은 청년들이 성적 에너지를 인간적으로 발산하기 위해, 그들을 괴물로 만들어가는 군대를 오키나와에서 철수시키는 것이 어떤가라고 말이다.

 

장준영 간사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